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당시의 ‘절규’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 속 감춰진 방사능 유출의 ‘속삭임’까지. 아트 스페이스 루모스가 일본 작가 도요다 나오미의 전시를 3월 11일~4월 28일 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8년 동안 지속돼 온 다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화면엔 아름다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해바라기도 하늘을 향해 활짝 고개를 들고 있으며 이제 막 수확한 탐스러운 감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지만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려한 벚꽃을 심기만 해도, 해바라기를 심기함 해도, 감을 따기만 해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즉 이 아름다운 풍경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 ‘사실처럼’ 보이게 하려는 설정에서 비롯됐다.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씨유가 될 수 없고, 주홍빛으로 영근 감은 곶감이 될 수 없었다. 달콤한 향기에 취해 꽃 위에 앉은 나비가 먹은 것은 세슘덩어리 꿀이었다.
2011년 3월 11일, 진도 9의 강진이 일본 동북부 해안을 강타했고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15m 높이의 쓰나미가 다이치 원전의 방파제를 넘어오면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다이치 원전)의 전원 공급이 끊겼다. 이로 인해 다이치 원전의 원자로 6기 가운데 4기의 동력이 완전히 소실됐고, 4기 중 3기에서 노심용융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대기와 바다로 유출됐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9년. 작가는 후쿠시마에 아직도 존재하는 방사능의 후유증을 포착해 왔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속 사람들의 경각심은 옅어져만 가지만 여전히 그곳에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사실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꼬집는다.
작가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아시아, 발칸,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치열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는 분쟁지역에서 열화 우라늄탄(원전연료 제조과정에서 생기는 열화우라늄을 사용해 탱크 등의 두꺼운 장갑을 뚫을 수 있도록 고안된 포탄)의 피해를 목격하면서부터 분쟁의 실상 중에서도 핵무기, 원전 등의 문제에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201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우크라이나에 세워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던 작가는 대지진과 대형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휩쓸고 지나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2011년 3월 11일, 모든 일을 놓고 후쿠시마로 향한 그가 마주한 건 평화롭던 도시와 마을이 아비규환의 지옥이 된 현장. 지난 2012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1년의 기록을 한국에 알렸던 그가, 8년 동안 취재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갖고 다시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을 찾는다.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2011년 3월 11일의 원전 사고로부터 8년이 지났다. 지금도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 지역에 남아 있는 세슘 137의 방사능 반감기는 30년이다. 그것은 200년, 300년 동안 모든 생명체에게 유해한 방사선을 내뿜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진을 보는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에는 보이지 않는 방사선이 날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이 그들의 외침과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그들의 탄식과 소원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며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은 ‘후쿠시마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는 그 목소리를 한국의 여러분에게도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