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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77) 시칠리아-세네갈 ①] ‘시네마 천국’으로 시간 여행…토토 목소리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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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5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7.09 10:14:58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2일차. (서울 출발 → 하노이 경유 → 파리 경유 → 이태리 시칠리아 도착 → 토레노바 도착)


하노이 행 베트남 항공기에 오른다. 항공기는 완전히 만석이다. 하노이에서 세 시간을 기다려 오른 파리 행 항공기 또한 만석이다. 12시간 30분의 힘든 비행 끝에 파리에 닿는다. 여객기 상급 좌석이 편해지고 호화로워질수록 하급 이코노미 좌석은 더욱 열악해진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CDG)에서 여러 시간을 기다려 오른 시칠리아 카타니아(CTA, Catania) 행 이지젯(Easy Jet) 항공기 또한 만석이다. 서울을 떠난 지 29시간 만에, 그것도 세 차례 모두 숨 돌릴 틈도 없는 만석 항공기에 앉아 힘겹게 시칠리아까지 왔다. 극성수기에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중해의 교차로 


시칠리아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제주도의 14배, 남한 면적의 27%에 500만 명의 인구가 산다. 1만 5천 년 전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해 페니키아인, 그리스인들이 일찍부터 정착했다. 특히 그리스인들은 한때 본토보다 이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르타고 전쟁(Punic War)의 한복판에 휩쓸리기도 했고, 기원후 5세기 로마 제국 멸망 이후 9~11세기(827 ∼1091년)에는 아랍, 11-12세기(1038∼1198년)에는 노르만(Norman) 등 동서남북의 여러 세력들이 탐했던 땅이다. 시칠리아인들의 다양한 용모를 통해서 여기가 인종, 언어, 문화의 교차로임을 확인한다.


척박한 땅


공항 터미널을 나오니 지중해성 기후의 명징한 날씨가 반긴다. 렌터카를 운전하여 북동부 해안 마을 토레노바(Torrenova)에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서 간다. 여행하기엔 최고이지만 물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메마른 땅이다. 섬의 동부 중앙에 장엄하게 버티고 서있는 해발 3329m 활화산 에트나(Etna)는 오늘도 정상 부근이 온전히 구름에 갇혀 있다. 에트나 산록을 끼고 험할 길을 달린다. 높은 산언덕 꼭대기까지 집과 마을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U자 굴곡 도로를 수없이 돌고 돈다. 경차 렌터카는 수동 2단 기어로도 힘이 달려 헉헉거리기 일쑤다. 험한 길, 척박한 대지를 두 시간 남짓 달려 숙소에 도착하여 주인장의 환대를 받는다. 마음 편한 시칠리아 여행이 될 것임을 예감한다. 

 

 

3일차. (토레노바 → 카스텔부에노 → 세팔루 → 바게리아 → 팔레르모 → 코를레오네 → 팔라조 아드리아노 → 아그리젠토 도착)


시네마 천국 로케이션 기행


해안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A20 고속도로를 달린다. 오른쪽으로 숨바꼭질하는 지중해가 찬란한 쪽빛으로 빛난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카스텔부에노(Castelbueno) 중세 성곽 마을을 찾아 들어가면서 여정은 자연스럽게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 감독 지우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의 로케이션 기행으로 이어진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언덕길, 반들거리는 화강암 포장도로를 조심스럽게 지난다. 어슬렁거리는 노인들, 빈둥거리는 청년들은 가난한 시칠리아의 현실을 말해주지만 여행자의 마음속에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야외 영화 상영을 보려고 운집했던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난데없이 폭풍우가 아프게 했던 영화 ‘시네마 천국’의 현장인 세팔루 바닷가. 사진 = 김현주 교수

노스탤직 시칠리아


모든 게 영화의 장면 장면이다.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의 1960년대 영화를 통해서 봤음직한 풍경들이다. 노스탤직 여행의 시작이다. 중세 역사 지구(Centro Storico Medievale)의 중심까지 들어가본다. 영화에서 주인공 토토가 다녔던 학교로 등장했던 14세기 성곽을 보면서 내 마음도 뛰기 시작한다. 잔잔하면서도 찬란했던 감동 속에 보았던 영화의 장면들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험한 산길을 또 넘고 넘어 도착한 세팔루(Cefalù)도 시네마 천국의 명 장면이 만들어진 곳이다. 난데없이 폭풍우가 몰아쳐 율리시즈(Ulysses) 영화 야외 상영을 보려고 운집했던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바로 그 바닷가가 영화 세트처럼 나타난다. 
 

팔레르모 거리를 장식한 부조 조각. 사진 = 김현주 교수

시간이 멈춘  


팔레르모(Palermo) 외곽 바게리아(Bagheria)에 들른다. 시네마 천국과 대부Ⅲ의 로케이션 현장이다. 시네마 천국에서는 주인공 지우세페 토르나토레의 고향으로 설정되었던 곳이다. 시칠리아 풍이 물씬 풍겨난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심에서 오후 한 때를 즐긴다. 시내 중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축물은 빌라 팔라고니아(Villa Palagonia). 1715년에 지은 바로크 건축물이다. 정원과 벽에 10여 개의 괴물 형상을 조각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괴물 빌라(Villa of Monsters, Villa dei Mostri)라고 부른다. 빌라 옆 로터리, 삼륜차에 싣고 온 과일, 채소를 파는 아저씨와 물건을 흥정하는 아주머니의 대화가 정겹다. 어릴 적 살았던 서울 신촌 모래내 우리 집 앞 골목 삼거리에서 늘 봤던 풍경이다. 

 

1715년에 지은 바로크 건축물로, 정원과 벽에 10여 개의 괴물 형상을 조각해 놓아 괴물 빌라(Villa of Monsters, Villa dei Mostri)라고도 불리는 빌라 팔라고니아. 사진 = 김현주 교수

 

시간이 멈춘 듯한 바게리아에서는 삼륜차 노점상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밀려드는 아프리카 이민자들로 절반은 아프리카 풍으로 변해버린 팔레르모의 거리. 사진 = 김현주 교수

절반은 아프리카


잠시 더 차를 몰아 도착한 팔레르모는 이미 절반은 아프리카다. 사라센의 200년 통치(9∼11세기) 이후 쉬지 않고 몰려드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도시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질서한 도심과 나뒹구는 쓰레기, 그리고 냄새까지도…. 이 도시의 으뜸 볼거리는 아랍-노르만 유적이다. 1060년 노르만의 점령으로 아랍 궁전과 모스크는 파괴되었으나 아랍의 흔적은 아랍-노르만(Arab-Norman)이라는 시칠리아 고유의 건축 양식으로 부활하였다. 로마네스크 건축물에 비잔틴 모자이크와 아라베스크 문양이 혼합된 건축물들을 통하여 이 땅에 켜켜이 쌓인 역사를 엿본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땅이지만 지중해 중심, 동서남북의 교차로라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수많은 세력들이 거쳐 간 결과이다.


아, 코를레오네


내륙으로 차를 돌려 코를레오네(Corleone)로 향한다. 농부가 가파른 산언덕의 몇 뼘 안 되는 농지를 트랙터로 힘겹게 일구고 있다. 영화 <대부>를 통하여 이름이 잘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태리에서 활동했던 여러 마피아 두목을 배출한 곳이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보잘 것 없는 인구 1만 남짓의 산골 마을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값나가는 것들을 두고 갈등했음이 저절로 짐작된다.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돈 코를레오네(Marlon Brando 분)가 마피아들에게 가족을 잃고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올 때 뉴욕 엘리스 아일랜드(Ellis Island) 이민국 관리가 고향 마을 이름으로 이민 서류를 작성해 주었기 때문에 그의 성(姓, family name)이 되어 버렸다.


또한 영화에서는 그의 아들 마이클(Al Pacino 분)이 아버지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반대파를 살해한 후 뉴욕으로부터 피신 와서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코폴라(Francis Coppola) 감독은 촬영 당시 코를레오네는  이미 너무 현대화되어 1940년대 후반 분위기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곳이 아닌 더 작은 마을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모처럼 아버지 고향의 품에 안겨 여유와 낭만을 즐기고 여인을 만나 사랑을 꽃피우던 영화 장면과 함께 주제가 <Speak Softly Love>의 선율이 눈과 귀에 어른거린다. 


시간 여행


코를레오네를 떠나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팔라조 아드리아노(Palazzio Adriano) 풍경에 깜짝 놀란다. 시네마 천국 영화 속으로 시간 여행을 와버린 것이다. 영화 속에서 설정된 2차 대전 직후의 가난한 시칠리아 농촌에서 몇 걸음 나가지 못한 채 살아온 영화 속 마을, 그때 그 모습이다. 요란한 설정과 자극적 화면 없이도 전세계인들의 심금을 올렸던 영화의 중심 로케이션 광장에 서는 감격을 누린다. 성당, 분수, 공회당,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있다. 극장 뒷골목, 영사기 기사이자 토토의 멘토인 알프레도의 집(Casa di Alfredo) 앞에 왔을 즈음에는 어디선가 꼬마 토토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토토가 늘 앉아 놀았던 교회(Chiesa Maria SS Assunta) 계단에 나도 앉는다.

 

중세 성곽 마을 카스텔부에노의 정겨운 거리. 사진 = 김현주 교수
중세 성곽마을의 특징을 보여주는 카스텔부에노의 골목들. 사진 = 김현주 교수

오늘 밤 숙박지인 아그리젠토(Agrigento)는 바닷가 가파른 언덕에 들어선 도시이다. 도시 외곽 신전 계곡(Valley of Temples, Valli dei Templi)은 유네스코 등재 문화유적이지만 생각보다는 싱겁다. 오늘 여러 얼굴의 시칠리아를 보았다. 중세 성곽 도시 카스텔부에노부터 낭만의 세팔루 해변, 정통 시칠리아 풍 바게리아, 아프리카와 다음없는 팔레르모, 그리고 미국 노스다코타(North Dakota)를 닮은 코를레오네의 고원까지…. 

 

그림처럼 아름다운 세팔루의 바닷가 풍경. 사진 = 김현주 교수

 

4일차. (아그리젠토 → 라구사 → 시라구사 → 카타니아 → 이스탄불 도착/환승)


사도 바울 시라구사


오늘은 카타니아로 돌아가 차량을 반납하고 아프리카 행 항공기에 오르는 날이다. 시라구사(Siragusa)까지 210km, 그리고 카타니아까지 70km 남아 있다. 라구사(Ragusa) 마을이 먼저 나타난다. 고색창연한 올드 타운의 중심 산 지오바니 성당(Cathderal of San Giovanni) 앞 광장 그늘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지난 세기 중반 어느 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라구사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아름다운 항구 도시 시라구사에 닿는다. 소아시아와 발칸으로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가 붙잡혀 로마로 압송 중이던 사도 바울이 멜리데(몰타)에서 배가 난파하여 3개월을 보낸 후 이곳으로 실려와 사흘을 머무는 동안 운집한 군중에게 기독교를 설파했던 곳이다. 카타니아 공항에 렌터카를 무사히 반납하니 2박 3일, 48시간 동안 840km를 운전했다. 차량 대여비는 면책 금액 제로, 풀보험 포함 127유로(17만 원), 유류비는 48리터, 72유로(9만 5천 원) 들었다. 곧 터키 항공기에 올라 이스탄불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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