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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 이야기] 신림동 CCTV 사건과 죄형법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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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41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9.06.24 08:54:22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가 집에 침입하려 한 이른바 ‘신림동 CCTV’ 사건의 30대 남성에 대해 ‘주거침입 강간미수’(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고, 법원은 “행위의 위험성이 크고 도망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며 남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저도 영상을 보았는데요, 정말 섬뜩했습니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여성을 따라가는 남성, 문을 열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더군요. 언론 보도처럼 경찰은 처음에 이 남성을 주거침입으로만 수사했습니다. 그러다가 여론이 이 남성을 성폭행범으로 몰고 가니까, 강간미수 혐의를 추가 적용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입니다.

변호사로서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남성은 정말 위험한 자라고 생각됩니다. 수사자료를 보지는 않았지만, 재판부에서 행위의 위험성과 도망의 염려 부분을 충분히 판단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속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이 남자에게 ‘강간미수’라는 죄명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라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죄와 형벌을 법에 미리 규정해야 한다는 근대 형법의 기본원칙입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행위도, 법률이 범죄라고 규정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조항을 지켜내고, 얻어내기 위해서, 우리의 선배들은 싸워왔습니다. 이 조항은 바로 국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근본 원칙입니다.

자의적인 국민 처벌 조항을 가졌었던
나치독일과 소련 공산주의


1935년 독일, 즉 나치 독일 시절이죠, 형법 제2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건전한 국민감정(gesundes Volksempfinden)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의 규정이 없어도 벌할 수 있다.” 그리고 1926년 소련 형법 제16조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의 목적상 사회에 위험한 행위는 실정법을 떠나서 처단할 수 있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30대 남성이 5월 3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국가가 원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마음대로 빼앗고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들입니다. 독일과 소련은 위 조항들은 각각 1946년과 1958년에 폐기했습니다.

다시 신림동 CCTV 사건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강간미수’라는 죄는 강간이라는 행위로 나아갔으나(이를 법률용어로 실행의 착수라고 합니다) 강간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 규정을 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간의 실행으로 나아갔다고 평가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강간을 위한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고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집의 문을 여는 행위가 강간 실행의 착수에 해당하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에 나온 경찰의 보도자료처럼 이 남성이 ‘10분 이상 문을 열려고 시도하면서, 피해자에게 문을 열라고 말한 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남성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오지 않는 한, 그 남자가 강도를 하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는지, 살인을 하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는지, 강간을 하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는지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죄명 변경은 신뢰 떨어뜨리는 결정

그 남성이 저지른 행위가 범죄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게 무슨 범죄인지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수사기관은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평가할 수 있는 주거침입죄만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수사기관이라고 해서, 그 남자를 강력히 처벌하고 싶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론에 떠밀려 죄명을 ‘주거침입 강간미수죄’로 변경한 것은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킨 행위입니다. 아예 ‘살인미수’나 ‘살인예비죄’를 추가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살인죄 적용은 무리라고 판단했겠지요. 만약에 그 남성이 성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한 행위였다고 자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설사 남성에게 성범죄 전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드러난 사실만을 가지고 강간미수죄로 죄명을 변경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가 정말 신뢰로 가득 차 있다면, 독일 나치의 형법처럼 “건전한 국민감정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의 규정이 없어도 벌할 수 있다”라는 조항 하나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적인 경험으로 그 조항이 어떤 방식으로든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죄형법정주의는 단순한 법 이론이 아닙니다. ‘자유’의 근본 원리 중의 하나입니다. 죄형법정주의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자유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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