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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기업] 현대 모터스튜디오, 이예승 작가와 만든 ‘변수풍경’전

미디어 아트 기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두 번째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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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65호 김금영⁄ 2020.01.09 11:49:13

이예승 작가의 ‘(무)한 인류: 그 한계와 가능성의 경계에서 – 변수풍경’전이 열리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전시장. 사진 = 김금영 기자

오류가 난 것 같은 화면들이 전시장 곳곳을 채웠다. 이 화면들을 잠시 보고 있노라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주인공이 토끼 굴에 빠져 이상한 나라로 가게 되는 것처럼 화면에 빠져들 듯 몰입된다.

3분 남짓의 3D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큰 화면을 벗어난 곳들도 인상적이다. 3D 애니메이션 속 상황이 바로 현실로 튀어나와 이어지는 느낌이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각종 기계와 구조물의 위나 그 사이엔 산 또는 한입 베어 문 것 같은 사과 같은 원초적인 삼각·구형의 오브제들도 배치됐다. 여기에 군데군데 설치된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까지. 모든 요소들이 이질적인 부조화를 이루는 것 같으면서도 또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 현장은 이예승 작가의 ‘(무)한 인류: 그 한계와 가능성의 경계에서 – 변수풍경’전(이하 ‘변수풍경’전)이다.

 

이번 전시는 현대 모터스튜디오와 미디어 아트 기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공동 기획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현대자동차와 미디어 아트 기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가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1979년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로 시작된 세계적 융복합 전시·공연 기관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9월 5~9일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미디어 아트 및 테크놀로지 축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2019’를 공식 후원한 바 있다. 수소전기차 ‘넥쏘’, ‘아이오닉 일렉트릭’ 등 총 9대의 공식 의전 차량을 지원했고, 축제 기간 동안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 주목한 현대자동차의 활동을 담은 브랜드 영상을 상영했다.

또한 협업 전시 ‘미래 인류: 우리가 공유하는 행성’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 도래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여러 의문점과 긴장 관계에 대해 조망했다. 이번 전시는 그에 이은 두 번째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다.

 

기계 구조물 사이 전통 창문의 형태를 띤 오브제들이 배치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현대자동차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 주목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현장에 마련됐던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프로젝트에선 영국 건축가 아시프 칸과 수소 에너지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들을 선보였다. 지난해엔 현대자동차 부품그룹사 현대트랜시스가 미국 뉴욕 기반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제로+마리아 코르네호’와 손잡고 자동차 폐소재에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기도 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함께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특히 협업 대상의 특성을 살려 미디어 아트에 주목했다. 예술을 표현하는 매체가 점점 다양해지는 환경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는 오늘날 예술의 한 장르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두되는 인류의 가능성과 한계’를 미디어 아트로 표현해 보여준다.

 

돌멩이, 산을 연상케 하는 오브제들이 설치된 모습. 사진 = 김금영 기자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인 만큼 국내뿐 아니라 각 나라의 작가 및 전문가들을 초청해 서로 다른 지역의 문화적 배경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북경에서는 북경 중앙미술관과 협업해 ‘2019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 참여 작가이자, 아트·테크 전문 큐레이터인 페이 준이 참여했다. 기술이 진보하는 환경 속 인류가 직면하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며, 이와 연관된 18그룹의 아티스트 작품들을 서울, 북경, 모스크바 3개 지역의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선보인다. 서울에서는 이예승 작가의 신작 전시 ‘변수풍경’을 2월 29일까지 열린다.

전시 작품은 현대자동차의 플랫폼 제로원(ZERO1NE)의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국내에서 창의적인 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2018년 3월 출범한 제로원은 아티스트, 스타트업이 서로 교류하는 장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변수풍경’전엔 ▲이예승 작가를 중심으로 ▲전자음악, 사운드를 시각화하는 작곡가이자 연주자 조은희 ▲디자인과 공간, 설치미술 등 전방위적인 작업을 보여주는 JaSeo(야세오, 서성협과 코르넬리아 야스빌레크로 구성된 콜렉티브 그룹)가0 참여했다. 3D 애니메이션 영상부터 사운드 아트, 각종 오브제까지 다양한 작품이 한 공간에 존재하게 된 이유다.

 

전시장 곳곳엔 오류가 난 것 같은 모니터들과, 종소리가 흘러나오는 스피커가 설치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동양 신화적 상상력을 접목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 = 김금영 기자

이예승 작가는 “전시 주제를 듣고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다”며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시기에 인간이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문제들을 자유롭게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가가 바라본 현실은 실재와 가상, 아름다움과 어두움이 뒤섞인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한쪽에만 단조롭게 치우치지 않고, 혼종성과 모호성이 끊임없이 겹쳐지며 모두 존재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이자,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의 발걸음이라는 것.

작가는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것만 보려 한다. 하지만 괴기스럽고 난해한 것들, 또 이런 것들을 건드리는 감각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런 요소들이 동시에 한 공간에 존재할 때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사물의 지능화, 인공지능, 로봇 기술, 생명 공학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혁신을 통해 스마트해지는 삶을 환호한다. 반면 이세돌이 인공지능과의 바둑 대결에서 졌을 때 빠르게 발달하는 기술이 인간을 도리어 주저앉히는 건 아닐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며 “일방적으로 한쪽의 감정만 느끼고, 한쪽의 면만 존재하진 않는다. 이런 세상의 여러 이야기가 ‘변수풍경’전에 모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두되는 인류의 가능성과 한계’를 미디어 아트로 표현해 보여준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특히 작가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기술의 변혁기를 마주하는 현 시기를 표현하는 데 동양 신화적 상상력을 끌어와 눈길을 끈다. 미디어가 발달하는 환경 속 점차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 같지만 분명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의 신체, 그리고 이로 인한 감각의 확장성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첨단 기계 문명을 상징하는 키보드, 모니터 사이 산이나 돌멩이 등 원초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오브제들을 배치한 것도 이런 뜻에서 비롯됐다.

전시 오프닝 날 펼쳐진 퍼포먼스에서도 이런 점이 느껴졌다. 조은희 음악가와 세 명의 전통음악 연주자(김보라 – 소리, 이정석 - 거문고, 이아람 – 대금)가 퍼포먼스를 꾸렸다. 3D 애니메이션이 펼쳐지는 거대한 화면 아래에서 조은희 음악가의 키보드 소리가 가장 먼저 울려 퍼졌다. 이윽고 이정석의 거문고, 이아람의 대금 소리가 이어졌고 가장 마지막에 김보라의 소리, 즉 사람의 목소리가 퍼포먼스의 정점을 찍었다.

 

자동차의 파이프 느낌이 그대로 드러나는 구조를 지닌 현대 모터 스튜디오에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됐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처음엔 따로따로 들리는 소리가 난해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의 전자음과 전통 악기,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고 각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현장, 이를 통해 작가는 이질적인 요소들, 즉 기계와 인간 더 나아가 자연과 사물의 융합된 모습을 표현했다.

이 퍼포먼스와 작품들이 일반 갤러리, 미술관이 아닌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전시장에서 전개된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작품이 설치되는 전시장 같이 하얀 벽면이 아니라 파이프가 드러나 거친 느낌이 그대로 드러나는 구조를 지녔다. 여기에 첨단 문명과 인간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각종 오브제와 기계 구조물들이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배치되며 공간에 자연스럽게 얽혔다.

 

전시 오프닝 날 조은희 음악가와 세 명의 전통음악 연주자(김보라 – 소리, 이정석 - 거문고, 이아람 – 대금)가 퍼포먼스를 꾸렸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전시를 마련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측은 “새로운 기술의 혁신은 인간이 기술을 이해하는 속도를 빠르게 앞지르고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사람들은 더욱 스마트해지는 삶을 환호하기도 하고, 혹은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직업과 생각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불안해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현실에서 이번 전시는 우리 인간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 의해 지속적으로 새롭게 바뀌는 세상 속 인류가 깨달음을 얻고 정체성을 찾으려는 이야기를 전한다”며 “현 시대에서의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 한계와 가능성을 모색하는 토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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