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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국감’에 웃은 대기업들

긴장 풀린 재계, 표정관리 나선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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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4호 도기천 기자⁄ 2019.10.21 10:56:10

자유한국당은 아예 대놓고 이번 국감을 ‘조국 국감’으로 선포했다. 이 덕분(?)에 대부분 재계 이슈는 국민들 관심에서 멀어졌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文실정 및 조국 심판’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국회 국정감사가 ‘조국 정국’에 휘말리면서 골목상권 침해, 일감몰아주기, 규제개혁, 최저임금 등 재계 현안들이 뒷전이 되고 있다. 대기업 총수 등 100여명이 넘는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이들에게 할애된 시간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공방에 묻히고 있으며, 그나마 제기된 재계 이슈는 조 장관 관련 뉴스에 빛이 바래고 있다. CNB가 알맹이 빠진 국감 현장을 들여다봤다.

이번 국감을 대하는 재계 분위기다. 국감 한달 전부터 국회 출입기자들을 찾아다니고 국회의원 방마다 돌며 명함을 뿌리던 대기업 대관 담당 직원들의 모습은 ‘조국 사태’ 이후 보기 힘든 풍경이 됐다.

재계와 관련된 사안을 주로 다루는 국회 상임위는 정무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다. 정무위는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사를 관리하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다. 환노위는 고용노동부와 산하 기관들을, 산자위는 중소벤처기업부 등을 다룬다.

이들 상임위의 기업관련 이슈는 수두룩하다.

정무위의 경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의 불완전판매 문제가 당장 발등의 불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IBK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자산운용사(유경, KB, 교보, 메리츠, HDC)는 3243명의 투자자(법인 222개 포함)에게 7950억원의 해외금리 연계상품을 판매했는데, 예상손실액이 전체 투자금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일부는 이미 ‘깡통계좌’가 된 상태다.

금감원이 실태조사에 나선 결과 상품설계·제조·판매 전 과정에서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 소홀, 내부통제 미흡, 불완전판매 등 문제점이 발견됐다.

따라서 이번 국감에서는 금융피해 소비자에 대한 보상책, 소비자보호 취약요인 등에 대한 개선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8일 열린 정무위의 금융감독원 국감에서는 조 장관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의 적절성과 위법 의혹 등을 놓고 여야 간 거센 설전이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은 조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의혹을 제기하며 감독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조 장관 부부와 사모펀드 운용은 별개라는 논리로 방어막을 쳤다.

이러는 사이 ‘DLF·DLS 사태’는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일부 의원들이 이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갑’횡포·노사문제 등 단골메뉴 사라져

전날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국감도 예전 분위기와 많이 달랐다. 과거 국감 때는 가맹점주들의 본사 횡포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며 유통대기업들을 긴장시켰지만, 이번 국감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의 의지를 경청하는 수준이었다. 조 위원장은 “대기업집단의 부당지원·일감몰아주기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앞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을(乙)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는 ‘기업 불공정 거래관행 현황 점검’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실태 점검’을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 전체의 공동 국정감사 의제로 내세웠지만 여야 간 ‘조국’ 난타전 탓에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환노위의 국정감사도 조 장관 이슈로 파행을 겪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요금수납원 대량 해고 사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시정명령 등 현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이에 관한 질의는 눈에 띄지 않았다.

반면 조 장관 자녀 문제에는 의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4일 환노위의 고용노동부 국감 때 “청년의 실제 생활을 정책에 반영할 기회를 갖겠다”며 고려대 대학원생 A씨를 국감 참고인으로 세웠는데, A씨는 “2주만에 논문을 쓰고 신청도 안한 장학금을 받은 조국 장관 자녀를 지켜보며 저와 제 친구들은 취업도 학업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며 조 장관을 언급했다. 역시 ‘조국’으로 귀결된 국감이었다.

‘조국 먼지털기’ 된 국감

올해도 100여명이 넘는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이처럼 조 장관을 둘러싼 쟁점에 밀려 제대로 된 질의·답변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해수위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장인화 포스코 사장, 최선목 한화 사장, 홍순기 GS 사장, 이갑수 이마트 사장을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으며, 행정안전위원회는 전중선 포스코 부사장과 윤병준 알바몬 대표이사 등을 증인 채택했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오승민 LG화학 여수공장장, 김형준 한화케미칼 여수공장장, 박현철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장, 장갑종 금호석유화학 여수공장장, 고승권 GS칼텍스 전무,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를 부른다.

문체위는 황창규 KT 회장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 주요임원을 증인 신청했으며, 정무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출석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기업인들에게 할애된 시간이 조 장관 논란으로 축소되고 있다. 17개 상임위원회 중 무려 13곳이 이번 국감에서 조국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외교통일위원회는 조국 딸의 몽골 해외봉사가 진짜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조사하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여권 지지층의 실시간 검색어 조작 의혹을 따지고, 교육위는 조 장관 자녀의 입시·진학·장학금 문제를, 정무위는 조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의혹을 다루는 식이다.

이는 기업인들이 주목받던 과거 국감 때와 대비된다.

작년 국감 때는 요식업계 대부로 꼽히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중소벤처기업부 국감장에 나와 프랜차이즈 사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먹자골목과 골목상권은 다르다. 강남역 먹자골목은 영세상인이 들어가는 데가 아니다”며 돌직구를 날려 화제가 됐다.

정책·스타·한방…모두 실종

또 인기게임 ‘리니지’의 개발자로 유명한 김택진 엔씨(NC)소프트 대표는 교육위 국감에서 리니지M이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임이라는 의원들의 지적에 “사행성은 없다”고 항변해 주목받았다.

2016년 국감 때는 한진해운 ‘물류대란’ 사태로 국감에 출석한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으며, 전 한진해운 회장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까지 가게 된 상황에 대해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2015년 국감 때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당시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어느쪽을 응원하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는 모두 세간에 두고두고 회자됐던 일들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한방’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기업 대관부서의 한 관계자는 CNB에 “CEO나 총수가 국감장에 불려나갈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의원들의 질문 순서다. 가령 앞쪽에 걸리면 상당한 곤욕을 치르고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로 앞부분이 다른 이슈로 덮힐 경우, 이후 질문을 받더라도 수위가 약하고 아예 질문조차 받지 않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며 “이번 국감에서는 (증인으로 나간) 기업인 대부분이 후순위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여당 의원의 보좌관은 CNB에 “국감에서 한건 터트리기 위해 몇 달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기획하고 질의서와 보도자료를 만드는데, 이번 국감은 조국 장관 이슈로 덮여버려 속상하다”며 ”국정감사는 말그대로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행정기관을 감시하는 기능인데 지금은 조 장관 개인사를 캐는 국감이 돼버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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