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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장난감 병정, 도시 관문, 아파트 공지문에 존재하는 권력들

송은문화재단-델피나재단, ‘델피나 인 송은: 파워 플레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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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6-607합본호(추석) 김금영⁄ 2018.09.19 11:12:41

알라 유니스의 ‘양철 병장(Tin Soldiers)’. 1700년대부터 시작된 장난감 병정에 존재하는 권력 구조를 읽는 작업이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나와 친구, 부모, 사회, 더 나아가서는 국가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 사이에 숨어 있는 권력 구조, 그 이야기를 송은문화재단과 런던 델피나재단이 끌어 왔다.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12월 1일까지 열리는 ‘델피나 인 송은: 파워 플레이’전이다.

 

전시명 속 ‘파워 플레이’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저서 ‘우정의 정치학’(1994)에서 언급된 우정, 시민권 그리고 민주주의 개념 사이의 문제적 관계에서 비롯됐다. 데리다는 “개인들, 기관들 혹은 국가와 관계됐든 간에, 우정 안에 존재하는 힘의 균형과 이를 위한 지속적인 재협상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전시 또한 송은문화재단과 델피나재단의 우정에서 비롯됐다. 송은문화재단은 해외의 젊은 현대미술작가들을 소개하는 국가연계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는데, 올해엔 영국의 비영리 재단인 델피나재단에서 운영하는 델피나 레지던시를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는 새로운 개념의 국가연계 프로젝트의 결과물로서 이번 전시를 내놓았다. 델피나 레지던시를 거쳐 갔던 국내외 작가들 총 10인의 개인 작업 및 협업 작업을 선보인다.

 

안정주의 영상 작업이 설치된 모습.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장소이자 유명 관광명소이기도 한 전 세계 각국 도시의 관문을 담았다.(사진=김금영 기자)

델피나재단의 창립 이사이자 이번 전시의 협력 큐레이터인 애론 시저는 “사람들은 다른 존재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관계, 즉 우정을 쌓아간다. 그리고 이 우정에는 권력, 정치 등 다양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전시는 이 권력이 어떻게 현실에 실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우정의 여러 면을 고찰하는 시도를 한다. 우정이 지닌 권력에 존재하는 힘과 갈등, 그리고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까지 짚어본다”고 밝혔다.

 

알라 유니스, 안정주, 그리고 백정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통해 권력 관계가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고찰한다. 알라 유니스의 ‘양철 병장(Tin Soldiers)’ 작업엔 장난감 병정이 가득하다. 애론 시저는 “장난감 병정을 만드는 사업은 1700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돼 왔다. 먼 과거엔 귀족 가족을 위한 장난감으로 많이 사용됐다. 귀족 집안의 자제들은 훗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서 이 상징적인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백정기의 ‘메모리얼 안테나’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닌 동상을 거대한 안테나로 삼아 잡은 주파수를 들려준다.(사진=김금영 기자)

안정주는 세계 각국 도시의 관문에 주목했다. 국가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유명 관광명소이기도 한 관문들을 촬영했다. 애론 시저는 “어떤 도시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관문은 다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해석될 수 있는 장소로, 도시를 대표하는 권력의 상징물로서도 이야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정기의 ‘메모리얼 안테나’ 또한 특별한 장소들에서 촬영된 작업이다. 다만 안정주가 도시의 관문에 주목하며 장소를 부각시켰다면, 백정기는 특별한 장소에 존재하는,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 동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동상을 안테나로 삼아 공진하는 주파수를 잡아 관람객에게 들려준다.

 

바다 위 둥둥 뜬 부표처럼 전 세계에 표류하는 권력 관계

 

정소영, ‘어부를 위한 섬(Island for Fishermen)’. 2세트, 구리, 부표, 가변크기. 2018.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앞선 작업들이 특정 대상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의 도구를 보여줬다면 정소영, 야스마인 피서, 셰자드 다우드, 란티안 시, 박보나는 권력이 야기한 갈등을 살펴보며 구체적으로 현실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정소영의 ‘어부를 위한 섬’은 현실과 상상의 괴리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부표에 밧줄을 엮은 이 작업은 지정학적 분쟁이 일어나는 섬 이어도가 배경이다. 한반도 남해 수중에 잠겨 있는 이 섬 부근에 최근 중국 정부가 부표를 추가로 설치하며 논란이 됐다. 중국이 배타적경제수역 경계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부표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소영은 “한국의 설화 속 이어도는 유토피아로 이야기되지만, 현실의 이어도는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분쟁이 가득한 장소다. 이 괴리에 관심이 갔다”고 밝혔다.

 

야스마인 피서의 아카이브 자료(뒤)와 정소영의 ‘여성의 섬’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야스마인 피서는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을 텍스트, 지도, 아카이브 자료 등 출판물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는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국제 분쟁을 벌인 포클랜드도 직접 찾아가 조사했다고 한다. 야스마인 피서는 세계의 분쟁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이런 분쟁이 출판물에 어떻게 기록되며, 사람들은 이 출판물을 통해 어떻게 권력 구조를 바라보는지 살핀다.

 

셰자드 다우드의 영상 ‘투워즈 더 파서블 필름(Towards the Possible Film)’에서는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한다. 두 우주 비행사가 바다를 건너 한 섬에 도착하고, 기존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과 만나 경계전을 펼치다가 섬의 주인이 되기 위해 식민지와 지배자의 입장으로서 대립하기 시작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는 영토 분쟁을 떠오르게 하는 작업이다.

 

셰자드 다우드의 영상 ‘투워즈 더 파서블 필름(Towards the Possible Film)’의 한 장면.(사진=김금영 기자)

세 작가의 작업이 권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갈등을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살핀다면, 란티안 시, 박보나의 작업은 보다 직접적으로 피부에 다가온다. 란티안 시의 ‘공지(Notice)’는 아파트 복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지문을 붙인 작업이다.

 

란티안 시는 “이 공지문을 붙인 건 건물주 또는 아파트 관리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공지문을 통해 물탱크 청소나 층간소음 등 해당 건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예상할 수 있다”며 “또한 여기서 건물주와 세입자 간 사이 존재하는 권력 구조를 느낄 수 있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든가, 쿵쾅 소리를 내며 뛰지 말라든가 등 질서 있는 생활을 위해 세입자의 행동을 규제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미세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벽에 란티안 시의 ‘공지(Notice)’, 그리고 전시장 바닥에 박보나의 ‘선한 이웃’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박보나의 작업 ‘선한 이웃’은 작가가 느낀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여러 의자 위에 잘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글자들이 붙어 있다. ‘선한 이웃’을 뜻하는 ‘GOOD Neighbors’의 철자 하나하나가 의자 위에 적힌 것. 박보나는 ”모든 의자가 모여야 ‘선한 이웃’이라는 단어가 완성된다. 하지만 이 의자 위엔 전시장 안내원들이 앉아 있어 관람객들이 이를 알아차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왜 이런 구성을 취했을까? 박보나는 제주도 난민 문제와 관련해 반대 집회와 청원 등을 보고 느낀 점이 많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어릴 때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라고 배웠다. 하지만 점차 그런 단어가 없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다못해 옆집, 아랫집과도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점차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선한 이웃’의 존재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시 초반에만 전시된 오스카 산틸란의 영상 작업 ‘더 텔레패시 매니페스토(The Telepathy Manifesto)’의 한 장면.(사진=김금영 기자)

이 가운데 오스카 산틸란의 작업이 주목된다. 전시 초반에만 전시된 영상 ‘더 텔레패시 매니페스토(The Telepathy Manifesto)’는 다리의 위와 아래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다리 위에서 울고 있는 남성의 눈물이 아래 사람의 눈으로 떨어지는 이 영상은 짧지만 두 사람의 교류를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또 다른 작업 ‘매니페스토 오브 굿네스(Manifesto of Goodness)’는 총 12개 슬라이드로 이뤄졌다. 작가가 직접 산에서 소의 젖을 입에 머금고 도시로 걸어가 길고양이에게 먹여주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이번 전시의 시작점에 있었던 ‘우정의 정치학’은 우정 안에 존재하는 힘의 균형과 이를 위한 ‘지속적인 재협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위를 점하려고만 하기보다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통해 우정을 점진적으로 쌓아가려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작업이다.

 

전시장 3층 전경. 벽 쪽에 오스카 산틸란의 아날로그 슬라이드 작업, 그리고 전시장 한가운데에 김재범 & 란티안 시 협업 ‘파티’가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 사이 새로운 우정도 쌓였다. 김재범은 란티안 시와 이번 전시에서 여러 협업 결과물을 선보이며 작가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중 ‘파티’ 작업은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이 전시 준비를 위해 여러 번 만나며 친분을 쌓아간 과정을 짐작하게 해준다. 우노 카드, 빈 음료수병, 종이컵 등 상 위에 놓인 것들은 소박하지만 작품명 ‘파티’와도 같았던 작가들의 우정을 느끼게 한다.

 

애론 시저 협력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우정이 빚어내는 정치적인 결과물부터 인간과 자연(환경), 작가와 관객(참여), 손님과 주인(환대), 개인과 국가(시민권), 그리고 민족-국가(외교) 등 개인과 집단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종류의 권력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들의 서로 다른 전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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