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8호 김금영⁄ 2020.05.28 14:38:36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바야흐로 혼자 사는 시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400만 명에 이르렀던 국내 1인 가구는 2018년 국내 584만 명으로 전체 가구의 29.3%를 차지하고 있으며, 올해 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비혼 추세가 확산하는 가운데, 2047년엔 1인 가구 총 832만 명, 즉 전체 가구 중 37.3%에 달해 3가구 중 1가구는 1인 가구인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 1월 열렸던 정책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산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1인 가구가 우리 사회의 보통 가구인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짚기도 했다. 1인 가구가 보통의 문화가 된 시대에서 혼자의 삶은 더 이상 처량하지 않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즐기는’ 시대다. 먼저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대표적인 식(食) 문화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혼밥(혼자서 밥을 먹음)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편의점 업계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혼밥’족 끌어 모은 편의점 도시락 전성시대
배가 꼬르륵 신호를 보내는 점심시간. 요리를 하기도, 음식점을 가기도 귀찮아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김밥, 삼각김밥부터 볶음밥, 혼자 즐길 수 있는 돼지갈비, 샐러드까지 선택할 수 있는 도시락 종류가 다양했다. 인기 품목은 이미 텅 자리를 비운 뒤였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구매해 가거나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데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고르는 도시락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혼자 방문했다는 것.
1인 가구 시대에서 편의점 업계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혼밥족이 짧은 시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특성 때문.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긴장감으로 집 밖에서 외식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수요가 보다 늘어났다.
이런 경향은 오피스가 편의점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체인 CU는 이태원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한 5월 4~15일(주말 및 휴일 제외) 오피스가 입지 점포들의 주요 상품 매출 동향을 분석한 결과, 도시락 등 간편 식품들의 매출이 전월 대비 22.6% 상승했다고 밝혔다.
간편 식품 카테고리별로 살펴보면 주먹밥 14.9%, 햄버거 15.2%, 조리면 16.0%, 도시락 16.9%, 샌드위치 20.5%, 김밥 25.0%, 샐러드 27.7% 순으로 높은 신장률을 나타냈다. 직장인의 수요가 몰리자 점심시간대(10~14시) 간편식의 매출 비중도 지난해 평균 34%에서 이달 40%까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다른 먹을거리 상품들도 매출이 올랐다. 평소 도시락과 동반 구매율이 높은 라면은 12.4% 매출이 올랐고, 이밖에 육가공류 14.0%, 즉석밥 15.5%, 국밥·덮밥류 20.1% 전월 대비 오름세를 보였다.
BGF리테일 측은 “코로나19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자 점심시간 사무실에서 혼자 밥을 먹으려는 소위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들이 부쩍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점심시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식당 대신 편의점의 혼밥 메뉴로 수요가 몰린 것”이라며 “이달부터 지급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역시 가까운 편의점에서 하루 횟수 제한 없이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혼밥족에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로 불거진 혼밥족의 수요 급증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편의점 업계는 도시락 고급화, 수요에 맞춘 신제품 출시, 배달 서비스 등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퀄리티를 높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시금 편의점을 찾게 하려는 전략이다.
‘품격 있는 혼밥’ 선호하는 시대
CU는 ‘프리미엄’을 콘셉트로 도시락의 고급화를 시도했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간편식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주 흑돼지를 활용한 도시락 ‘제주 흑돼지 비빔밥’을 5월 출시했다. BGF리테일 측은 “흑돼지 뒷다리살을 주재료로 볶은 불고기, 취나물무침과 표고버섯볶음, 고사리, 애호박볶음을 비롯한 8가지 고명을 넣었고, 양은 일반 도시락보다 20% 증량했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편의점 이마트24는 건강한 도시락에 대한 수요에 집중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도시락에 비타민채, 오리고기가 등장한 것. 앞서 2월 봄 시즌 한정 메뉴 2종으로 비타민채 봄비빔밥, 봄잔치국수를 선보였다. 이마트24 측은 “최근 들어 건강과 영양을 중시하는 고객을 위해 비타민 A, B1, B2, C 등을 함유한 비타민채를 봄비빔밥에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어 5월 여름철 보양식인 오리고기를 넣은 매콤오리 불고기정찬과 삼각김밥 2종을 출시했다. 정찬은 오리불고기 볶음, 계란말이, 어묵볶음으로 구성했고 흰밥 대신 흑미밥을 넣었다. 보양식 상품 출시를 기념해 5월 말일까지 매콤오리 불고기정찬 구매 고객에게 하루e리터(500ml)를 무료로 증정하는 프로모션도 함께 진행한다.
이마트24 측은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더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보양식을 찾는 고객의 수요가 전년 대비 증가할 것으로 보고 한 달 앞당겨 보양식 상품을 선보이게 됐다”며 “특히 매콤오리 삼각김밥은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보양식을 즐기려는 고객을 위해 기획한 상품이다. 다가오는 초복에 맞춰 보양식 상품을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소 점심시간 때 편의점 도시락을 잘 이용한다는 30대 이지윤 씨는 “과거 편의점 도시락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부실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친구들과 ‘다이어트 하고 싶으면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종류도 삼각김밥, 라면 정도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이젠 웬만한 밥집만큼 구성이 잘 갖춰져 있고, 선호도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종류도 많아져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혼자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하기에도 좋아 잘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간편함에 초점을 맞춰 컵밥을 내세웠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의 ‘2019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간편식 시장’에 따르면 가정간편식의 혼밥 여부를 살펴본 결과, 가장 관심이 높은 품목은 컵밥(45.4%)으로 나타났고, 뒤이어 즉석밥(39.2%), 파스타(35.4%), 즉석찌개(34.5%), 즉석국(34.4%)순이었다. 즉석조리식품의 섭취 용도는 공통적으로 ‘식사대용’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런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GS25는 뜨거운 물이나 소스를 부은 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조리 편의성이 강화된 컵밥 2종을 출시했다. ‘공화춘유산슬덮밥’은 2006년 첫 선을 보인 공화춘시리즈와 연계한 간편식이다. 직접 요리하기 번거롭고 조리 시간이 긴 중화요리를 조리와 취식이 간편한 즉석 컵밥으로 구현했다. ‘유어스황제컵밥’은 기존의 한두 가지 메인 토핑으로 만들었던 컵밥에서 탈피해 큼지막한 소시지와 닭고기, 스위트콘, 버섯, 피망까지 7종류가 넘는 재료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 편의점 업계는 도시락을 보다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서비스도 펼치고 있다. GS25는 최근 생방송으로 도시락 판매를 시작했다. 라이브 커머스 전문 플랫폼 ‘그립’과 손을 잡고 5월 25~30일 매일 12시 25분부터 1시간씩 그립 앱에서 생방송으로 쇼핑 기획전을 진행한다. 판매 상품은 GS25 군모닝버거, 힘내라 대한민국도시락 등 프레시푸드 신상품 10종으로 매일 두 상품씩 판매된다. 해당 상품은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고, 각 상품 당 선착순 한정수량, 인당 5개까지 판매한다.
도시락을 편하게 집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배달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CU는 지난해 3월 배달대행 업체 메쉬코리아의 부릉과 손잡고 서울 및 수도권을 비롯한 광역시를 중심으로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5월엔 배달대행 스타트업 바로고, 생각대로와 손잡고 전국 중소도시로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마트24는 올해 초 배달앱 요기요와 손잡고 편의점 상품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GS25 또한 요기요와 손잡고 10여 점의 매장에서 시범 운영했던 배달 서비스를 3월 전국으로 확대했고, 5월엔 카카오와 손잡고 ‘카카오톡 주문하기’ 서비스를 시작하며 배달 서비스 제휴 플랫폼 확장 계획을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주의, 비혼 트렌드 등의 영향으로 현재 1인 가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소비 행태에서 편리미엄(편리함과 프리미엄의 합성어)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소비트렌드 분석서 ‘트렌드 코리아 2020’은 편리미엄을 올해를 이끌 키워드 중 하나로 택하기도 했다.
이어 “특히 기존 편리미엄이 ‘편리한 것이 곳 가치 있는 것’이라며 시간의 가치를 보다 중요시하는 개념이었다면, 코로나19 장기화로 1인 가구의 혼밥 문화가 더욱 늘어나면서 편리함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개념으로도 확대되는 모양새”라며 “즉 ‘대충 한 끼 때우자’는 개념이 아닌, 편리하면서도 제대로 먹는 ‘품격 있는 혼밥’을 점차 선호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 “간편식이 중심을 이루는 편의점 업계에서 혼밥족의 다양한 니즈(needs)를 만족시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저렴한 가격대에 주력한 제품, 1인 가구 취식량에 맞춘 소용량 제품, 조리의 편의성에 주안점을 둔 제품, 배달 중점 서비스 등 그 형태도 꾸준히 변모해 왔고, 더 다양해지고 있다”며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앞으론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더 익숙하고 당연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미래 사회 식문화 소비의 주역이 될 혼밥족의 소비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추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