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SBS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8’을 11월 25일까지 MMCA 서울 1, 2전시실에서 연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한국현대미술의 역동성과 비전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작가들을 지원, 육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 2012년에 시작해 올해 7회를 맞이했다.
‘올해의 작가상 2018’에는 구민자, 옥인 콜렉티브(김화용, 이정민, 진시우), 정은영, 정재호 4명(팀)이 참여해 사회 문제를 미학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탐구하고, 타인과의 공감, 연대를 향해 확장해나가는 각기 다른 접근 방법이 소개된다. 특히 세 작가가 사회에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 눈에 띈다.
정은영은 1950년대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나 현재는 소멸 위기에 놓인 여성 배우만으로 구성된 ‘여성국극’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동예술극장과 국립현대미술관 멀티 프로젝트홀에서 촬영한 신작 ‘유예극장’과 ‘죄송합니다. 공연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가곡실격’ ‘나는 왕이야’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
또한 여성국극이 기억되거나 설명돼 온 기존의 역사쓰기의 방식을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유예시키고, 그것을 둘러싼 담론과 기억의 뒷면에 머물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아카이브인 ‘보류된 아카이브’를 발표한다. 이와 함께 한국, 일본, 대만에서 상연한 ‘변칙 판타지’를 통해 소멸돼가는 여성국극과 동시대 예술이 만나는 무대로 관객을 초대한다.
정은영은 “‘어떤 것이 역사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여성국극을 통해 알아보고 싶었다. 한국 근대사 안에 분명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잊힌 지점들이 있다. 여성국극 또한 그랬고, 이 여성들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전통 보존에 대한 가치와 관념이 해체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성국극을 꾸렸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영상이 커튼 뒤에 설치됐는데 마치 숨겨져 알려지지 못한 이야기들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구민자의 ‘전날의 섬 내일의 섬’은 영국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남태평양 피지의 섬 타베우니를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날짜변경선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작품이다. 타베우니 섬에서 날짜변경선의 동쪽은 오늘이지만, 서쪽은 어제가 된다. 때문에 만약 한 사람이 날짜변경선 동쪽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서쪽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그 사람은 하루를 두 번 살게 된다.
이렇게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을 오가는 가운데 시간의 의미, 삶의 의미를 묻는 작업은 작가 자신과 지인이 직접 날짜변경선 양쪽에서 24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자리를 바꿔 다음 24시간을 보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한 영상 및 설치 작품이다.
구민자는 “이번 작업은 ‘하루를 두 번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됐다. 날짜변경선은 임의의 선이다. 하지만 여기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상징적인 존재가 된다”며 “이곳에서 이틀 동안 촬영한 영상을 전시한다. 날짜변경선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를 함께 느껴보길 바랐다”고 말했다.
작가들의 질문 네 가지
“어떤 것이 역사가 되는가?” “하루를 두 번 살 수 있을까?”
“로켓이 실제로 달나라로 갔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정재호는 이번 전시에서 오래 된 도심 속 빌딩들을 그린 작품과 1960~70년대 공상과학만화와 SF 영화 속에 나타난 미지 세계로의 탐험 장면을 통해 과학기술입국이 국가적 구호였던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을 좇는 설치작품 ‘로켓과 몬스터’를 선보인다.
이와 함께 당시 정부기록사진, 영화와 만화 등 대중문화 속에 남겨진 이미지들을 작가의 방식으로 그린 아카이브 회화 연작을 통해 전체를 강조한 국가주의 문화 속에서 개개인에게 주입된 특정한 사고방식과 관점을 드러낸다. 공상과학만화의 한 장면 같은 정재호의 회화는 경제성장이 멈추고 경제 위기를 겪은 이후 일어난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 즉 불가능한 것을 꿈꾸던 시대에서
가능한 것을 꿈꾸는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냉철한 기록이기도 하다.
정재호는 “1970년대 윤승운 만화가의 ‘발명왕 요철이’를 즐겁게 봤다. 만화 속 초등학생 발명가인 요철이가 만드는 것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지만 꾸준히 발명을 시도한다. 그 중 로켓을 만드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 ‘만화 속에서는 로켓이 폭발했지만 만약 요철이가 만든 로켓이 실제로 달나라로 날아갔다면 어땠을까?’ 궁금했고, 회화 작업으로 이 궁금증을 실제에 구현했다”고 말했다. 있었을 법한 가능성에 대한 탐구와 구현, 정재호의 작업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옥인 콜렉티브는 2009년 철거를 앞둔 종로구 옥인 아파트에서 결성된 이래 다양한 방식의 예술형태를 활용하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전시에는 옥인 콜렉티브가 탄생하게 된 작업과 과정에 대한 기록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바깥에서’가 전시된다.
이와 함께 서울, 제주, 인천 세 도시에서 각각 하나의 공동체를 찾아, 도시 속에서 우리가 왜 공동체를 형성하는지, 구성원과 공동체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공동체가 유지되는지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작한 신작이 발표된다. ‘회전을 찾아서, 또는 그 반대’의 경우, 인천에 위치한 예술가 공동체인 회전 예술의 이야기를 ‘황금의 집’에서는 제주에 위치한 음악다방 까사돌을 찾는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추적한다. 옥인 콜렉티브는 흑백, 호불호, 찬반 등으로 나뉠 수 없는 복잡한 상황과 관계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세심하게 짚어낸다.
옥인 콜렉티브는 “우리의 작업은 공동체의 주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장치와도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람들도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정작 장치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며 “서울, 제주, 인천 등 각지에서 만난 작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좁은 데서부터 넓은 곳까지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고 말했다.
심사를 맡았던 콰우테목 메디나(2008 상하이 비엔날레 큐레이터)는 "아방가르드부터 전통적인 매체까지 다양한 매체를 다루고 있는 점이 인상 깊고, 특히 한국현대미술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보여주는 작가들”이라고 평했다. 왕춘쳉(북경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부관장)은 "이 작가들의 작품은 전통, 정치, 근대화 등을 다루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한편 9월 5일에는 각 작가들의 전시 작품에 대한 마지막 심사를 거쳐 ‘올해의 작가상 2018’ 최종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최종 수상 작가는 ‘2018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고 1000만원의 상금을 추가로 지원받게 된다. 또한 후원 작가 및 최종 수상자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현대미술 다큐멘터리가 제작돼 SBS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그리고 10월 26일 4인(팀) 작가들과 함께하는 ‘MMCA 전시를 말하다: 올해의 작가상 2018’ 전시 토크가 마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