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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로 보는 기업사 - 삼성전자 ③] IMF고난-이미지실추 땐 가족-헌신 띄우며 위기탈출

김연아 등 유명인 모델 기용했었지만 요즘은 '삼성' 자체가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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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 2019.10.11 16:50:37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집행된 추억의 CF들을 매개로 각 기업의 역사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첫 번째 기업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글로벌 대기업 삼성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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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시리즈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IMF에 지친 마음 위로한 따뜻한 광고

1997년,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를 얻어맞았다.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서민 경제가 도탄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글로벌 시장으로 주 활동 영역이 넓어져 IMF의 타격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뿌리를 내린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은 필요했다.

그해 가을 삼성전자가 시작한 캠페인이 바로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이다. 더 클래식의 1994년 히트곡 ‘마법의 성’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지점토 인형작가 신인식의 클레이애니메이션(찰흙 공예로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통해 가족과 고향, 추억에 관한 소소하고 정겨운 에피소드가 펼쳐진 시리즈다.

처음 ‘또 하나의 가족’은 저녁도 거르고 컴퓨터만 하는 손주와 컴퓨터를 잘 모르는 할머니의 귀여운 동문서답이나, 휴대폰으로 첫 아이 탄생 소식을 전해 듣는 아빠의 기쁨을 담은 가족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이어 신인식 작가와 협업을 통해 1970년대 스포츠 영웅인 김일, 홍수환 씨, 그리고 불굴의 마라토너 이봉주 씨 등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차례로 선보였다.

특히 김일과 홍수환은 한국인 대부분이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거구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싸워 이기며 국민을 열광시키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키워줬던 그들이다. IMF 시대에 미국 메이저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며 국민에게 위안을 준 박찬호, 박세리 선수와 같은 존재였다.

‘또 하나의 가족’ CF는 과거 그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마을에 한 대뿐인 TV 앞으로 모였던 온 동네 사람, 김일의 레슬링을 따라하며 놀던 어린이들, 그리고 해외 원정에서 승리한 홍수환이 고향 마을에 한 대뿐인 전화로 엄마에게 “챔피언 먹었다”는 소식을 전했다는 이야기 등 영웅에 얽힌 추억을 재현해 주었다.
 

 

2007년 삼성전자는 '또 하나의 가족' 11주년을 맞아 2기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기의 주인공인 '훈이'는 이 캠페인이 처음 시작된 1997년 4월에 태어난 아이라고 설정됐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완성도·메시지·시대성 다 갖춘 명작 CF

클레이메이션이라는 기법 또한 매 프레임마다 세트와 인형을 일일이 꼼꼼히 만들고 움직여 만들면서 작가의 손길과 정성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 및 정서와 잘 어울렸다. 대한민국 광고사에는 ‘또 하나의 가족’ 전부터 많은 클레이애니메이션 작품이 존재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 CF는 애니메이션의 완성도, 메시지와 형식의 조화, 그리고 시대적 상황과 대중적 공감 등이 더해지며 가장 대표적인 클레이애니메이션 광고로 꼽히게 됐다.

이렇듯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은 삼성전자의 가전, 통신기기 기술이 각박한 세상에 따뜻함을,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힘겨운 시기를 견뎌내야 했던 대중의 감성까지 어루만져준 광고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2001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포함해 많은 광고상을 수상하며 국내 광고사 최고의 명작 캠페인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은 이후 2009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이어진 국내 최장수 기업 캠페인이기도 하다. 그 사이 애니메이션은 지점토 인형에서 컬러 고무 점토로, 나중에는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지만 평범한 서민 가족의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기술과 관련된 소박하고 따뜻한 에피소드를 담는다는 기조는 변치 않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사진 = 또 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


논란마다 “가족이라면서 왜?” 꼬집어

광고의 대대적인 성공 덕분에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슬로건은 삼성전자를 가장 잘 수식하는 말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관련해 부정적인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이 슬로건은 그런 상황을 반어적으로 비판하는 데 자주 이용되어 왔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화제가 되는 자리에서는 “말로만 또 하나의 가족일 뿐, 진짜 가족처럼 대해야 할 노동자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거의 항상 나온다. 또한, 그룹의 편법 승계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서도 “또 하나의 가족 모르게 친가족만 챙긴다”는 식으로 비꼬는 말들이 뒤따르곤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반도체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피해자 인권단체 ‘반올림’과 관련해서도 ‘또 하나의 가족’은 자주 반어적으로 언급됐다.

특히 ‘반올림’ 결성의 계기가 된 최초의 백혈병 피해자 황유미 씨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독립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본래 기획 단계부터 편집 완성 단계까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프로젝트였다. 영화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황 씨의 유족들과 반올림 회원들 다수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을 선호했지만, 개봉관 확보나 마케팅 등 현실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영화의 주제와 정서를 고려해 개봉 전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게 됐다.

‘또 하나의 가족’은 삼성전자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오랫동안 크게 기여해 온 캠페인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10년 이상 방영되며 시청자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위와 같은 반어적 수사가 더해지면서 이미지 홍보 수단으로의 효력은 점차 약해졌다.
 

 

시베리아 영하 40도 환경에서 애니콜 통화 테스트를 하는 삼성 직원들을 내세운 기업 PR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이미지 실추하자 고행(苦行) 하며 “기대 부응할 것”

급기야 2007년 삼성 비자금 특검과 ‘태안 기름 유출 사고’ 같은 사건의 중첩으로 인한 리스크 상황에 이를 방어할 수 있는 PR 수단으로는 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삼성 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와 해양 원유 유출 사고는 삼성전자의 대국민 신뢰도와 기업 이미지를 크게 깎아내렸다. 결국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은 경영 쇄신안을 내놓고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삼성그룹 권력의 중심이자 여러 논란의 진앙지로 지목됐던 전략기획실도 해체했다.

바로 이 시기에 새로운 삼성의 그룹PR 캠페인이 나왔다. '더 뛰겠습니다, 더 땀흘리겠습니다'라는 광고 슬로건 아래, 극단적인 환경으로 유명한 세계 각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삼성그룹 내 임직원들의 모습을 그렸다.

1편은 사하라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 뉴카이로 신도시 건설에 한창인 삼성물산 직원의 모습을 그렸다. 2편은 아마존 정글의 악천후 속에 위치한 브라질 마나우스 전자복합단지에서 일하는 삼성SDI 직원이 주인공이다. 3편은 영하 40도의 시베리아에서 애니콜의 통화품질을 테스트하는 삼성전자 직원의 고난을 그렸다.

이들은 각각 "힘들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춥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맡은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인내하고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각 CF의 마지막에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라는 자막이 공통적으로 들어갔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삼성은 이윤만을 생각하는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기업이 아니라, 고객을 먼저 생각하며 헌신할 줄 아는 기업이라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다시 신뢰를 얻고자 한다.
 

삼성전자의 최근 빨래건조기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마케팅비는 세계 최대, 유명 모델 캐스팅은 자제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9년 현재, 삼성전자는 지금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국정농단 관련 뇌물수수 등의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최근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에서는 26위에 오르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이밖에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미국 시장에서 가장 신뢰받는 IT 기업’ 등등 각종 기업 이미지 관련 조사에서 거의 언제나 상위권에 언급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최상위권인 리스트 가운데 하나는 마케팅과 매체에 관한 분석 및 뉴스, 통계자료 등을 발행하는 미국의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100대 광고주' 리스트다. 2017년 말 기준 삼성전자는 연간 112억 달러(한화 약 13조 3100억 원)를 지출해 그해 1위에 랭크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2년 이후 매년 10조 원 후반대에서 12조 원 초반이 마케팅비를 지출해 왔다. 스마트폰 및 반도체 사업의 대성공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매달 1조 원 이상을 글로벌 마케팅에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스케일과 독창적인 이미지로 화제를 모은 삼성전자의 QLED 8K TV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그런데 이처럼 막대한 마케팅비를 지출해온 최근 수년간, 삼성전자 CF에 ‘톱스타’ 모델이 등장하는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세계적으로 인지도 높은 케이팝 스타나 아이돌 스타, 한류 영화배우 등이라 해도 삼성전자 CF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에어컨 모델로 활약한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가장 최근까지 삼성전자 전속모델로 장수한 마지막 유명인이다.

대신 삼성전자의 최근 CF는 대부분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실제로 그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할 법한 일반인이나 그러한 이미지의 무명 모델을 내세워 신기술을 경험하고 감동한다는 내용 위주로 전개되고 있다.

이제 삼성전자에게 '톱스타'란, 인기 많은 유명인사가 아니라 자사의 브랜드와 상품 그 자체라는 자신감이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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