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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日 미나미카와 ‘이미지 재현’과 美 힐든 ‘생산 과정’이 만날 때

학고재 청담 2인전서 "어울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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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7호 김금영⁄ 2019.02.12 17:12:11

일본 작가 미나미카와 시몬(왼쪽)과 미국 작가 네이슨 힐든.(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화면이 간결하다. 여러 색이 아닌 단조로운 색 몇 가지만 사용했고 화면 구성 또한 복잡하지 않고 심플하다. 미나미카와 시몬, 네이슨 힐든 작가 작품의 첫인상이다.

학고재 청담이 3월 10일까지 일본 작가 미나미카와 시몬, 미국 작가 네이슨 힐든의 2인전을 연다. 도쿄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나미카와 시몬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하는 네이슨 힐든이 한국까지 날아와 만난 것. 배경만 보면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만나 작품으로 공명하며 이미지의 탄생 과정부터 재현까지 아울러 눈길을 끈다.

 

미나미카와 시몬, ‘팩트체크(Fact Check)’.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5 x 194cm. 2017. ©Shimon Minamikawa

도쿄에서 태어난 미나미카와 시몬은 뉴욕과 베를린 등 대도시에서 거주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 왔다. 애초 그의 관심은 이 대도시에서 범람하는 이미지의 재현에 있었다. 작가는 “초기작에서는 대도시의 삶, 그 중에서도 우울함을 주제로 다뤘다”고 밝혔다. 그리고 근작에서는 대도시 표면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기존의 흔적을 희미하게 지우고, 추상화시키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오간다. 예컨대 ‘팩트체크’에서는 세 개의 분할된 화면 중 한곳에 사람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 그려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처럼 친숙하다. 그런가 하면 구체적인 구상을 담지 않은 화면은 전체적으로 보면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상기시키기도 해 대중적 이미지와 순수미술 사이의 범주를 자유롭게 오간다.

 

미나미카와 시몬, ‘세 개의 스핑크스(Three Sphinx)’.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 x 112cm. 2017. ©Shimon Minamikawa

작가는 “앞선 ‘컨디션 체크’ 작품에 이어진 시리즈다. 세 개의 칸은 각각의 단색 배경을 지녔다. 하지만 이 작품을 명확하게 추상화, 또는 초상화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다. 얼굴은 반밖에 그려지지 않았고, 선도 추상화라고는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간단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라며 “초상화도, 추상화도 그리다 만 것 같은 이 화면은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완성돼 있지 않다. 결국 그림은 있는데 팩트는 아무것도 없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팩트체크’라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세 개의 스핑크스’에서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스핑크스 이미지가 단번에 눈에 띈다. 어디서나 봤을 법한 이미지를 추상적 회화로 구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은 회화를 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유명한 스핑크스를 봤을 때 그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바로 이미지를 본다”며 “내 작품에서는 재해석된 스핑크스 이미지가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익숙한 스핑크스를 보면서도 ‘이게 스핑크스라고?’ 하며 실제 스핑크스 이미지와 내가 그린 스핑크스 사이의 차이를 생각하며 그림을 보게 된다”고 밝혔다.

 

미나미카와 시몬, ‘무제(Untitled)’.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 x 112cm. 2017. ©Shimon Minamikawa

또 다른 작품 ‘무제’에는 두 여성의 얼굴을 마치 잔상처럼 희미하게 그려 놓았다. 먼지를 닦는 티슈로 테이블을 닦듯 화면을 닦아 그린 작품이다. ‘컨디션 체크’부터 ‘세 개의 스핑크스’ 그리고 ‘무제’까지 작가는 동시대 풍경의 익숙한 이미지를 빠른 필치로 그려내는 동시에 여기에 추상화를 시도한 이미지의 결과를 보여준다.


외부에서 접한 이미지의 추상화적 재현 vs
주요 조형 요소로 끌어들인 대량생산 과정

 

네이슨 힐든, ‘무제(Untitled)’.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104 x 85.7cm. 2018. ©Nathan Hylden

미나미카와가 외부에서 접한 이미지의 파노라마를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는다면, 네이슨 힐든의 작업이 주로 이뤄진 곳은 작업실이다. 그는 작업실 내부의 가장 사소한 사건에 집중해 이를 구조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회화를 보여준다. 미나미카와가 대도시를 산책하는 사이, 힐든은 작업실 속에서 은둔하며 이미지의 재현보다는 작업 과정의 흔적에 집중한 것.

‘무제’라고 통칭되는 그의 작품들은 작업 과정까지 예술의 범주다. 알루미늄 시트를 쌓아올린 뒤 스프레이로 색을 입히고, 뒤집힌 체크 마크 모양의 붓자국을 두 개 남긴다. 일정 기간 동안 작품을 건조시킨 뒤 물을 뿌려 미처 건조되지 않은 물감을 씻어내고 남겨진 붓 터치는 일종의 그래픽적 흔적이 된다.

 

네이슨 힐든, ‘무제(Untitled)’.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104 x 85.7cm. 2018. ©Nathan Hylden

작가는 “내 작업에서는 존재와 부재가 키워드로, 연속적인 속성을 지닌다. 개별 작품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각각 건조되는 시간을 부여한 뒤 화면을 잘라내고 씻어내기를 반복한다”며 “화면에서 칠이 돼 있지 않은 부분은 알루미늄 시트가 쌓였던 부분으로, 이전 작업의 흔적이다. 존재와 부재가 공존하는 연쇄적인 작업을 통해 각 작업이 완전히 개별적일 수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작업의 일부 과정을 전문가에게 위임하기도 하지만 콜라주와 판화,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는 등 작가의 저자성을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또 다른 ‘무제’ 작품은 화면 한 가운데가 잘린 모양새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작업실 바닥에 떨어진 구겨진 종이를 촬영한 뒤 컴퓨터 그래픽에서 이 종이만 제거한 화면이다. 작가는 붓 자국을 남기거나 페인트를 뿌리기에 앞서, 레이저커팅 기법으로 종이의 윤곽 모양에 맞춰 잘랐다. 결과적으로 알루미늄 판에는 구겨진 종이의 주변부 이미지만 남고, 대상보다는 그 주변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설명 없이는 구겨진 종이의 흔적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추상화로 느껴지는 작업이다.

 

네이슨 힐든, ‘무제(Untitled)’. 알루미늄에 아크릴릭, 78.4 x 64.4cm. 2019. ©Nathan Hylden

작가는 “이 작품에서는 내 작업실 자체가 작업의 도구로 활용됐다. 거창한 미술이 아닌 사소한 물체로부터도 비롯되는 효과를 노렸다”고 밝혔다.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생산의 과정 자체에 관심을 두는 그는, 예술의 공예적 특징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 제품 생산과 예술 작업 간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업실 안과 밖에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재현의 결과물까지 두 작가의 시선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지선 학고재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서 오늘날의 풍경을 포착하는 미나미카와와 오늘날의 사회적 특징을 반영하는 작업을 하는 힐든을 한자리에 모았다”며 “동시대의 풍경을 빠른 필치로 담은 이미지 중심의 미나미카와, 그리고 동시대 미술의 제작 방식에 집중하는 힐든의 작품을 교차 배치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다양한 성격과 가능성을 드러내고, 두 작가가 간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나아가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미술에 있어서 회화가 차지하는 위상을 재점검하고, 그것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네이슨 힐든의 작품(왼쪽)과 미나미카와 시몬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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