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발(發) 수출규제, 환율·금리·국제유가의 불확실성, 내수 침체 등 나라 안팎으로 악재가 겹친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현대모비스가 10대그룹 핵심계열사들 중 ‘나홀로’ 약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두자릿수 영업이익, 시총 ‘탑10’ 진입 등 박정국 대표 체제 출범 후 불과 10개월 만에 기록이 여러번 갱신되고 있다. 비결이 뭘까.
CNB가 올해 시가총액(시총) 10위권에 새로 들어온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현대모비스의 주가가 가장 많이 올랐다. 올해 첫거래일(1월2일 종가기준) 18만5000원으로 출발했는데 현재(10월22일 종가기준) 24만1000원으로 무려 30.27%나 올랐다. 현대모비스와 함께 시총 10위권에 새로 진입한 LG생활건강과 신한지주는 같은기간 각각 17.94%, 10.15% 상승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포스코, SK텔레콤, 한국전력 등은 실적악화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증권가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올해 매출 37조3800억원, 영업이익 2조34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보다 매출은 6%, 영업이익은 16% 가량 늘어난 수치다.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보다 27% 증가한 2조4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흐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신차 보급 등으로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목표주가를 15~20% 가량 높였다.
현대모비스의 이같은 선전은 실적 침체에 직면한 재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재벌닷컴이 최근 자산 상위 10대 그룹 상장사 96개사의 반기보고서를 집계한 결과,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24조9532억원으로 작년 동기의 51조1949억원보다 무려 51.3%나 감소했다. 삼성, SK LG, 한화, GS그룹 등 대부분 대기업집단의 실적이 작년에 비해 두자릿수 하락했다.
신차 탄력, 수소차로 이어져
현대모비스의 성장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대·기아차 판매 호조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64만8179대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 증가한 수치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형 SUV 팰리세이드 등이 미국에서도 효자노릇을 한 덕분이다.
증권가에서는 팰리세이드와 더불어 신형 쏘나타의 판매 본격화, 엔트리급 SUV 베뉴와 제네시스 SUV GV80 출시 등의 모멘텀에 힘입어 한동안 호조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도 영업이익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의 매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현대차, 기아차 매출 의존도는 지난해 기준 약 70%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GM, 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상대로 한 매출도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현재 현대·기아차 외의 매출 비중이 10% 정도인데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현대차가 미래산업으로 사활을 걸고 있는 수소차의 전망이 밝다.
정부는 올해 초 ‘수소경제 로드맵’을 내놓으며 수소차를 오는 2040년 620만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14개에 불과한 국내 수소충전소도 1200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부응해 2030년까지 7조6000억원을 들여 수소차 생산 능력을 연50만대로 늘리고, 5만1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FCEV(수소차) 비전 2030’을 진행 중이다. 앞서 2013년에 세계 최초로 ‘투싼ix 수소차’ 양산에 성공했으며, 지난해에는 보급형 수소차 ‘넥쏘’를 출시해 글로벌 시장에서 교두보를 확보한 상태다.
현대차그룹의 목표대로 2030년 연50만대 수소차 생산체제가 현실화될 경우, 이에 따른 연간 경제효과는 약2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간접 고용을 포함한 일자리 창출 효과는 22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올해부터 3000억원 가량을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모비스의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하이브리드 전기차(HEV). 배터리 전기차(BEV), 수소차(FCEV) 등 친환경 차량의 모든 플랫폼을 모듈화해 현대·기아차에 공급하고 있다.
친환경·자율주행 ‘두 개의 축’
현대모비스는 이처럼 늘고 있는 친환경차 부품수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수소전기차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충북 충주공장에 이어 최근 3000억원을 투자해 울산에 두번째 친환경차 핵심부품 전용공장의 첫 삽을 떴다.
울산공장은 총 부지 15만㎡(4.6만평) 규모로, 오는 2021년부터 연간 10만대분의 전기차 핵심부품을 양산한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전기차 44종을 출시해 167만대를 판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전략에 따라 자율주행차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레벨4, 레벨5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자율주행회사 앱티브와 지분을 50%씩 나누는 방식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는 20억 달러(한화 약2조3400억원)를, 앱티브는 자율주행 기술과 지적재산권, 개발 인력 700여명을 합작법인에 출자했다. 앱티브의 자율주행 분야 기술력은 구글의 웨이모, 제너럴모터스(GM)의 크루즈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현대모비스의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들은 작년 12월 취임한 박정국 사장이 이끌고 있다. 박 사장은 그룹의 대표적인 연구개발(R&D)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대차에서 성능시험실장, 미국기술연구소장, 성능개발센터장,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 등 연구개발 전문 인력으로 일해왔다. 2015년에는 현대엔지비 대표이사를, 이듬해에는 현대케피코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현대엔지비는 현대차그룹의 산학협력 전문회사로 미래 인재 육성과 원천기술 확보를 담당하는 곳이며, 현대케피코는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개발·생산하는 부품사다.
정의선 체제 핵심동력으로 부상
이처럼 연구개발직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사장에 오른 것은 현대모비스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그만큼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수소전기차 개발·보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정 부회장이 작년 9월 전 계열사 경영을 총괄하는 수석 총괄부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 정 부회장은 완성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10년 안에 수소전기차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2030년까지 7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FCEV(수소차) 비전 2030’ 선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의 가장 중요한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으며, 박 사장의 양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진 상태다.
하지만 곳곳에 악재도 도사리고 있다. 우선 중국 시장이 문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등으로 중국 내수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사 간 출혈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도 걸림돌이다. 수소차 연료탱크 소재인 탄소섬유를 일본 도레이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우방국에 대한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현대·기아차에 대한 의존율을 줄이고 글로벌 시장을 독자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CNB에 “현대차, 기아차의 신차 효과에 만족하지 않고 수소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기술 개발에 전사적으로 동력을 쏟아 붓고 있다”며 “이와 함께 현대·기아차 외의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얻는 매출 비중을 2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