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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로 보는 기업사 - 삼성전자 ②] '효리 효과'로 애니콜 3배 ↑ … 감독은 차은택

北과 비밀접촉해 찍은 '남女북女' 광고는 훗날 영화화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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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5호 윤지원⁄ 2019.10.11 14:15:34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집행된 추억의 CF들을 매개로 각 기업의 역사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첫 번째 기업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글로벌 대기업 삼성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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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시작된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 윗줄부터 '겨울 산', '산악인 허영호', '음성다이얼' 편.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산속이든 어디든 잘 터져서 ‘애니콜’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선언했다. 당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꾼다”는 말로 유명해진 이 기조는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추진한 것으로, 삼성그룹을 세계 1류 기업으로 도약시킨 계기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파란색 타원형의 그룹 CI와 파란색의 기업 고유 컬러도 이때부터였다.

같은 해 삼성전자는 첫 ‘애니콜’ CF를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제2의 창업을 선언한 1988년 아날로그 휴대폰 시장에 처음 뛰어들었고, 모토로라, 노키아 등 세계적인 휴대폰 회사들의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그리고 1993년, 산지가 많은 특징을 가진 우리나라의 지형을 염두에 두고 ‘어디에서나 잘 걸린다’는 의미를 가진 ‘애니콜’이라는 제품명의 휴대폰을 내놓고 CF를 집행했다. 눈 쌓인 산길에 자동차 바퀴가 빠져 고립된 운전자가 외진 환경에서도 잘 터지는 삼성 휴대폰 덕에 도움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애니콜’을 고유 휴대폰 브랜드로 삼고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실적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산악인 허영호가 정상에서 삼성전자 휴대폰으로 “여기는 정상”이라며 베이스캠프와 통화하는 내용의 CF를 내보낼 무렵에는 ‘한국 휴대폰의 자존심’이라는 구절이 메인 카피로 쓰일 만큼 품질이 발전하고 실적도 크게 올랐다.

삼성전자는 이후 애니콜 메인 모델로 국민배우 안성기를 기용했다.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에서나 봤을 법한 초고속열차 지붕 위에서의 추격장면을 재현한 큰 스케일의 광고도 화제였다. 휴대폰의 음성인식 다이얼 기능을 이용해 “본부! 본부!”를 외치는 안성기의 대사 또한 크게 유행했다.
 

 

이효리가 출연한 애니콜 CF들. 윗줄부터 'V540 슬라이드', '사진 작업중', 'Slim & H' 편.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이효리 신드롬 속 매출 300% 신장

1990년대 말부터 PCS, 시티폰 등이 등장하며 휴대폰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경쟁도 심해졌다. 젊은 세대 위주로 휴대폰 소비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 가장 뜨거운 젊은 톱스타를 모델로 기용할 필요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뮤지션 세븐, 박정아 등을 내세웠던 삼성전자는 2003년, 걸그룹 핑클 출신으로 갓 솔로 데뷔한 이효리를 새로운 애니콜 모델로 기용했다.

이효리는 솔로로 나서자마자 음악 이외에도 방송, 패션 등 여러 문화 및 산업에 영향을 끼치면서 ‘효리 신드롬’, ‘효리 이펙트’ 같은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를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든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애니콜’ CF이기도 했다.

당시 세련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와 CF 등으로 명성이 높았던 차은택 감독이 연출한 애니콜 CF는 ‘애니모션’, ‘애니클럽’, ‘애니스타’ 같은 오리지널 가요 음원과 함께 이효리, 에릭, 이준기, 박봄 등 젊은 스타들이 함께 주연을 맡은 뮤직비디오로도 제작되었다. 이 음원들은 가요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고, 뮤직비디오 조회수도 높았다.
 

 

 

영화 '오션스 13'에서 최고급 한정판 휴대폰으로 등장하는 삼성 휴대폰. (사진 = 영화 화면 캡처)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효리가 모델로 활약한 4년 동안 300%의 애니콜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또한, 그 사이 삼성전자의 애니콜 휴대폰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할리우드의 초특급 블록버스터 영화에 애니콜의 뛰어난 성능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대사가 나올 정도였다.

‘배트맨’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사 워너브러더스는 이 회사의 인기 프랜차이즈 영화 ‘오션스13’를 제작하면서 삼성전자 측에 “이 영화만을 위한 특별한 전화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극 중 라스베이거스 호텔 재벌로 나오는 알 파치노가 삼성이 만든 한정판 휴대폰을 반드시 구하고자 한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제품 이미지가 노출되고, 심지어 ‘휴대전화 전파도 차단하는 보안 시설’ 내에서 알 파치노의 휴대폰 벨이 울리고, “이건 삼성이니까”라고 대답하는 대사까지 나왔다.

이렇듯 애니콜과 이효리는 서로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삼성전자는 2006년 말 이효리의 애니콜 모델 계약을 1년 연장하면서 무려 9억 원을 지급했고, 계약이 끝난 뒤에는 그동안 수고해준 이효리에게 헌정하는 ‘고맙다 효리야’라는 광고를 제작해 집행하기도 했다. 이효리 역시 삼성전자와의 계약이 끝난 뒤에도 모토로라 등 타사 휴대폰 광고를 모두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함께 찍어 화제가 된 CF 영상.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조명애와 흑금성, 그리고 국정농단

당시 이효리의 애니콜 CF 중 가장 큰 화제가 됐던 것은 북한의 무용수 조명애와 함께 찍은 2005년의 광고다. 조명애는 조선국립민족예술단 소속의 ‘무용배우’로 2002년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에 북측 기수단으로 참가하고 문화공연을 하며 한국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조명애 팬클럽’이라는 카페가 개설되고, 1만 7천여 명이 가입하기도 했다.

광고는 남북한의 대표적인 여성 문화예술가인 이효리와 조명애가 한 남북한 합동 행사에서 짧게 스치듯 만나지만, 같은 민족, 같은 또래, 같은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깊이 공감하고 소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28초짜리 인터넷용 영상과 15초의 짧은 TV용 CF 이효리 편, 조명애 편이 각각 제작됐다. 상하이에서 촬영된 해당 광고는 귀순하지 않은 북한의 유명인사가 처음으로 한국의 상업광고에 출연한 사례이며, 세계 45개국에서 보도될 만큼 주목받았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북한을 드나들며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의 안기부 스파이로 활동한 박채서 씨는 이 애니콜 광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박 씨와 북한 공작원 리호남이 기획하여 성사된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박 씨가 한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 따르면 2000년대 초 남북관계는 두 차례 연평해전 및 탈북민의 증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으로 경색된 상황이었는데,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가 북한과의 화해 무드로 돌아서기 위한 명분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박 씨에게 자문 요청을 해왔다는 것.
 

 

영화 '공작'에 카메오 출연해 과거 조명애와의 CF 촬영 장면을 재현한 이효리. (사진 = CJ ENM)


박 씨에 따르면 처음에는 남남북녀의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아 급히 찾은 대안이 남북 합작 CF였다. 이에 대한민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협력에 나섰고,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애니콜을 두고 대한민국 톱스타와 최고의 제작진이 북한의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형식으로 CF 제작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다.

이 일화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공작’을 통해 재현되기도 했다. ‘공작’은 바로 박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남한 스파이에 관한 영화인데, 이 CF 제작 현장을 재현하는 장면에 이효리 본인이 12년 전의 자신 역할로 출연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CF와 영화 ‘공작’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얽혀있어서 삼성전자로서는 불편한 관심이 일기도 했다. 2005년 이 CF를 진두지휘한 인물은 이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피의자였던 차은택 감독이었으며, 이 영화의 촬영 기간 2017년 1월 중순부터 7월 하순까지는 탄핵 정국과 특검 수사 및 재판이 한창이던 시기다. 그리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이와 관련해 구속, 수감 되어 조사를 받고 있던 시기와도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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