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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확행이 비즈니스가 되는 ‘도쿄 라이프스타일’에서 서울의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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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42호 최영태⁄ 2019.06.25 11:02:27

한때 일본인들이 지어낸 신조어로 단카이(団塊, 덩어리) 세대라는 말이 있었다. 2차대전 종전 뒤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들은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개개인이 구별되지 않고 서로 비슷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단카이 세대와 같은 이미지를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인이 일본인에 대해 갖고 있다. ‘일본인은 집단적이고, 집단심리로 산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최근 또 일본에서 시작된 신조어로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헌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개인이 구분되지 않는 단카이 세대라는 개념과, 작지만 확실한 개개인의(다른 사람과는 상관없는) 행복이라는 개념은 사실 잘 들어맞기 않기 때문이다.

 

관광 가이드의 빨간 깃발을 졸졸 잘 따라다니는 집단 행동으로 유명했던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 이른바 '단카이 세대'의 한 특징이기도 했다.(사진 = JD Lasica) 

 

너와 내가 잘 구분되지 않는 덩어리 사람들이라면(이는 일본인의 특징이자 또한 ‘전세계에서 가장 일본인과 비슷하게 산다’는 한국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지만 확실한 개성을 즐기면서 살기보다는 아무래도 옆집 사람은 뭘 행복으로 여기며 사는가를 비교하게 되고, 아파트의 평수라든지, 자가용 브랜드라든지를 비교하는 순간, ‘소확행’은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일본인을 하나의 덩어리(개인이 아니라 민족으로서의 일본인)로만 보는 한국인들에겐 개개인의 일본인을 만나는 일이 굉장히 충격적일 수 있다. 기자는 70년대에 ‘깨끗하지 않은 일본인 유학생’을 대학에서 만나고서는 인식의 대혼란을 겪은 바 있다. ‘일본인은 야비-잔인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다’고 초중고 12년간 배워왔는데 눈앞에 나타난 실제의 일본인 청년은 그리 청결한 짓을 하지 않으니 도대체 개념과 인식의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장기 불황 아래서 시작된 '소확행'은 한국에서도 큰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확행 개념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 연결된다.(사진=연합뉴스)

 

신간 ‘도쿄 라이프스타일 - 당신의 취향이 비즈니스가 되는 곳’(정지원·정혜선·황지현 지음 / 미래의창 발간 / 320쪽 / 1만 6000원) 역시 한국인이 뉴스에서 만나는(즉 정해진 규격 같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환상을 깨주는 책이다. 일본에서는 지금 각 개인이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비즈니스 대세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책 속의 문장을 보자.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 만큼 너무나 좋아하는 제품이 있다면 일단 만들라.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원하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이 일을 되풀이하라.” 어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충고 같지만 이는 그 어떤 시장조사와 소비자 인터뷰로도 나올 수 없는 혁신적인 스몰비즈니스를 알려줄 수도 있다. 별 의심 없이 ‘나는 그냥 이게 좋아’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 그 마음을 꾸준히 키워가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255쪽)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단 만들어보라고?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 업체는 그들(대중)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내놓아야 대량 판매가 가능했으므로, ‘내가 좋아하니 만든다’는 콘셉트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한 개인이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그런 스타일을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 특정(‘누구나’는 아니지만) 소비자층에게 어필할 수 있으므로 “일단 만들고 살펴보라”는 일견 무모한 요구가 가능해진다는 소개다.

 

코에 호텔의 신개념 공간.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에선 '내가 가진 것으로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사진 = 코에 호텔) 


‘일단 해보라’는 가이드에는 일본의 호텔 CEO도 고개를 끄떡인다.

호텔 코에나 스트라이프 인터내셔널의 CEO 이시카와에게 더 관심이 가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잘 판단하고 현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왜 인기인지 고민해, 여력이 된다면 직접 한번 해보는 것. 물론 그 시도가 모두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왜 그래야만 할까? 이시카와가 말했듯이,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11쪽)

이시카와 사장 역시 ‘뭐든 일단 해보는’ 태도에 찬성하고 있는 것이다.

 

긴자 무지 호텔의 비품. 무지(Muji)의 기업정신 그대로 '심플함'을 실내 공간뿐 아니라 비품에서도 밀고 나갔다. (사진 = 무지 호텔)

 

도쿄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인 무지와 츠타야로 시작해보자. 두 브랜드 모두 우리가 ‘생활에서 사용하는’ 분야를 다루면서도 자신들의 업을 독특한 관점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중략)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무지의 철학은 심플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한편 츠타야는 서점을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으로 재정의했고, 이처럼 스스로 정의한 고객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서점에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15쪽)

라이프스타일이 거의 동질화된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견 없이 해당 카테고리를 장악하고 있는 매출 1위 브랜드를 선택하지만, 지금처럼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화된 시대에는 인지도나 인기가 아니라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브랜드를 선택하게 된다. (중략) ‘변화된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에 합당하느냐’라는 점은 소비에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36쪽)

너나없이 선택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나의 인생철학(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브랜드가, 예컨대 ‘심플하게 살자’는 무지의 철학이 그런 삶을 추구하는 특정 소비자층(모든 소비자가 아니라)을 파고들면서 성공하는 시대라는 게 이 책의 포인트이고, 그런 실례를 도쿄 현장에서 발품을 팔면서 만나게 해준다.

 

'당신의 보통에 맞춰드립니다'를 콘셉트로 미라이쇼쿠도(미래식당)를 창업한 고바야시 세카이. 이 식당에서는 손님이 50분간 일하면 밥값을 절반으로 깎아주는 등 새로운 개념이 도입됐다.(사진 = 미라이쇼쿠도 홈페이지)  


책의 저자들은 △베스트셀러 ‘맥락을 팔아라’의 저자인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 △이마트 브랜드전략팀 소속 정혜선 △SK텔레콤 브랜드 마케팅 그룹 소속 황지현 등으로 모두 ‘브랜드 전문가’들이다.

저자들은 ‘그 어떤 마이너한 취향도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는’ 도시 도쿄에서, 글로벌 브랜드부터 골목길의 작은 편집숍까지, 라이프스타일 추구가 곧 비즈니스가 되는 현장을 찾아나선다.


수납 용품을 판매하던 브랜드가 호텔을 만들고, 음반과 책을 팔던 숍이 아파트를 제안하는 당황스러운 자세가 어떻게 소비자를 파고들었는지에 대한 이들 공동 저자들의 설명을 듣다보면 “내 물건은 (객관적으로) 이만큼 좋아요”라고 외치는 건 이제 과거에 비하면 그 중요성이 형편없이 덜 중요해졌고, “이런 라이프스타일로 한 번 살아보는 건 어때요?”라고 제안하는 게 훨씬 중요해졌음을 알게 된다.


도쿄가 이렇게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플랫폼’이 된 것은 서울보다 먼저 불황을 겪으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서울도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극장에서 영화와 함께 사는 주거'를 주제로 내건 필름스와코에는 단지 안에 극장뿐 아니라 촬영 시설까지 갖추었다. (사진 = 필름스와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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