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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88) 방글라데시] 다양성·민주·소통의 인도와 통제·호통의 中 중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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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0-621합본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12.31 09:21:21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3일차. (다카)

구글 맵에 의존하여 시내 탐방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숙소에서 지난 밤 다운 받은 도보 이동용 구글 지도에 의존하여 국립 모스크(Baikul Mukarram Mosque)를 찾아간다. 작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안내하는 지도를 믿고 따라가 보니 신기하게도 모스크가 나온다. 1968년에 건축한 모스크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크다고 한다. 마침 국립박물관 행 버스가 모스크 앞을 지난다. 무더운 날씨에 걸어 가기는 먼 거리인데 어디선가 나타나 준 버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다카 시내의 웬만한 지역은 릭샤 요금 100 타카로 충분하지만 버스를 수배할 수만 있다면 공짜나 마찬가지다.

박물관은 자연사, 예술, 역사, 민속 등 그야말로 종합 박물관이다. 3층 세계문명관에는 한국관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2층의 절반은 방글라데시 투쟁과 독립의 역사에 관한 방대한 사진 자료와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처절하게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음을 확인한다. 꿈에 나타날까 두려울 정도로 잔혹한 사진이 많다.

아담한 스타 모스크

릭샤를 타고 스타 모스크(Star Mosque, Sitara Mosque)로 향한다. 수많은 별 문양으로 내-외부를 장식한 예쁘고 아담한 모스크가 주택가 한복판에 있다. 18세기 초에 건축했으니 300년 가까이 되었는데 재단장하면서 별을 닮은 수백 개의 타일을 붙여 명성을 얻었다. 길을 잘 모르는 릭샤 기사들을 붙잡고 물어 보느니 구글 지도에 의존하여 걷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스타 모스크에서 아르메니아 교회까지는 걸어서 간다. 거리는 900m, 걷기에 딱 좋은 거리이지만 문제는 진흙탕 길이다. 그래도 오늘 해가 숨고 간간히 비도 뿌리는 날씨가 낫다. 만약 해가 났다면 찜통더위에 고생 꽤나 했을 것이 분명하다.
 

피비린내 나는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의 사진 자료 등을 많이 비치한 방글라데시 국립 박물관. 사진 = 김현주 교수

아르메니아 교회

드디어 아르메니아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개념 없이 마구잡이로 들어선 집과 시설, 아파트 때문에 다카의 역사적 건물들은 가려지고 꼭꼭 숨어 있어서 찾아 가기가 쉽지 않다. 릭샤 기사들도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라고 한다. 원래 아름다웠을 교회는 흉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숨어 있다. 아르메니아 선교사들이 건축한 교회는 내부 제단 위 천장에 ‘1718’이라는 초석을 박아 넣어 건축 연도를 표시했다. 기독교를 세계 최초로 공인한 나라의 후손답게 그 먼 곳에서 무덥고 낯선 이곳까지 선교를 하러 온 선교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1718년에 지었다는 초석이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그 옛날, 이 무덥고 낯선 곳까지 와서 선교를 한 그들이 놀라운 뿐이다. 

무굴 제국과 영국 시절의 건축물, 기념비와 요새 등이 많은 이 도시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두세 곳 더 있으나 릭샤 기사도 길을 모르는 마당에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쯤에서 도시 탐방을 마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족히 3km가 넘을 먼 길이다. 릭샤 기사는 불평 한마디 없이 땀에 흠뻑 젖은 수건을 짜가며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숙소가 위치한 카말라푸르(Kamalapur) 기차역에 내리며 100 타카를 쥐어 주니 무척 고마워한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땀을 연신 훔쳐내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페달을 밟는 착한 릭샤 기사들이 많은 다카 시내의 모습. 사진 = 김현주 교수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내일 오후 귀국길에 대비하여 세탁, 영수증 정리, 여행 경비 결산 등 신변 잡일을 하며 한가로운 저녁 시간을 갖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여행을 무사히 마쳤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크다. 무척 힘들었던 여행이었다. 인도만으로도 벅찬데 거기에 방글라데시까지 얹었으니…. 방글라데시… 한번은 와보고 싶었던 나라였기에 인도 여행 끄트머리에 엮어서 벼락치기처럼 해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보낸 시간이 두 주일이 넘었다. 편안한 계절에 와도 힘든 곳을 무더위와 몬순이 괴롭히는 한여름에 해야 한다는 것이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염려가 되었다. 힘든 길, 불편할 길, 외로운 길을 해낸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 길을 지켜 주신 절대자께 감사드린다. 돌아가면 누군가 물을지 모른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돈 쓸 일 없는 여행

벌써 몇 끼니 째 숙소 근처 같은 식당에 간다. 음식이래야 밥과 닭고기 또는 엉성한 카레가 전부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이곳 사람들 먹는 식으로 먹으면 150 타카(2천 원)를 넘지 않는다. 문제는 음식보다 마실 것이다. 생수조차도 부담이 되므로 식사 때마다 아예 스프라이트, 환타, 미린다 같은 탄산음료 대용량 페트병을 들고 다니곤 했다. 결산해 보니 돈이라고 쓴 것도 없다. 돈 쓸 일도, 돈 쓸 곳도 없었다는 뜻이다. 고작 시내 교통수단 이용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내일 공항까지 가는 차량을 1400 타카(한화 1만 8천 원)에 예약해 놓았는데 아마도 이것이 가장 큰 지출이었을 것이다. 릭샤 기사의 이틀 벌이쯤 되는, 이곳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300년 전 지어진 모스크를 재단장하면서 별 모양의 타일로 치장해 ‘스타 모스크’란 명성을 얻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24일차. (다카 → 콜카타 → 쿤밍 행 항공기)

지독한 교통 체증


지난 이틀, 다카에서 지내는 동안 연일 비가 오는 날씨였으나 오늘은 해가 나니 아침부터 더워지기 시작한다. 차라리 질척거리던 날씨가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나를 태워준 여러 명 릭샤 기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태양이다. 아침을 먹고 나니 오후에 공항에서 가벼운 식사 한끼 할 만큼의 돈만 남았다. 빈둥거리며 늦은 오후 공항으로 데려다 줄 차량이 오기를 기다린다. 단 하루, 단 한 시간도 한가롭지 않았던 서울 생활, 도시 생활을 생각하면 이건 호사다. 여건이 좋은 관광지였다면 오전 나절 시내 한 바퀴 돌며 못 가본 곳들을 마저 채우겠지만 여기서는 어려우니 그나마 에어컨이 나오는 숙소에서 뒹구는 게 최선이다.

오늘 콜카타 행 항공기 출발은 저녁 7시, 공항 행 차량은 2시에 예약해 놓았는데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염려도 했으나 결국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공항 행 차량에 오르자마다 깨닫는다. 차는 지독한 체증에 갇혀 꼼짝을 못한다. 보행자, 우마차, 자전거, 사이클 릭샤. 오토 릭샤, 오토바이, 승용차, 트럭, 버스…. 바퀴 달린 모든 교통수단이 차선도 없는 도로에서 서로 먼저 가기 경쟁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시내 숙소에서 20km 거리인 공항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카의 시내버스. 무사히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고개 저으며 떠나지만…

탈 없이 방글라데시를 떠나는 것에 안도한다. 출국 절차는 다행히 신속하고 효율적이다. 쓰다 남은 돈 있으면 놓고 가라고 종용하는 출입국 관리도 없다. 공항 터미널은 깨끗하고 쾌적하다. 다카에서 한 시간 날아 도착한 인도 콜카타는 사흘 전 이곳을 떠날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과거 어떤 여행보다 가볍다. 이번 여행이 참으로 힘들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외롭고 지친 여행자에게 다가와 말동무가 되고, 가이드를 자처하고, 온갖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인도라는 말만 나와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이 나라를 떠나려니 작은 감회가 인다. 틀림없이 머지않아 지나간 순간들, 지나 온 길들이 생각날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걸 까맣게 잊고 다시 찾고 싶을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굿바이 인디아, 굿바이 방글라데시….

 

힘든 노동으로 하루에 겨우 9천 원 정도를 버는 릭샤 운전수들이지만, 표정만큼은 행복 그 자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25일차. (쿤밍 → 상하이 → 서울 도착)

중국의 무비자 환승 제도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중국 동방항공기로 콜카타 공항 이륙 후 2시간 30분 걸려 중국 윈난성 쿤밍(昆明, Kunming)에 도착했다. 귀국길 항공권은 콜카타 → 쿤밍 → 상하이 → 인천으로 되어 있으니 쿤밍 → 상하이 구간은 중국 국내선을 이용해야 한다. 즉 국제선-국제선 환승이 아니라 국제선-국내선-국제선 환승이다. 중국 국내선을 한 구간 이용하므로 중국 입국 비자가 필요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른바, TWOV(Transit Without Visa)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제3국으로 가는 확정된 항공권이 있는 사람은 24시간 이내에서 중국 체류를 허용한다는 뜻이다. 이뿐만 아니라 제3국 행 확정 항공권을 소지한 한국 등 주요 선진국 여권 소지자는 72시간(중국 대부분의 국제공항) 또는 144시간(베이징시, 천진시, 허베이성/河北省 일원 또는 상하이, 장쑤성/江苏省, 저장성/浙江省 일원) 무비자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폐쇄주의 국가 중국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런 합리적인 제도도 있기는 하다.

쿤밍 공항 출입국 직원의 무례

그런데 쿤밍 공항에서 야릇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하여튼 이번 여행은 끝까지 긴장감이 있어서 좋기는 하다. 콜카타 발 쿤밍 행 동방항공 여객기 승객의 대부분은 인도 사람들이기에 처음에는 인도-중국 사이에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쿤밍 공항에 도착해 보니 그들은 나처럼 대부분 중국 항공기를 이용해서 북미나 동아시아 등 제3국으로 가는 환승 승객들이었다. 당연히 나와 함께 임시 환승 비자를 받기 위한 줄에 서게 되었다. 중국인들을 위한 줄은 여러 줄 상시 개방되어 있으나 외국인 환승객을 위한 줄은 단 하나…. 불편하고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그러던 중 몇몇 인도인들이 이용자가 없는 빈 줄에 들어갔다가 중국인 입국 관리의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 거의 모욕에 가까운 무례한 언사로 원래 섰던 줄로 인도인들을 되돌려 보내는 중국 관리를 통하여 인도에 대한 중국의 태도, 나아가서는 중국과 인도의 관계의 일면을 엿본다. 자국민 굴욕의 현장을 목격한 여러 인도인들은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도 굴기’만이 중국에게 받은 설움을 갚는 방법임을 깨닫고 또 깨달았을 것이다.

아무리 한두 차례 영토 분쟁이 있었다고 해도, 아직은 국력으로 중국을 대적할 수 없다고 해도 중국은 이웃 인도, 그것도 잠재력이 충만한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멤버 인도를 그렇게 대할 수는 없다.

인도-중국 비교론

오늘 막 인도 여행을 마치고 중국에 입국한 김에 인도 여행을 통해 깨달은 바를 중국에 대입시켜 풀어 본다. 인도처럼 다양한 나라는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듯하다. 지구상 어떤 나라도 인도와 같은 다양성, 아니 이질성을 한 곳에 끌어 모아 국가라는 체제를 이룩하고 유지할 수 없을 듯하다. 수천 년 이질성을 조화로 묶어 온 인도가 가진 역사적 고유성을 따라올 나라는 없어 보인다. 종교, 인종, 기후, 계층은 말할 것도 없다. 언어를 한번 살펴보자.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국민들이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소통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런 다양성 관리 능력이 획일주의 사회 중국에는 없다.

글로벌 소통 능력

인도에는 주로 북쪽에서 사용하는 인도아리안(Indo-Aryan) 계열 인도유럽어족(74%), 남쪽에 사용 인구가 많은 드라비다 계열 언어(21%)와 기타 소수 언어 등 415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1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만도 29개(2001 센서스)라고 하니 혀를 내두른다. 인도 헌법은 지방주의(연방주의)를 존중하여 특정 언어를 국어로 지정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모국어로 소통이 안 되면, 힌두어(Hindi) 등 제2, 제3의 언어, 그것도 안 되면 영어로 소통을 유지하는 방식이니 인도인들의 다문화, 다언어 소통 능력은 세계 최강일 수밖에 없다. 소통에 관한 한 가장 출중한 글로벌 커뮤니케이터인 것이다. 그런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국에는 없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그렇지 인도인들의 규칙 준수 시민 정신 또한 곳곳에서 목격했다. 엉뚱하고 비효율적인 규칙이나 법규라도 순응하는 그들의 습성은 놀라울 정도이다. 규칙 순응이 민주 시민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볼 때 인도인들은 무조화와 혼란 속에서도 통일성과 통합성을 추구하는 덕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인도에게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the most populous democratic country)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부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민주주의 전통이 중국에는 전혀 없다.

교육 투자

인도를 여행하면서 새삼스럽게 놀란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교육에 대한 이 나라의 관심과 배려, 투자이다. 그 험한 라다크 산악 지역에서도 버스는 다니지 않아도 노란 스쿨버스는 반드시 때를 맞추어 다닌다. 스쿨버스조차 다닐 수 없는 오지에 사는 학생들을 위하여 아예 곳곳에 기숙학교를 만들어 국가 경비로 모든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베푼다. 물론 그 교육이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굳이 인도와 중국을 비교한다면 이 모든 것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고, 인도가 절대 우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중산층의 성장

인도에도 중산층의 저변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성장하고 있음을 자주 느꼈다. 도시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개인 승용차부터 TV 광고를 통하여 매일 저녁 보게 되는 개인 용품, 화장품, 가전제품, 주택-주방 용품, 뷰티 용품 등의 광고는 서구식 생활양식을 동경하는 인도 중산층들을 겨냥한 것들이다. 왕성한 소비 욕구와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뒷받침되어 인도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인도 경제의 성장 속도는 중국의 경제 성장 초기 모습과 흡사하다는 느낌이다. 인도가 인구는 물론이고 경제 규모에서도 중국을 앞설 날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이런 이웃의 존재를 모르고 무자비하게 다룬 쿤밍 공항 이민국 관리의 교만한 얼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해하기 어렵게 거대한 이웃 중국

환승을 위하여 잠시 거치는 중국 쿤밍 장수공항(长水机场)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이런 거대 구조물을 볼 때마다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그들의 힘을 느낀다. 이런 규모의 공항 또는 기차역을 중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수십 개는 봤으니 말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웃이 우리에게는 풀리지 않는 암호처럼 버티고 서있는 셈이다. 쿤밍에서 상하이까지 3시간 20분, 상하이에서 환승하여 이번 여행의 19번 째 마지막 항공 구간 1시간 30분을 날아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도-방글라데시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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