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평. 조선시대에는 말을 키우던 방목장으로 유명했던 이곳이 ‘중고차 도매시장’이란 수식을 달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다. 자동차 관련 시설들이 환경 저해 시설로 분류돼 서울 중심부에서 밀려나게 되면서, 서울시 성동구 송정동과 동대문구 답십리동 사이에 있었던 평야 지대에 대규모 중고자동차 매매단지가 들어선 것.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도, 차를 수리하거나 부품을 교환할 일이 있는 사람들도 으레 장안평으로 갔다. 그러기를 40여 년.
최근 서울시는 1979년 준공 이후 서서히 낙후돼 온 장안평의 모습을 역사 속에 기록하고, 주거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으로의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활성화’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백(白)의 발화(發話)’ 시리즈로 알려진 사진가 정정호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서울시 도시활성화과의 지원과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의 협찬으로 진행되는 정정호 작가 사진전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가 4월 2~14일 류가헌에서 열린다.
눈의 인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미니멀하게 표현한 ‘백의 발화’로 미국 휴스턴 포토 페스트에 초대되기도 했던 그가 복잡다단한 장안평의 공간과 시간성을 사진에 담았다. 이제 5개월 동안의 장안평 프로젝트를 모두 마치고, 촬영한 사진과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 선보이는 자리가 이번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전이다.
전시는 크게 중고차 부품 거리의 집적된 오브제와 장안평 중고차 매매상가, 답십리 부품상가 일대의 풍경 두 개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정비소와 부품유통업체들이 즐비한 블록 맞은편에 연립주택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낯선 풍경부터, 지붕 위에 빼곡히 쌓인 부품들과 거대한 생물의 장기처럼 보이는 내연기관의 모습까지…. 사진가 정정호는 오랫동안 문화적 가장자리였던 장안평이 품고 있는 내러티브를 착실히 담아냈다. 풍경들은 한 문명이 끝나고 난 폐허의 느낌마저 든다.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사진가 정정호는 여전히 장안평에 시선을 두고, 그 공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담고 있다. 장안평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기억이 있는 사람이든 혹은 장안평을 한 번도 경험치 못한 사람이든, 사진가 정정호가 선사하는 이제 곧 변화될 ‘한 시절’의 풍경에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