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비눗방울은 무슨 맛이야?” “달콤한 맛!”
‘달콤한 비눗방울’전을 기획한 안종현 작가는 아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이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하늘을 두둥실 떠다지는 비눗방울은 동심을 불러일으키며 그 시절의 행복했던 감정, 달콤했던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맞는 답은 비누 성분을 지닌 “쓴 맛”이다. 그렇다고 “달콤한 맛”이 틀린 답일까? 둘 중 어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이 모토가 바로 ‘달콤한 비눗방울’전을 이뤘다.
아트스페이스M이 개관전으로 ‘달콤한 비눗방울’을 5월 12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에는 김나리, 방은겸, 아트놈, 안종현, 양하. 오태원, 유재윤, 홍학순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 참여 작가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안종현 작가는 “달콤함이란 무엇일까? 일차원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달달한 맛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달콤함은 행복을 둘러싼 시간성과 현실성과 맞닿는다”고 말했다.
이를 설명하는 한 예로 그는 SNS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사람들이 SNS에 행복한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사진 속 달콤한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지만 그 행복은 이미 지나버린 것으로, 사실은 찰나의 시간성을 지녔다. SNS에 사진을 올리자마자 바로 자신이 처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짧은 찰나의 행복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점점 둔해져 “내 삶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구나”라며 길게 이어지는 차가운 현실 앞에 좌절하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보지 못하고 놓칠 수 있는 찰나의 행복과 거기에 따라오는 좌절까지 끌어안아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이번 전시는 던진다. 쓴맛과 달콤한 맛이 공존하는 비눗방울, 그것이 이번 전시의 중심이다.
전시의 시작은 아트놈 작가가 연다. ‘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재미주의, 즉 ‘퍼니즘’으로 명명하는 그의 작품들은 밝은 색감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에 작가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화한 양머리의 ‘아트놈’과 아내의 모습을 토끼 소녀로 캐릭터화한 ‘가지’가 등장한다. 그가 제시한 작품들은 행복의 달콤한 면모를 극대화한 느낌으로, 이를 안종현 작가는 “달콤함의 종합세트”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아트스페이스M의 미로 같은 공간은 마치 숨은 보물찾기처럼 아트놈의 작품을 곳곳에 숨겨 놓은 느낌이다. 작가는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재미있는 구조를 갖춘 이번 전시 공간에 매력을 느꼈다”며 “또한 격식을 차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드러내는 작가들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어 기뻤다”고 전시 참여 소감을 밝혔다.
2층에 설치된 아트놈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동양적인 느낌이 강하다. 와불상을 연상케 하는 거대 설치물이 전시장 한가운데에 누워 있고, 반가사유상과 똑같은 포즈를 한 캐릭터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3층 전시장엔 똑같은 위치에 서양적 느낌이 강한 작품을 대칭되도록 배치해 놓았다. 2층에 미륵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존재한다면 3층엔 미의 여신 비너스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설치된 식이다. 아름답고 익살스러운 화면은 재미와 동시에 행복한 느낌을 전해주지만 양면성을 지녔다. 예컨대 비너스는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카오스로부터 태어난 존재로 빛과 어두움과도 같은 이질적인 면모를 동시에 품었다.
피에타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그림도 있다. 관련해 안종현 작가는 “죽음을 맞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은 피에타 상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상의 표정은 편안하고, 어찌 보면 행복해보이기까지 한다. 현실적인 상황과 판단으로만 이야기될 수 없는 달콤함과 행복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아트놈의 공간에 이어 오태원 작가의 공간이 이어진다. 앞선 아트놈의 작품이 환상과도 같은 달콤한 행복을 보여준다면, 오태원의 작품에는 현실성이 개입되기 시작한다. 공간 하나를 가득 채운 조형물은 일단 크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외형도 눈부시다. 그런데 굉장히 단단해 보이는 이 조형물을 가득 채운 건 공기로, 점점 공기가 빠져 시간이 지날수록 쭈그러드는 모습이다. 마치 행복이 주는 달콤함에 흠뻑 빠졌다가 점점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삶의 행복은 달콤하고 또 쓰기에 존재한다
그리고 안종현 작가의 공간에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아트놈, 오태원의 공간이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면 이곳엔 어두운 색감의 사진들이 설치됐다.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사진작업을 지속해 온 안종현이 찍어 보여주는 풍경은 화재 현장들이다. 그는 “우리는 대체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뉴스를 통해 화재 소식을 접하면 ‘큰일났네’ ‘안타깝네’ 반응하고, 정보를 얻은 즉시 금방 관심이 끊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다시 관심을 연결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 주제인 ‘달콤함’과 ‘행복’과 연관 지어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행복에 만취해 현실을 잊었던 사람들은 이내 다시 찾아온 차디찬 현실 앞에 달콤한 꿈이 와장창 깨져 좌절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을 인식한 뒤 다시금 행복을 찾는 시작을 하는 선택지도 있다. 안종현의 작품이 그렇다. 그의 화면 속 현실은 너무 차갑고 외롭지만, 그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마주하게 함으로써 달콤함과 쓴맛이 공존하는 현실 그리고 행복을 인식하려는 노력의 첫 발걸음을 시작한다.
현실을 인식했다면 또 중요한 것이 이 모든 것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김나리 작가가 보여준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대표되는 ‘마틸다’ 시리즈를 통해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한 여러 모습을 담아 보여준다. 마틸다의 표정은 새침하기도, 우울하기도, 때로는 궁금증을 품는 등 다양한 면모를 품었다. 여기엔 타인에 대한 의심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의심까지 담겼다. 작품들 사이 거울이 설치돼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다가 이내 자기 자신의 모습까지 바라보는 데 도달하게 된다.
현실과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은 사람들에게 전시는 잠시 쉴 공간을 마련한다. 바로 방은겸 작가의 공간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적인 달콤함에 대해 분석하듯 파고드는 걸 내려놓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달콤함의 이미지에 접근하며 행복한 상상을 불어넣는다. 사과, 바나나 등 달콤한 과일이 눈길을 끌고, 작품의 색감도 반짝반짝 빛을 발해 생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자신을 더욱 세밀하게 돌아보는 홍학순 작가의 공간이 이어진다. 1998년부터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한 그는, 동그라미들은 합하고 분리시켜 ‘토끼’를 포함한 여섯 친구들을 탄생시켰다. 토끼와 여섯 친구들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듯 다양한 도형 등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전한다.
안종현 작가는 “현실의 언어가 아닌 홍학순의 ‘토끼 언어’는 마치 개미가 더듬이로 소통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즉 보이고 들리는 부분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적 미시의 관점에서 더욱 세밀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돌아본 이들에게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자”고 말을 건네는 양하 작가의 공간이 기다린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성찰했어도 막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의문이 생기기 마련. 양하는 간단하고도 익살스러운 이야기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달리기, 부채춤 등 하기 싫은 것들을 하고 있는 식빵, 라면, 바나나 등의 모습이 바로 그것. 식빵, 라면 등은 그가 실제로 좋아하는, 작가에게 달콤한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들이라 한다. 안종현 작가는 “양하는 달콤함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취향을 잃지 않고 지키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며 “때로는 싫은 것을 현실에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달콤함을 잊지 않고 행복을 위해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유재윤 작가는 위트를 잊지 않는다. 그는 개탄스럽고 어려운 현실을 풍자하는 작업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 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다양한 인형들이 만나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전시의 마지막은 이 모든 작가들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달콤한 믹스커피’ 공간이 장식한다.
안종현 작가는 “이번 전시 작가들은 자신만의 취향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힘을 보여준다. 눈이 아닌 온몸으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이기에 오히려 일차원적 달콤함이 아닌 다면적인 삶의 달콤함을 다룰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마냥 달콤함에 빠져 현실에서 도피하지도, 차가운 현실 속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마냥 절망하지도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가자고, 작가들은 자신이 찾은 ‘달콤한 비눗방울’의 달콤함과 쓴맛을 모두 맛보게 해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본질적으로 모두 갖고 있는 달콤함, 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는 달콤함. 하지만 달콤함의 맛에 딱 맞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건 아니라고, 전시는 강조한다. 마냥 붕 뜨지 않고, 묵직한 현실감까지 균형감 있게 조화를 이뤘기에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