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0-621합본호 김수식⁄ 2018.12.24 14:30:23
올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면세업계가 정부의 ‘시내 면세점 추가 도입’ 안에 떨고 있다. 실적 대부분이 ‘따이공(중국 보따리 상인)’으로 인한 ‘빛 좋은 개살구’인 상황인데 시내 면세점이 더 늘어나면 남는 것은 과당경쟁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면세점이야 어떻게든 버틴다 하더라도 이미 실적이 최악인 중소‧중견 면세점들은 그야말로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기업 면세점 조용히 웃고… 중소-중견 면세점 남몰래 울고
면세업계가 올해 역대 최고의 매출을 내고도 남모를 고민에 속을 태우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는 면세업계가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17조 3617여억 원의 매출을 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연간 매출 14조 4684여억 원을 웃도는 사상 최고치다. 업계는 올해 연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30% 늘어난 19조 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매출이 가능했던 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153만 3892여 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16.3% 증가했다. 이와 함께 면세점에서 기록한 매출액도 1조 3213여억 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5% 급증했다.
이토록 눈부신 성적을 낸 면세업계지만 대기업 면세점과 중소-중견 면세점 사이에는 극심한 온도차가 났다. 매출 증가는 대기업 면세점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호텔롯데의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올해 10월까지 매출이 3조 4920여억 원으로 작년에 수립된 단일 점포 역대 최대 연매출 3조 1619여억 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호텔신라의 신라면세점 서울점도 2조 3866여억 원의 매출을 기록, 지난해 매출 2조 1239여억 원보다 높았고, 신세계면세점 명동점도 1조 6608여억 원으로 작년 매출 1조 3510억 원을 뛰어넘었다.
반면, 한화갤러리아가 여의도에서 운영하는 갤러리아면세점63은 올해 1~10월 매출이 2941억 원에 그쳐, 전년 2.8%였던 매출 점유율이 10월 말 현재 1.9%로 떨어졌다.
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동화면세점, 에스엠면세점 서울점 등 중소-중견 기업이 운영하는 12개 시내 면세점의 올해 1~7월 월평균 매출액은 399여억 원으로, 월평균 손익분기점(1156억 원)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면세업계 매출 증가는 허울… 송객수수료 경쟁에 한숨?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지난 12월 17일 서울 등을 중심으로 시내 면세점을 추가 한다는 내용을 담은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면세업계는 전반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특히, 중소-중견 면세점들은 “대기업 면세점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중소-중견 면세점의 설 자리를 빼앗는 거나 다름없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정부는 대기업 면세점은 지자체별 면세점 매출액 전년대비 200억 원 이상 증가, 혹은 외국인 관광객 20만 명 이상 증가 중에서 1가지 요건만 충족해도 신규 특허를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소-중견 면세점의 경우 상시 진입 허용을 검토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전국 시내 면세점에서 외국인 매출액과 이용자 수가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지자체별로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대비 30만 명 이상 증가하는 등 2가지 요건을 충족해야만 신규 특허를 검토했지만, 기준이 훨씬 완화되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내 면세점 추가 설치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편의를 제고해 한국 방문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면세업계는 난색을 표하며 “면세업계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면세점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고 시내 면세점을 늘리면 과당경쟁이 이뤄져 결국 돈 없는 중소-중견 면세점은 도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여기서 면세업계가 말하는 현실적인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송객 수수료’다. 송객수수료란 면세점이 관광객을 유치한 여행사에게 주는 대가를 뜻한다.
업계에 따르면 면세점 수수료는 2~3일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변한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즌에는 매일 달라지기도 한다. 수수료는 보통 15~20%대이지만 작년에는 40%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그렇다 보니 면세업계의 매출이 올랐다고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자를 겨우 면한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면세업계는 이를 잘 알면서도 송객 수수료를 낮출 수 없다. 업계는 “업계는 매출을 올리려면 일단 사람이 몰려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송객수수료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내 면세점을 늘린다면 송객수수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자본력으로 버텨도 중소-중견 기업은 도산
중소-중견 면세점은 더 답답하다. 중소-중견 면세점의 한 관계자는 “상황이 어려운데 경쟁을 더 부추기는 건 오히려 기존 대기업들의 점유율만 더 높여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또 “중소-중견 면세점은 면세점을 더 늘릴 수도 없지만 문을 열어도 문제다. 그만큼 시장이 안 좋다는 것”이라며 ‘탑시티’를 예로 들었다.
그는 “탑시티는 지난해 말 서울 마포구 신촌의 민자 역사 건물 안에 면세점 문을 열어야 했지만 아직도 개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면세업계가 그만큼 힘든 시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소-중견 면세점은 지금도 대기업 면세점과의 경쟁이 부담스럽다. 이대로라면 대기업 면세점은 자본력으로 버티겠지만 중소-중견 면세점의 경우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또 있다. 아직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인데다 최근 중국 정부가 따이공 및 온라인사업자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면세점의 ‘큰손’ 따이공들의 발길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
면세업계는 “올해 매출 증가는 대부분 따이공들에 의해 이뤄졌다. 매출의 70~80%를 이들이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따이공들이 한국으로 오는 발길을 끊으면 국내 면세점은 직격탄을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래저래 면세업계 현실이 참 녹록치 않다. 특히 중소-중견 면세점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 상황에서 막연하게 진행되는 정책 방향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