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코앞에 둔 가운데 향후 부동산 시장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경기도 노른자위 ‘고양 덕은지구’가 분양 포문을 열었다. 이곳의 분양가, 청약률 등은 각종 규제로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대형건설사들에게 향후 새로운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CNB가 9일 이곳을 다녀왔다.
경기 고양 덕은지구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파크 9단지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택지개발 당시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곳이다. 행정구역은 경기도지만 생활권은 사실상 서울이다. 마곡지구와 가양대교로 연결돼 있으며, 최근 3기신도시로 예정된 창릉지구와 지척이다. 옛 국방대 터와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연계한 미디어 복합타운 조성도 예정돼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10년 64만㎡ 부지에 4815세대 규모의 도시개발지구로 지정했으며, 2021년부터 순차적으로 집들이가 시작될 예정이다.
첫 번째 주자는 대방건설이다. 지난달 말에 대방노블랜드 346가구(특별공급 소진물량 제외)의 분양에 나섰다. 이후 10월에는 중흥건설의 ‘덕은중흥S클래스’가, 연말에는 주상복합 ‘고양덕은에일린의뜰’가 공급될 예정이다. 내년 초에는 GS건설의 ‘자이’가 A4, A7블록에서 분양된다.
“묻지마 청약 옛말”
첫 성적표를 두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대방노블랜드가 평균 청약 경쟁률 6.26대 1로 전 평형 1순위로 마감됐는데 경기도 단지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상암DMC와 붙어있는 위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망스런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상암동 아파트의 3.3㎡당 평균 가격은 2588만원이다. 대방노블랜드의 평균분양가는 3.3㎡당 1850만원으로 상암동의 71% 수준이다. 실질적으로는 같은 생활권이면서도 30%가까이 저렴한 셈이다.
이런 장점에 비하면 6.26대 1이라는 성적은 결코 내세울 만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 실례로 상암동 인근에서 2017년 공급된 고양항동지구 계룡리슈빌(계룡건설), 호반베르디움(호반건설)의 인기평형은 평균 경쟁률이 수십대 1에 달했다.
덕은지구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CNB에 “정부의 강력한 억제책으로 부동산시장이 휴식기에 들어간 상태에서 분양가상한제 이슈까지 터지다보니 청약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비싸다고 느낀 것 같다”며 “저 정도 입지라면 부동산 활황기 때는 대거 묻지마 청약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똘똘한 한채’ 기준 더 높아져
덕은지구 원주민들이 대부분 청약을 거부한 점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대방노블랜드 우선입주권을 부여받은 원주민 55세대 가운데 동호수 추첨에 응한 세대는 15세대에 불과했다. 세대당 토지보상금이 1~2억원 수준인데, 분양가가 최소 6억원 이상에 달하면서 4~5억원의 추가부담금을 내야할 처지가 됐기 때문.
이들은 대방노블랜드 보다 입지가 나은 블록에 지어질 주상복합아파트를 분양받길 원하거나, 아예 임대아파트 입주를 택하고 있다.
김갑성 목림원공인중개사 대표(덕은지구 원주민)는 CNB에 “예전에는 분양받은 뒤 전매해서 상당한 차익을 챙길 수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부동산시장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비교적 수월하게 전매될 수 있는 한강조망권 블록의 입주권을 받기를 원하는 원주민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원주민들의 토지·주택을 수용하면서 보상용으로 주는 입주권은 1회에 한해 전매가 허용되는데, 이때 적정한 매매차익을 보장받기 위해 보다 입지가 확실한 곳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건설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덕은지구의 경우, 공공택지라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가격이 주변시세에 비해 저렴함에도 불과하고 청약률이 시원찮게 나온데다, 원주민들마저 더 나은 ‘경우의 수’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정부는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분양가가 지금보다 훨씬 저렴해지게 되고, 이는 그만큼 건설사 수익을 악화시킬 수 있다.
삼성물산·GS·대우건설…줄줄이 분양 연기
이처럼 시장상황이 불투명해지자 분양일정을 연기하거나 아예 후분양제로 돌아선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삼성동 ‘상아2차 재건축(래미안 라클래시)’ 조합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분양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며 분양을 미루고 있던 차에 분양가상한제라는 복병을 만났다. 이들은 아예 후분양으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률 70~80% 이후에 분양하는 후분양제는 분양가 책정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분양이 계획됐던 ‘과천제이드자이’와 ‘과천 푸르지오 벨라르테’도 아직 분양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과천제이드자이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GS건설이, 과천 푸르지오 벨라르테는 대우건설 컨소시엄(대우건설·금호산업·태영건설)이 시행사로 나서 공급하는 공공분양 아파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CNB에 “한마디로 현재의 부동산 시장은 대혼란기를 겪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민간택지까지 시행되면 분양가 마지노선을 지키려는 건설사와 분담금을 낮추려는 조합(또는 원주민), 분양가격을 규제하려는 지자체와 HUG, 청약자들의 극심한 눈치작전이 맞물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덕은지구가 입지에 비해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이런 현실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