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책들 사이 설치된 높이 11m에 달하는 대형 트리와 커다란 크기의 북극곰 조형물. 또 이 조형물 위에 걸터앉아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예술 작품과 책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별마당 도서관’이다.
별마당 도서관 중심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이 작품은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설치된 변대용 작가의 ‘아이스크림’이다. 꿈을 향해 가는 북극곰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어떤 환경에 직면하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꿈과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이 작품 설치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일반 전시장처럼 별도로 전시 공간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 중앙에 자연스럽게 배치했기 때문.
작품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선을 그어두지도 않았고, 어디에서 사진을 찍으면 작품이 잘 담길 수 있는지 포토스팟도 바닥에 표시해 뒀다. 이에 포토스팟을 찾아 작품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고 있는 곰 조형물 옆에 함께 자리 잡아 책을 읽고 있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별마당 도서관이 본격적으로 도서관 내부에 예술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개관 2주년을 맞으면서부터다. 명사와 거장에게만 제공됐던 중심부를 젊은 아티스트의 작품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킨 것. 이를 위해 ‘열린 아트 공모전’을 시작했다. 신세계프라퍼티 측은 “별마당 도서관은 고객과의 예술적 소통, 세대 간 공감대 형성을 위해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며 “열린 아트 공모전도 이 일환으로, 역량 있는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진행된 1회 공모전에는 109점의 작품이 응모됐고, 예술·디자인 분야 교수 및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단의 심사 결과 주현제 작가의 ‘책의 성전’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대상작은 별마당 도서관에 지난해 5월 설치돼 약 5개월간 800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과 만났다. 당시 주현제 작가는 “도서관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집중을 거듭했다”며 “별마당 도서관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올해 2~3월에도 공모전이 진행됐고, 지난해보다 31점 많은 총 140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전문가들의 심사 결과 이은숙, 성병권 작가의 ‘빛의 도시(CITY OF LIGHT)’가 대상에 선정됐다. 대상 작가에겐 총 1000만 원의 상금과 5000만 원 한도 내의 제작 지원금이 제공된다. 별마당 도서관에 쌓여진 지식과 지혜를 도시의 빌딩들로 형상화한 ‘빛의 도시’는, 작품 사이를 통과하는 빛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내뿜는 것이 특징으로 높이가 8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은 5월 말부터 별마당 도서관 중앙 공간에 설치돼 방문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북적 북적대는 풍경이지만 2013년 코엑스몰은 한적했다. 한때 강남의 핫플레이스로 불렸던 코엑스몰은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재오픈하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코엑스몰의 새로운 구성을 낯설게 느낀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줄어들며 상권이 위축된 것. 잠실 롯데월드몰, 현대백화점 판교점, 스타필드 하남 등 대형 쇼핑몰들의 등장 또한 영향이 있었다.
이 와중에 신세계프라퍼티가 2016년 한국무역협회로부터 위탁 운영권을 따냈고, 임영록 대표이사가 “총 면적 2800m²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위축된 상권을 더욱 위축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2017년 별마당 도서관 개관 이후 1년 차엔 약 2100만 명, 2년 차엔 약 2400만 명 이상이 코엑스몰을 찾으며 우려의 시선을 뒤집었다.
책들 사이 울려 퍼진 음악과 미술의 향연
별마당 도서관은 꿈을 펼친다는 의미의 ‘별’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 ‘마당’의 합성어로, ‘책을 펼쳐 꿈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지어졌다. 별마당 도서관의 성공은 잘 만들어진 문화 공간이 얼마만큼의 긍정적인 효과를 이뤄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열린 아트 공모전’ 이전에도 문화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구축해 왔다. 먼저 책을 단조롭게 나열해 놓은 기존 도서관의 형태가 아닌, 문화가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며 관심 몰이에 성공했다. 일단 이 도서관엔 문이 없다. 쇼핑몰 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 쇼핑을 하다가 발걸음을 조금만 더 옮기면 자연스럽게 이미 도서관에 들어와 있는 식이다.
약 850평 규모의 큰 공간엔 13m 높이의 대형서가 3개가 갖춰졌다. 천장이 높아 시야가 트였다.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꼭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의 학교에 들어온 것 같은 판타지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별마당 도서관 내 마련된 이마트24 편의점 또한 별마당 도서관 관련 굿즈(goods, 상품)를 비치해 놓고, 벽지를 책이 가득한 이미지로 채워 넣는 등 서점을 콘셉트로 꾸려져 있어 연관성을 살렸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책. 별마당 도서관은 개관 당시 7만여 권에 달하는 책과 해외 잡지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들여 놓았고, 약 1000권의 책을 한 달에 한 번씩 새로 비치하며, 최신 e-북 시스템 또한 마련해 놓았다.
책의 종류만큼 확보한 게 이 책들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읽고 싶어 찾아온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찾기 마련이다. 과거 일반 서점에서는 책이 많은 반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다소 부족해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히 보였다. 별마당 도서관은 라운지형, 테이블형 등 다양한 형태의 책상과 의자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도서관을 방문한 날에도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특히 별마당 도서관이 유명세를 탄 건 도서관을 단지 ‘책만 읽는 공간’으로 한정짓지 않아서다. 공연과 미술, 문화 강연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선보여 왔다. 도서관 개관 초기 한 달 동안 월별, 요일별 테마를 정해 콘텐츠를 꾸려 이 공간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성격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첫 테마로는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사진, 자필 원고, 책 등을 선보이는 기념 전시회를 열었고, 지난해엔 유명 인사의 특강이 이어졌다. ‘개미’, ‘신’ 등의 소설을 집필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별마당 도서관에서 독자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2009년 출간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알려진 스웨덴 출신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첫 방한에서 별마당 도서관을 찾아 독자들과 만났고,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문명연구가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지리학과 교수도 별마당 도서관을 찾았다. 해외 유명 인사 뿐 아니라 유홍준 교수, 이국종 교수, 김훈 소설가, 승효상 건축가 등 국내 명사가 참여한 강연도 160회 이상 열렸다.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빈 소년합창단 등 공연도 이뤄졌다. 멀리 떨어진 무대가 아닌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서가에서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의 도서관 콘서트를 비롯해 마제스틱 청소년오케스트라, R&B 보컬그룹 소울스타 등 음악 공연 또한 장르의 다양성을 시도했다. 2018년 말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 밖 전략회의를 별마당 도서관에서 열기도 했다.
책을 읽으러 별마당 도서관을 자주 찾는다는 이지혜 씨는 “책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술 작품 감상이나 문화 강연, 공연 등 이벤트가 마련돼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방문 이유를 밝혔다. ‘책을 보는 공간’에서 ‘종합 문화 공간’으로의 진화는 수익 효과로도 이어졌다. 스타필드 코엑스점에 따르면 별마당 도서관이 들어선 이후 코엑스몰에 입점한 매장들의 일평균 방문객 수는 5% 증가했으며, 특히 별마당 도서관에 인접한 상점들이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콘텐츠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경험을 소비하기를 바란다. 또 온라인 쇼핑을 통해서는 더 편하게, 책을 집까지 배송 받을 수 있기에, 오프라인 매장이 과거처럼 책만 파는 하나의 목적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힘들다”며 “별마당 도서관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기본 정체성을 지킨 가운데 꾸준히 공연, 강연, 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또 쇼핑몰 운영 차원에서는 도서관에 책을 보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쇼핑까지 하게 되는 잠재적 소비자 층 형성을 이끄는 공간으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신세계프라퍼티 관계자는 “전시 예정인 대상작 ‘빛의 도시’는 별마당 도서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며 “별마당 도서관은 앞으로도 ‘열린 문화공간’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