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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44) 신제현 작가] “생각 떠오르면 1~20년 연구 + 1년 묵힌 뒤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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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5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0.05.14 13:40:05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신제현 작가와의 대화

- 신제현의 작업 중 직접적이라 느껴지는 작업도 쉽지 않아 보인다. 개념(아이디어)도 많이 담겨 있다. 실험성도 강하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미술은 어렵다고 이야기할 때 떠올릴 법한 작업이다. 물론 어떤 작품이든 한 번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부할수록, 여러 번 생각할수록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 작업할 때 자신의 작품을 마주할 관객들을 어느 정도 생각하는가? 또한 본인의 작품이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작업할 때 기본적으로 관객들을 염두에 많이 두는 편이다. 작가로서 미술을 대중화하고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중들을 위한 미술 강의나 워크숍, 정부 교육 사업, 기업과의 협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화를 위해 내 작업의 구조가 단순화되거나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신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 감상을 돕는 데에 신경을 쓴다. 또한 전시 장소의 성격에 맞는 설명을 제공한다. 관객의 다수가 큐레이터나 비평가, 작가인 대안공간과 같은 실험적인 공간에서 전시할 때에는 작품에 관한 안내문이나 도슨트를 준비하지 않는다. 반대로 미술관, 갤러리, 아트센터처럼 대중들이 많이 찾는 장소일 경우에는 그들이 작품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다. 예를 들면 작가인 내가 직접 전시장에 나가 작업을 설명하는 것 자체를 퍼포먼스로 진행하거나 전화나 이메일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받는 과정을 작업과 연결하는 식이다. 나의 작품만 설명하는 도슨트를 섭외한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작품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흥미, 개념과 구조를 파악해야만 가질 수 있는 흥미, 이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춘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질문의 답은, 나도 내 작품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어려워도 될 것 같다. 관객들이 어렵다고 느껴도 괜찮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나의 작품을 보게 만드는 활동들이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은 작품 자체의 난이도가 아니라 마케팅과 홍보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작품이 난해해도 안내를 잘 하면 관객들에게 만족할만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이 어렵고 복잡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하면 흥미로운 경험, 인식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신제현 작가. 

- 오래전의 일이고,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지만 ‘아트 스타 코리아(ART STAR KOREA)’(2014)에서 보여주었던 ‘미술 만다라’(2014)는 충격적이었다. 수조 안에서 작가가 도는 행위를 반복할수록 물이 밖으로 넘치고 바닥에 사탕 가루로 적힌, 작가가 전시하고 싶은 공간의 이름이 지워졌다. 글씨가 지워질수록 꿈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아 슬프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괴로워할수록 꿈을 이뤄 전시하고 싶은(해야 할) 공간이 줄어듦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희망적이기도 했다. 예술가의 삶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그리고 작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예술가로서의 삶은 예술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은 ‘철학가적 삶’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정말 오랫동안 먹이 피라미드의 하위동물로 살아오다가 최근에 와서야 지구 생태계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동물인 동시에 문명인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괴리감, 아이러니를 극복하고 통제하기 위해 종교와 법 등이 존재하지만 개인의 정신적 안위를 위해서는 ‘철학가적 인식’이 필요하다.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객관화하고 의심하며 그 구조를 파악하는 메타인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로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신제현, ‘설탕만다라’, 사탕 가루로 50일간의 만다라 만들기 퍼포먼스, 아르코미술관, 2016 
신제현, ‘설탕만다라’, 사탕 가루로 50일간의 만다라 만들기 퍼포먼스, 아르코미술관, 2016 

- ‘설탕만다라’ 작업은 몇 차례 진행되었는가? 사용하는 설탕은 항상 사탕에서 얻는가? 이 작업을 언제 시작했는지, 설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설탕만다라’는 18년 전, 대학생 때 시작한 작품으로 2002년 성균관대학교, 2014년 아트스타코리아, 2016년 아르코 미술관, 지금까지 총 세 차례 전시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설탕이 아닌 사탕이다. 나는 건강하지 못한 재료로 만든 사탕들이 판매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 사탕 수만 개를 모아 색별로 분류하고 하나하나 망치로 깨서 가루를 만들어 만다라를 제작했다. 이 작업은 식민주의 담론과 긴밀하다. 특히 2016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된 김현주, 조주리, 왕영린 기획의 전시 ‘동백꽃 밀푀유’는 한국과 대만이 겪은 일본 식민지 경험의 역사성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었고, 그때 전시된 ‘설탕만다라’(2016)는 대만의 설탕 플렌테이션(plantation)과 후기 식민주의 담론, 일제강점기가 한국 사회에 미친 폭력의 역사와 구조 등을 다룬 작품이다. 관객이 관람 중에 ‘설탕만다라’를 흐트러뜨리는 과정을 통해 폭력의 구조를 재현하는 한편 식민지의 고통과 폭력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작가가 역사적 아픔을 전시하는 태도를 지난(至難)한 수행의 방법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성폭력을 비롯해 미술계 내부의 위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식민주의와 같은 담론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기도 하다.
 

신제현, ‘L.S.P’, 10등급 남성의 정액으로 만든 비누, 2007~현재

-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비누가 부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하게 된 ‘Plunge 비누 Project’(2007~현재)와 이어지는 ‘LSP(Love Soap Project)’(2007~현재)는 정액이 피부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비누를 만들었다. 비누의 가격은 결혼정보회사에서 분류된 남성의 등급에 맞춰 정해졌다. 한편 ‘마리를 찾아서(Finding MARI)’(2009~2019)는 야생 대마초 자생 지역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작업이다. 두 작업 모두 권력과 자본, 금기와 모순 등이 교묘하게 얽혀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하려면 해당 주제에 대한 입체적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생각이 떠오르면 논문, 영상, 현장 답사, 전문가 인터뷰 등의 자료를 조사하고 조합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0년 동안 리서치가 이뤄진 작품도 있다. 여기에서 모순되는 점들을 발견하면 대안을 찾거나 만든다. 이후에는 끊임없는 제작, 전시, 재조사와 연구의 과정을 지속한다. 모든 프로젝트는 1~2년 동안 조사와 연구를 한 뒤 바로 진행하지 않고 1년 정도 묵혀둔다. 이 숙성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신제현, ‘마리를 찾아서’, 유리 위에 아크릴릭, 30호, 90 x 65(cm), 갤러리 메이, 2019

- 예술가 혹은 참여자의 행위 그 자체가 강조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이 전시된 이후에도 작가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전시장에서 끝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와 같은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를 듣고 싶다.

내 프로젝트는 작품이 아니라 작곡이다. 신제현이라는 작가의 삶을 타임라인에 두고 삶의 온갖 경험과 기억, 정보, 자료들을 오선지 위에 구현하는 것이다. 개별 전시와 공연들은 긴 악보의 한 마디가 된다. 실제로 2000년 1월 1일부터 시작한 ‘100년’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2100년까지 100년 동안 우주에서 오는 다양한 파장들을 사운드화해서 작곡하고, 나도 지구에서 소리를 만들어 매일 2시간씩 작곡하는 프로젝트다. 작곡된 결과물은 2100년에 시작해 3000년까지 900년 동안 연주되는 ‘천년’이라는 프로젝트로 귀결된다. 내가 하는 모든 작품은 이 프로젝트에 포함된 악상으로 나의 삶, 사고, 언어, 작품이 모두 이것을 구성하는 음표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내 작업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로 통일된 시간 개념에 얽매여 살지만 사실 인간은 모두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디어라 생각하는 하늘의 별도 사실은 수천억 년 전부터 수년 전에 이르는 별들이 한 번에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밤하늘을 본다는 것은 수천억 년의 시간을 보는 것이다. 인간 100년의 삶, 1000년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에서는 정말 작은 티끌이다. 보이저 1호(Voyager 1)가 지구를 찍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우주 속 작은 점과 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같은 일들로 상처받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너무 사소한 일들로 서로를 구분 짓고, 질투하고, 상처 주는 데에 소중한 시간을 소비한다. 나는 ‘창백한 푸른 점’에서 영감을 받아 ‘100년’을 구상했고, 이 작업을 실행한 이후 누구보다 자유로워졌고 행복해졌다. 미술이나 철학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거나 인식을 확장하는 데에서 나아가 한 인간의 삶의 태도와 인생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작업이 그와 같은 것이 되길 바란다.
 

신제현, ‘Textscape-발화하는 단어들Ⅳ-움직이는 단어들’, CR-Collective 오프닝 퍼포먼스, 10min, 2019
신제현, ‘ARIN Project 악기 제작 워크샵’, 폐자재로 만든 악기, 2007~현재

- 그동안 정말 많은 작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 이 자리를 통해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많은 작업이 있고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특정한 작품 하나를 선정해서 소개하긴 어려울 것 같다. 최근 유튜브에 작업 영상을 올리고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협업에 기반한 프로젝트들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그렇고,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행보로 보인다. 공존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편인가?

본능적으로 연대감이 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다양한 연대를 하고 있지만 연대라는 단어가 지닌 힘을 믿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연대 없이는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천년’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물론 철학가적 사고와 삶을 타고난 사람들을 찾고 싶고,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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