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 한남은 캔버스를 손수 직조하고 이를 배열해 색면 추상 작업을 하는 에단 쿡의 개인전을 10월 28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이다. 본 전시를 통해 벨기에의 패트릭 드 브룩 갤러리, 로스엔젤레스의 아나트 에비기 갤러리에서의 개인전과 폰다지오네 107(토리노), 카포디몬테 미술관(나폴리), 첼시 미술관(뉴욕)에서의 그룹전을 통해 호응 받은 작가의 신작을 확인할 수 있다.
일견 색면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작가의 캔버스 작업엔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인 물감이 사용되지 않았다. 그는 붓 대신 베틀을, 물감 대신 색실을 사용해 만든 색색의 직물을 배열하고, 이를 바느질해 프레임에 끼운다. 작업 초기에는 회화를 그리기도 했던 작가는 작업의 재료가 아닌 주제로서 캔버스 그 자체의 물성에 관심을 가졌고, 캔버스 천에 염색을 하는 실험적인 단계를 거쳐 천을 직접 직조하는 현재의 작업에 이르렀다.
그의 캔버스 작업은 베틀을 이용한 직조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친 수작업을 요한다. 그렇기에 얼핏 보기에는 완전한 평면 같은 그의 작품에서 기계 방직이 아닌 수공에 의한 것임을 드러내는 증거들, 예를 들어 캔버스 표면에 올이 나가 있거나 실이 엉킨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하나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담긴 개념이다. 작가는 캔버스를 만드는 것은 “무언가를 복제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리처드 프린스, 셰리 레빈, 존 발데사리, 잭 골드스타인 등의 전유 예술 작가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기존 예술 작품의 소재나 실제의 사물을 미술의 범주에 끌어들인 전유 예술가와 같이 작가는 회화의 기본적인 재료 중 하나인 캔버스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다양한 색으로 변주시킨다.
그렇기에 전유의 개념 하에, 작가는 면 제조업체에서 공급하는 색의 범주 안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천을 직조하는 베틀의 너비에 맞춰 작품의 크기를 결정한다. 이로써 그는 작가로서의 주체를 숨기고 기존의 추상 회화나 회화의 재료인 캔버스의 복제에 초점을 맞춘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작품엔 베틀을 사용해 직접 천을 만들어내는 수공예적인 측면과, 캔버스를 복제해 일상적 소재를 예술로서 전유한다는 개념의, 두 가지의 이율배반적인 특성이 공존한다. 즉, 작가는 전근대적인 제작 방식을 통해 ‘복제와 전유’라는 현대미술사의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
작가는 회화를 위한 재료에 지나지 않았던 캔버스 그 자체를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씨실과 날실이 한 올씩 번갈아 교차하는 가장 단순한 직조 방식인, 평직을 사용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색감의 평면은 명상에 가까운 관람자의 집중을 이끌어낸다. 또한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모든 작품들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작가의 말과 같이, 전시장에 설치된 그의 작품들은 동일한 캔버스 직물의 사용과 그 색의 조화에 있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가나아트 한남 측은 “이번 전시는 직조된 캔버스에 담긴 수공의 흔적과 다채로운 색면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감상하고, 더 나아가 현대 미술의 화두인 ‘복제와 전유’의 개념이 어떻게 그의 작업에 적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