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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친화’ 내건 롯데, 남-여다움 아닌 ‘나다움’ 성장 지원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 1년 … 고정관념 벗어나 다양성 존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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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63호 윤지원⁄ 2019.12.23 15:10:45

여성친화기업을 표방하는 롯데그룹이 어린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의 토대를 조성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여성가족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과 체결한 업무협약에 따른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이 1년이 지난 현재 다양한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나다움 어린이책 도서전시회에서 관람객 모자가 나다움책을 보고 있다. (사진 = 롯데)


만연한 편견 속에 자라는 어린이들

롯데그룹은 12월 12일 경기도 용인시 서원초등학교에서 조촐하지만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롯데은 이날 이 학교에 134종의 책 2세트씩 총 268권의 책과 이 책들을 꽂아둘 수 있도록 맞춤 제작한 책장, 그리고 책놀이 세트를 제공하고 관련 독서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이 학교 어린이들은 이날 소개받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이들은 평소 일상에서 자신들이 들었던 ‘편견의 말’에 관해 생각해보고, 이를 적어서 게시판에 붙였다.

“여자가 무슨 축구야? 인형놀이나 해.” “남자가 왜 많이 울어?” “넌 여자애가 왜 얌전하게 못 있니?” “머리가 길어야 예쁘지.” “너는 왜 인형 놀이해?” 등등 어린이들은 일상에서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은연중에 자주 강요받고 있었다.

많은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 어린이에게 여러 가능성을 차단하고, 성 역할에 관한 편견이 자라게 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최근 사회 여러 분야에서 그 필요성이 언급되며 이슈가 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의미를 전달하고, 스스로 키워갈 수 있게 해야 할까? 남녀라는 고정된 성역할을 넘어 ‘나다운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날 롯데가 제공한 책들은 바로 이처럼 나다움을 질문하는 어린이책이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 온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을 통해 134권의 나다움 어린이책을 선정하고, 1년 만에 몇 개 초등학교에 시범적으로 나다움 책장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오성엽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 사장이 12일 경기 용인 서원초등학교에서 열린 '나다움책장' 개소식에서 이 학교 어린이와 함께 어린이책 및 관련 물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 롯데)


‘나다움 어린이책’ 찾기 1년

롯데는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과 ‘똑똑! 책으로 여는 성평등 세상’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에 따라 롯데는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에 2021년까지 총 9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어린이들이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돕는 도서, 즉 ‘나다움 어린이책’을 발굴, 선정해 장려하는 사업이다. 롯데 관계자에 따르면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된 어린이책 큐레이션 작업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다.

성범죄에 관한 ‘미투’ 운동 이슈, ‘82년생 김지영’ 영화에 가해진 평점 테러 등 최근 우리 사회는 첨예한 젠더 갈등으로 열병을 앓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성숙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높은 성인지 감수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아예 이 용어 자체에 대한 거센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로 젠더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의외로 성역할 고정관념에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소위 명작이라 할 어린이책에서도 잠들어있는 여성과 깨어있는 남성,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여성과 구하는 남성, 상으로 주어지는 여성과 상을 받는 남성 등의 고정된 성역할 구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전동화를 원작으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왼쪽)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한 장면. 자신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여성과, 그녀를 구하고 전리품으로 아내를 얻는 남성이라는 공통된 구도에서 나타나는 성역할 고정관념은 물론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있는 여성에게 동의 없이 입을 맞추는 행위 등이 부적절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사진 = 영화 화면 캡처)


이러한 현실에서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성인지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 방안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가운데 ‘나다움 어린이책’ 프로젝트는 매우 기본적이고 의미 있는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이건정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국장은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이 형성되기 쉬운 어린이들에게는 생활공간인 집과 학교에서 접하는 책을 통한 경험과 학습이 무척 중요하다”라며, “이번 사업을 통해 학교 안팎과 일상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배울 수 있는 도서를 손쉽게 만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사업은 ‘창작자(작가·출판사), ‘환경(도서관·서점)’, ‘어린이’를 중심으로 3개 영역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먼저 창작자 중심으로는 나다움책의 창작·개발·제작을 지원하고, 출판사와 작가가 참여할 수 있는 작품 공모전을 열어 우수작을 선정하고 및 출판제작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환경 영역으로는 모든 어린이가 나다움책을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어린이 중심으로는 아이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교사 대상 교육을 통해 일선 학교에 성평등 교육을 확산한다.

이에 협약에 따라 지난 1월 학계, 출판계, 교육계 등 전문가로 구성된 나다움 어린이책 도서위원회가 발족됐다. 위원회는 ‘나다움 어린이책’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지 연구를 시작했다.
 

지난 7월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나다움어린이책 전시회 포스터. (사진 = 롯데)


왜 책인가?

그런데 왜 책일까? 1인 1스마트폰 시대이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최첨단 영상 기술을 활용한 시청각 교육자료들이 넘쳐나는 시대인데 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어린이 교육은 영상 콘텐츠보다 주로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린이책 출판사 한 관계자는 “영상은 독서에 비해 소통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더 강하고, 수용자에게 특정 의견을 강요할 가능성이 더 크다. 또 분량(시간)의 제한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집중과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자극적이고 생생한 묘사가 더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다양성 존중, 성인지 감수성처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가치를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데 영상 매체로는 한계가 있다. 반면 독서와 대화를 통한 교육은 아이들과 함께 충분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읽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유익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연구를 통해 ‘나다움 어린이책’의 핵심가치를 3가지로 요약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긍정’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서 벗어나 다름을 존중하는 ‘다양성’ ▲서로 배려하고 평등하게 연대하는 ‘공존’이 그것이다.

위원회는 이들 핵심가치가 잘 드러난 나다움 어린이책을 가려내기 위한 질문 문항을 마련하고 이를 도서 선정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여러 전문가, 작가, 출판사로부터 추천받은 책을 포함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주로 볼 수 있는 수준의 도서 1200여 권을 검토했다.

반년 가량의 연구 과정을 거쳐 양성평등주간(매년 7월 1~7일)이던 7월 2일, 롯데는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나다움을 질문하는 어린이책을 찾아라’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2019년 ‘나다움 어린이책’ 선정도서안 134권의 목록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안은 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견해를 듣고, 또 학교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확정됐다. 확정된 ‘나다움 어린이책’ 도서에는 ‘나다움 어린이책 마크’를 새겨 넣을 수 있게 했다.
 

'뜨개질하는 소년' 본문. (사진 = 책과콩나무)


“남자도 뜨개질 좋아할 수 있지”

목록에 든 분류별 추천도서를 일부 살펴봤다.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축구를 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지만, ‘뜨개질하는 소년’의 주인공 소년은 뜨개질을 배우고 난 후 뜨개질과 옷 만드는 일이 너무나 좋다. 그래픽노블 ‘롤러걸’에서 격렬한 롤러스케이트 경기를 치르며 성장해나가는 주인공 어린이는 사춘기 소녀다.

‘걸스토크: 사춘기라면서 정작 말해주지 않는 것들’에서는 대체 왜 여자 팬티는 그렇게 작고 불편한 디자인으로 나오는 건지, 세상 모두가 예쁘고 나만 못생긴 것 같다는 고민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 등등 여자의 몸에 관해 솔직하고 신나게 이야기한다.

‘나도 편식할 거야’는 아무거나 잘 먹던 여동생이 편식하는 오빠에게만 장조림과 보약 등을 주는 엄마 때문에 자신도 편식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라, 버스를 타다’는 1960년대 미국 흑인 인권운동을 촉발시켰던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앨라배마 주 법에 따르면 버스 안의 앞좌석은 백인들에게만 허락됐고, 흑인은 뒷좌석에 앉았더라도 백인이 자리를 요구하면 양보하도록 되어 있었다. 몽고메리의 가난한 워킹맘이던 로자 파크스는 퇴근길 지친 몸으로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자리 양보를 요구하던 백인 승객과 버스 기사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 일은 즉시 흑인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1년 넘게 이어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과 미국 전역의 대대적인 흑인 인권운동으로 이어졌다.
 

나다움 어린이책 도서전시회에 전시된 나다움 어린이책 선정도서들.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처)


창작공모전도 지원…수준 충족하는 작품 부족해

나다움책의 창작과 출간을 지원하는 창작공모전 사업도 진행됐다. 4월 9일부터 8월 20일가지 진행된 ‘나다움 어린이책 창작공모전’은 비교적 공모 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관심과 함께 총 274편이 응모되었고, 심사 결과 김다노 작가의 ‘텔레비전에 우리가 나온다면’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관심이 높았던 것에 비해 심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본래 ‘성인지감수성’, ‘다양성’, ‘자기존중’이라는 가치를 주제로 삼아 분야별 우수작 1편씩 총 3편과 전 분야를 아우르는 대상 1편 등 총 4편의 수상작을 선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과 나다움 어린이책 사무국은 심사 결과 분야별 우수작과 가작을 선정하지 못하고, 대상 한 작품만을 선정하는 데 그쳤다.

문학 작품으로 지켜야 할 완성도와 아울러 공모전이 표방하는 가치를 함께 살폈으나, 응모작의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합당한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공모전 심사평을 통해, 최소한의 기본적인 문학적 완성도를 갖춘 데다 나다움 어린이책의 가치를 알고 표방한 응모작이라도 대부분이 “이를 문학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 미흡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심사평에서 지적된 문제는 대체로 ▲현실 세계의 유비로 가져온 의인동화나 알레고리 형식이 앙상하고 편벽하거나 ▲혐오를 반성하기 위한 재현이 의도와는 반대로 혐오의 재생산을 수행하거나 ▲여성주의적인 세계관과 정보를 단지 이야기 형식을 빌려 전달하는 등 엇비슷한 양상이었다.

대상 수상작인 ‘텔레비전에 우리가 나온다면’은 각각 부모의 별거 및 사별을 겪은 두 여자 어린이, 부모의 바람과 다른 자신만의 꿈을 찾는 한 남자 어린이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펼쳐진다. 심사위원들은 “어린이 주인공들이 가족 관계를 둘러싼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조율하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장면을 그려냈다”면서 이들의 소망이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야 가능한 희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또한, 남자 어린이의 이야기는 “나다움 어린이책이 지향하는 자기 존중, 다양성의 가치를 더욱 선명하고 풍부하게 드러내주었다”고 덧붙였다,

수상작에 대한 시상식은 지난 12월 3일 롯데월드타워에서 진행됐다. ‘텔레비전에 우리가 나온다면’은 400만 원의 출간 지원금을 지급 받아 2020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 12월 12일 용인 서원초등학교에서 열린 '나다움책장' 개소식에서 관계자들과 서원초등학교 학생 및 교사, 학부모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뒤에서 두번째 줄 가운데) 왼쪽부터 서원초등학교 오춘옥 교장, 여성가족부 이정옥 장관,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 오성엽 사장,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제훈 회장


롯데의 여성친화적 사회공헌, 교육 지원 사업으로 도약

롯데그룹은 ‘우리나라 최고의 가족친화기업’을 표방한다. 그룹 내 유통 및 서비스 사업의 비중이 크고, 업력이 긴 만큼 수십 년 전부터 여성 친화적인 정책의 고민과 도입에 가장 앞장서 온 편이다.

그 성과는 뚜렷하다. 통계청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육아휴직자 10명 중 1명은 롯데그룹 직원이라고 한다. 또 시총 상위 30개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이 4%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롯데그룹은 책임급 이상 간부의 14%, 임원 36명이 여성이다.

롯데는 사회공헌사업 역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나눔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여가부, 국방부와 함께 진행 중인 ‘mom편한 공동육아나눔터’ 사업이 있다. 보육시설이 부족한 전방지역 군인 가족을 위해 군 관사에 육아나눔터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로 롯데는 2020년까지 공동육아나눔터를 25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밖에도 롯데가 진행해 온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이 있지만 이번 나다움책 지원사업은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어린이 교육이라는 측면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큰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롯데지주 오성엽 사장은 지난 4월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나다움책 교육문화사업 오프닝 포럼에 참석해서 “어린 시절 사고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는 책이라는 매체에 다양성의 관점을 반영하고, 어린이들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대신 나다움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포럼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성평등 인식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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