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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맨 오브 라만차 “꿈꾸는 건 사치? 그럼 사치 좀 부려보자”

‘철든’ 알론조와 ‘철없는’ 돈키호테를 동시에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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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8.05.08 08:30:57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라고 착각하는 괴짜 노인 알론조 키하나(왼쪽, 오만석 분)와 그의 시종 산초(김호영 분)가 모험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사진=오디컴퍼니)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꿈’보다 ‘포기’라는 말이 익숙한 시대다. 노력해도 좀처럼 나아질 수 없는 현실에 포기와 좌절, 분노가 휘몰아치는 게 현대인의 평범한 일상. 이 가운데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다시금 꿈을 외쳐 눈길을 끈다.

 

스페인의 대문호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작가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자신의 희곡 ‘돈키호테’를 죄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라고 착각하는 괴짜 노인 알론조 키하나는 시종인 산초와 함께 모험을 떠나면서 우스꽝스런 기행을 벌인다. 처음엔 “미친 노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특유의 진실함과 용기로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돈키호테가 된 알론조의 행동은 이상적이고, 그렇기에 미친 것 같다. 거대한 풍차를 보고 괴물이라고 돌격하고, 주막집의 비천한 하녀 알돈자를 천상의 숙녀 둘시네아라며 “마이 레이디”라고 칭송한다. 이상적으로만 살 수 없는 현실에 돈키호테의 행동은 현실 기피처럼 철없이 느껴진다. 알돈자도 처음엔 화를 낸다.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더욱 비꼬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 ‘철없어’ 보이는 돈키호테의 행동에 감화된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일단 그의 곁을 항상 지키고 따라다니는 산초가 있다. 돈키호테의 행동에 의문을 품은 알돈자가 “도대체 저 사람을 왜 따라다니냐?”고 묻자 산초는 “좋으니까”라고 심플하게 답한다. 이따금 산초조차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돈키호테이지만 세상의 어떤 시선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가 산초에게는 더욱 빛나 보였다. 그리고 남이 봤을 땐 부족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산초가 돈키호테에게는 최고의 친구이자 시종이었고, 그렇게 둘은 매번 신나게 모험을 떠난다.

 

여관 주인 또한 돈키호테의 행동에 감화된다. 그에게 돈키호테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여관주인인 자신을 성주라 부르고, 여관에서 싸움을 벌이며, 나중엔 기사 칭호까지 내려달라고 하니, 갈수록 가관이다. 대충 적당히 맞춰주다가 내보낼 심산이었는데 돈키호테의 빛나는 열정이 여관 주인도 감동시킨 모양이다.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부인의 만류에도 돈키호테를 맞아들이고,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기사 칭호도 내려준다.

 

알돈자(왼쪽, 윤공주 분)는 처음엔 자신을 고귀한 존재라며 칭송하는 돈키호테(오만석 분)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순수하게 꿈을 좇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돈키호테에게 점차 관심을 갖게 된다.(사진=오디컴퍼니)

가장 큰 변화는 알돈자에게서 감지된다. 평소 자신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에 질린 알돈자에게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믿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괴롭힘 당하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싸움을 벌인 돈키호테가, 적이었던 사람들이 부상을 입자 손수 치료하려는 행동에서 용서와 배려의 태도를 배운다. 그리고 알돈자도 자신 또한 돈키호테가 부르는 둘시네아, 즉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삶을 꿈꾸게 된다.

 

비록 그 꿈이 또다시 사람들에 의해 짓밟히지만 이것이 포기로 치닫지는 않는다. 제정신을 찾아 돈키호테에서 알론조로 돌아오며 꿈을 잊어버린 그에게 “당신은 돈키호테 기사”라고 부르짖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알돈자다.


미친 짓 같은 돈키호테의 행동에 그래도 감화되는 건…

 

참 아이러니다. 철없어 보이는 돈키호테는 꿈을 꾸고, 철이 든 알론조는 꿈을 꾸지 못한다니.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현실에 맞춰서 꿈을 꾸고, 그것이 현실적 여건에 맞지 않으면 철이 없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치부하고 있다.

 

꿈을 꾸는 게 사치가 돼버린 세상에 여럿의 돈키호테와 알론조가 살아가고 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알론조이지만 공연을 보는 순간만큼은 “나도 마음껏 꿈꾸는 사치 한 번 부려보자”며 돈키호테에 감정이입을 한다. 거기서 느껴지는 해방감과 감동이 1965년 브로드웨이 초연, 2005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올라 온 ‘맨 오브 라만차’의 원동력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는 때로는 드러난 형태로, 때로는 숨겨진 형태로 꾸는 가지각색의 꿈이 있으니까. ‘맨 오브 라만차’는 분명 존재하지만 잊힌 이 꿈들을 슬며시 건드린다.

 

돈키호테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가 아니라 평범한 노인이라는 걸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그가 기사 돈키호테에서 평범한 노인 알론조 키하나로 돌아오는 순간이다.(사진=오디컴퍼니)

돈키호테가 부르는 대표적인 노래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은 이 공연 자체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코 이룰 수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꿈을 꾸겠다는 의지다. 공연 제작사 오디컴퍼니는 “‘희망조차 없고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멈추지 않고 주어진 길을 가겠다’는 노랫말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수많은 잠재적 돈키호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며 “헬조선, 수저 계급론, N포 세대 등 암울한 시대를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속출하는 현 시대에 돈키호테의 울림 있는 목소리는 꿈을 잃어 방황하는 많은 이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올해 공연에서는 알돈자가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일부 장면이 순화됐다. 또 돈키호테 역의 오만석과 산초 역의 김호영의 열연이 돋보인다. 뮤지컬계의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는 오만석은 철이 든 알론조와 철없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또한 그가 부르는 ‘이룰 수 없는 꿈’에서는 애절함까지 느껴진다.

 

김호영은 산초 역할에 대한 우려를 깨끗하게 씻었다. ‘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 산초는 이훈진이다. 천진난만하게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공연의 감초 역할을 하는 산초에 빙의된 연기를 펼쳐 온 이훈진은 ‘산초 장인’이라 불린다. ‘맨 오브 라만차’의 역사상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훈진이 아닌 산초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가운데 김호영이 어떻게 산초를 소화할지 궁금해서 찾은 공연장에서 새로운 매력의 산초를 발견했다. 이훈진의 산초가 귀엽고 엉뚱한 매력이 있다면, 김호영의 산초는 더 호들갑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돈키호테 옆에서 결코 기죽지 않고 미친 존재감을 발휘한다. 공연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6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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