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나 먹어라(Let them eat money).’ 워크숍 기간 중 한 참여자가 이렇게 외쳤을 때 ‘이거다’ 싶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본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결코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연출가 안드레스 바이엘의 말이다. LG아트센터가 136년의 역사를 지닌 독일 극장 도이체스 테아터와 독일의 훔볼트 포럼이 만든 ‘렛 뎀 잇 머니’를 9월 20~21일 선보인다. 2000년 3월 개관하며 기획 공연 시즌제를 선보인 LG아트센터 올해 20번째 기획 공연 시즌을 선보이는 중이다. ‘렛 뎀 잇 머니’는 올 하반기를 여는 첫 공연으로,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첫선을 보였고, 해외 공연으로는 한국이 첫 무대다. 이에 개막을 앞둔 9월 18일 바이엘 연출이 공연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공연은 경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전문가 그리고 일반 시민들과의 리서치, 토론 등을 통한 참여형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돈이나 먹어라”는 발언도 여러 토론 도중 한 참여자를 통해 나온 발언이다. 과학자, 예술가, 관객들이 2년 동안 가진 여러 연구조사와 심포지엄의 주제는 ‘2028년,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로, 향후 10년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여러 위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물이 연극 ‘렛 뎀 잇 머니’다.
바이엘 연출은 “미래 식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워크숍 기간 중 경제, 즉 자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때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에 불만을 가진 한 참여자가 ‘렛 뎀 잇 머니’를 외쳤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봉착한 문제는 단지 자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자본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난민 대이동, AI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력, 데이터의 통제와 감시,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더 이상 권리가 당연하게 취급되지 않는 시대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토론자들 사이 갈등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세대에 따라 갈등이 첨예했다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는 어디든 콘센트 하나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세계와 연결될 수 있어, 나라에 위기가 있으면 위기 없는 곳에 가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반면 나이가 있는 세대는 콘센트에 흐르는 전기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이를 책임지고 있는지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며, 이 중심엔 강력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또한 “또 있었던 주요한 화제는 기후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점점 숲이 줄어가고 있고, 이로 인한 기후 변화로 삶의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는 어느 한 나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예술가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거친 건 도전이기도 했다고. 바이엘 연출은 “연구를 2017년 가을부터 시작해 대략 1년 반 정도 리서치 기간을 가지는 동안 13개의 워크숍을 열었고 공식적인 심포지엄 자리를 열었다. 누구든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올 수 있도록 했다. 예술은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기에 한계가 있는 점도 있었다”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존재론적 고민이기도 하다. 이 공동의 고민을 함께 나눌 자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향후 10년으로 제약을 둔 건 보다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바란 의도다. 바이엘 연출은 “확신을 갖고 극에서의 이야기를 10년 뒤로 설정했다. 20년 뒤의 이야기를 다루면 SF물과 같이 현실과 멀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극에서 다루는 미래의 위기 중 난민, 질병, 경제 위기 등 이미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도 있다”며 “시간적으로는 10년 후이긴 하지만 사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를 말하기 위한 거울로 작용한다.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수 있는 위기에 대해 미리 대처하는 것, 그것이 이 공연의 목표”라고 말했다.
공연은 202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두고 유럽 사상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상황 아래서 전개된다. 2023년 이탈리아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유럽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렛 뎀 잇 머니’는 공연의 제목이자, 극 중 법의 지배가 사라진 뒤 무력감과 고착된 권력 구조에 반대하는 저항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은 유럽의 경제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의사 결정을 내렸던 정치가, 자본가, 권력자들을 납치해 질문을 시작한다. 질문과 추궁을 받는 사람들은 서로 한편이 되기도, 혹은 책임을 전가하는 반대편이 되기도 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무대 위엔 새하얀 소금이 깔리고, 와이어에 매달린 커다란 철판이 바닥과 천장을 오간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인물들의 끝없는 설전과 라이브 방송,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댓글이 투사된다. 여기에 배우들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 더해지며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바이엘 연출은 “우리 공연을 초청한 결단력 LG아트센터의 결단력과 용기에 감사한다. 한국과 독일은 미래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비단 분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에 관한 존재론적인 고민들까지 포함한다. 또 이건 한국과 독일뿐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영되는 이야기”라며 “우리는 위기에 무언가를 빼앗길 수도 있지만, 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측은 “도이체스 테아터가 현재를 거울삼아 사려 깊게 그려낸 미래는 우리에게 던지는 섬뜩한 경고장이자, 함께 해결해야 하는 숙제와도 같다”며 “이번 공연은 우리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예측과 준비에 동참해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LG아트센터는 문화를 통해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2000년 LG가 건립해 공익법인 LG연암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연장이다. 2003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기업에 주어지는 ‘메세나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