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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아이들이 배 모형을 들고 바다로 걸어 들어간 뜻은?

벨기에 출신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 경계와 이민 이슈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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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6-607합본호(추석) 김금영⁄ 2018.09.19 11:12:47

프란시스 알리스 작가.(사진=아트선재센터)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신발로 만든 배 모형을 손에 든 아이들이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이 모습을 양쪽에 마주보고 설치된 스크린이 동시에 보여준다. 한 스크린은 스페인의 해안가를 담았고, 또 다른 스크린의 배경은 모로코의 해안가다. 천진난만하게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명과도 같은 이 영상 작업은 벨기에 출신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가 작업한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다. “유럽 아이들이 모로코, 그리고 아프리카 아이들이 스페인을 향해 줄지어 간다면 수평선에서 양쪽 아이들이 만날 수 있을까?” 작가의 이 질문에서 시작된 작업은 경계를 넘어서는 ‘다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전시장에서는 마치 관람객이 연결된 다리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두 스크린 사이에 서서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기에.

 

프란시스 알리스, ‘지브롤터 항해일지’, 지브롤터 해협, 모로코-스페인, 2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각 7분 44초. 2008.(사진=로베르토 루발카바)

왜 스페인과 모로코였을까? 강대국들의 전략적 요충지가 돼 온 지브롤터 해협에 다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가깝지만 먼 관계이기도 하다. 어업 협정, 모로코를 경유하는 스페인 밀입국자 및 불법 이민자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작가가 진행한 다리 프로젝트로 실제로 아이들이 만날 수는 없었다. “저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은 발걸음을 통해 경계의 개념을 되돌아보며, 경계를 넘나드는 이민 탓에 불거지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까지 짚어냈다.

 

1959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0년대 중반 멕시코 대지진 이후 복구를 위한 국제 구호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이주했다. 처음엔 관찰자의 입장에서 멕시코시티를 바라봤다면, 점차 시야를 넓혀 멕시코시티와 라틴아메리카의 도시에 대한 관찰, 그리고 실현되지 못한 근대화의 열망에 대한 생각을 주로 ‘행위’로 표현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활동 반경을 넓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가 설치된 전시장. 사람들이 두 스크린 사이에 서서 영상을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사진=아트선재센터)

현재 작가가 특히 관심을 갖고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이슈는 ‘경계’ 그리고 ‘이민’이다. 작가 자신이 멕시코시티로 이주한 경험도 영향을 끼쳤다. 사실 경계 이야기에는 이민이 빠질 수 없는 이슈로 등장한다. 작가는 “멕시코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경계에 관심을 가졌다. 경계의 문제는 이민 이슈와도 연결됐다.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멕시코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미국을 넘어갈 때 멕시코가 중간 지대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멕시코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곳으로 기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 삼엄한 경계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들은 작가가 1997년 발표한 작업 ‘루프’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야기됐다. 당시 미국의 반이민 정책 강화로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으로 들어가기 어려워지자, 작가는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짧은 거리를 뒤로 하고,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횡단해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시드니, 상하이뿐 아니라 서울도 거친 이 여정은 무려 29일이 걸렸다.

 

‘루프’(1997)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건너는 가장 먼 길을 택해 세계일주를 떠나는 내용을 담았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에서 두 스크린 사이
다리 위에 서 있게 되는 관람객들

 

‘지브롤터 항해일지’(2008)에서 아이들이 손에 들었던 배 모형을 설치한 작업. 벽 쪽에 거울을 설치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줄을 만들었다.(사진=아트선재센터)

앞서 언급된 ‘다리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2006년 발표한 ‘다리’부터였다. 이 작업의 배경은 쿠바와 미국이었다. 쿠바 이민자들과 미국 이민 당국 사이 갈등을 작가는 한 기사에서 특히 강렬하게 느꼈다고 한다. 당시 쿠바에서 미국으로 불법 이민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뭍에서 잡히면 이민이 허용됐고, 바다 위에서 잡히면 추방됐다는 것. 기사를 본 작가는 ‘그렇다면 바다 위 다리를 건너오다가 잡히면 어떻게 되는가? 추방되는가, 허용되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다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중심이 된 ‘지브롤터 항해일지’의 경우 분위기가 부드러웠지만, 처음으로 시도했던 다리 프로젝트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영상 속에서도 지금 무엇을 하냐는 눈초리로 매섭게 쏘아보는 일부 사람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쿠바의 하바나와 미국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의 어민들이 양쪽 해안에서 각자 출발한 뒤 어선을 배치해 마치 해상에 떠 있는 것 같은 광경을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 ‘다리’는 지정학적 긴장감과 해결되지 않은 양국의 갈등을 상쇄하려는 작가의 은유적인 시도를 담았다.

 

프란시스 알리스 작가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경계와 그로 인해 불거지는 이민 이슈 등에 주목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밖에 오랜 세월이 흘러 지워진 파나마 운하 지대의 도로 중앙분리선을 다시 칠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페인팅’(2008), 지브롤터 해협 인근의 도시 모로코 탕헤르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을 기록한 ‘아이들의 놀이 #2: 물수제비뜨기’(2007) 등을 비롯해 6점의 영상 작업과 20점의 드로잉을 포함한 작가의 최근 대표작들을 볼 수 있다. 이 작업들에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다리, 즉 선(line)들이 특정한 갈등이 존재하는 장소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작가는 “내 작업에서의 다리는 나라와 나라를 나누는 경계보다는, 연결하는 것에 가깝다. 긴장 관계에 있기보다는 서로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점은 특히 ‘지브롤터 항해일지’ 작업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국제 사회의 여러 사회정치적 사안을 고려하며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그저 바다 건너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다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긍정적인 변화를 희망하는 작가의 마음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쿠바의 하바나와 미국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의 어민들이 양쪽 해안에서 각자 출발한 뒤 어선을 배치해 마치 해상에 떠 있는 다리를 만드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 ‘다리’(2006) 작업.(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한국의 난민 문제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작가는 “사실 나도 이민자다. 이민은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전 지구적인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멈출 수 없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는 건 동물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문화적 통합을 시도한다던가, 이민 출신자들을 통해 새로운 경제 인프라를 구축해 스스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끄는 방향도 있을 수 있겠다. 과정을 멈추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앞으로 작가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라크, 시리아 경계에 대한 프로젝트도 있고, 소수 난민 그룹 이야기도 다룰 게획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들의 경우 물리적 분리보다는 문화적, 종교적 분리에 의해 생긴 경계에 집중하고 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조금은 다른 경계들이 생기는 현장들에도 주목한다. 공동체가 서로를 배제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이자 관찰자로서 취하는 미묘한 입장은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꾸준히 이어질 예정이다.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11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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