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버전 10주년 기념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앞에 1주년, 2주년 식으로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날 수 있는 건 관객들의 사랑 덕분이다. 하지만 부담감 또한 함께 늘어나는 것도 사실. “역시 명공연”이라는 평과 “지난 공연과 다를 바 없다”는 평이 항상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 가운데 한국어 버전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역시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 작품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매혹적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세 남자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은 프랑스 뮤지컬이다.
송스루(song through) 뮤지컬이라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고, 이 노래로 관객들에게 수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드라마를 중시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는 10주년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탄탄한 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성을 빛나게 하는 건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다. 특히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나서는 앙상블의 열연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공연을 보고 나서 보통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노래와 연기는 어땠는지, 공연의 여운을 되새기며 다시금 돌아본다. 그런데 ‘노트르담 드 파리’는 특정 인물 하나가 주인공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배역들이 돋보인다.
공연은 기본적으로는 매혹적인 에스메랄다, 그를 사랑하는 추한 모습의 꼽추 콰지모도, 약혼녀를 두고서도 흔들리는 근위대장 페뷔스, 겉으로는 성스러운 척 하지만 속으로는 에스메랄다를 향한 집착에 휘둘리는 주교 프롤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지만 앙상블 또한 이들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무대 위에 등장해 눈길을 끈다.
가장 배우들의 호흡이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종 세 개가 힘차게 흔들리는 장면과 에스메랄다와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 사이 고뇌하는 페뷔스의 모습이다. 콰지모도는 14살이 되던 해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종을 울려 왔다. 그에게 종을 치는 건 단지 ‘해야 할 일’ 정도가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의 멸시에 시달린 콰지모도에게 종은 자신이 가까이 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친구였다. 그런데 이 소중한 종을 에스메랄다가 사라지자 콰지모도는 울리지 않는다.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에스메랄다를 통해 사람과의 교류를 처음으로 트며 또 하나의 소중한 친구가 생긴 것.
이때 에스메랄다를 찾는 안타까운 마음이 과거 콰지모도의 유일한 친구였던 종들이 거침없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배우들이 종에 매달려 종을 힘차게 흔들고, 무대에 내려와 콰지모도를 살며시 안아주기도 한다. 콰지모도의 노래로만은 표현하기 힘들 수도 있었던 콰지모도의 복잡하고 슬픈 내면이 종을 연기하는 배우들로 인해 극대화된다.
페뷔스가 부르는 ‘괴로워’도 유명한 장면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페뷔스는 일순간 만난 에스메랄다를 보고 불타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두 여자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몸부림친다. 이때 노래를 부르는 페뷔스 뒤로 댄스 앙상블이 등장한다. 페뷔스가 처절한 고통을 부르짖을 때 일순간 조명이 비추며 격렬한 춤을 추는 배우들이 한 명씩 드러난다. 화려한 무대 세트에 의존하지 않고 암흑처럼 깜깜해진 무대 위 하나 둘씩 드러나는 배우들의 몸짓은 무대를 꽉 채울 정도로 강렬하다.
그래서 특정 한 배우만 꼽아서 연기와 노래가 인상적이었다고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말하긴 힘들다. 모든 배우들의 열연이 한데 어우러져야 진정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한국어 버전 공연 10주년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배우들의 호흡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8월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