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문턱, 백화점에 푸른 하늘, 여름 바닷가의 해변이 펼쳐지며 청량감과 시원함을 전했다. 저마다의 여름을 간직한 사람들의 일상에 의해.
롯데백화점이 7월 12일까지 본점, 잠실점 등 4개 점포에서 사진 아트 페스티벌을 연다. 롯데백화점 측은 “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많은 문화 행사가 취소돼 심신이 지친 고객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아트 페스티벌의 주제는 ‘보통의 여름’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특별하고도 일상적인 여름의 풍경을 함께 공감하는 자리다. 구성적인 측면에서도 여름의 분위기가 한껏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전시 공간에 들어서기 전 롯데백화점 본점 입구 로비에 한여름의 새하얀 구름을 연상케 하는 천을 높은 천장에 설치해 놓았다. 투명 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바깥의 여름 기운이 내부로 스며들어왔다.
그 구름과도 같은 풍경 사이로 들어가면 멈춰 있다가 회전하면서 새로운 사진 이미지와 문구를 드러내는 설치물이 기다렸다. 바다 물결에 몸을 맡기며 수영을 즐기고 있는 사람의 모습 등 여름 풍경이 화면을 채우는가 싶더니 이내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그 옆쪽 공간엔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의 대표 작품 이미지가 설치됐는데 마치 큰 앨범의 표지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앨범의 표지를 넘기듯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새로운 여름 풍경들이 펼쳐졌다. 3인의 여성 작가(정경자, 허유, 김뮤트)가 ‘일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 것. 사각의 흰 벽 그리고 그 사각의 한 공간엔 작은 가벽을 세워 사진 작품을 전시해 놓았는데, 사각의 큰 앨범을 한 페이지씩 떼어 세워둔 느낌으로 본격 전시의 시작을 알렸다.
정경자 작가가 생각하는 일상은 “매일 같은 것 같지만 다르고, 낯익지만 낯설고, 익숙해서 소홀히 했지만 어찌 보면 가장 소중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우연과 필연, 삶과 죽음, 시간의 흐름과 소멸에 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들에 감수성이 투영된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해냈다.
김뮤트 작가는 “반복적인 것들 중에 가장 소리 없이 강한 것”이 일상이라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오브제와 정적인 장면들을 담아내고, 그것들이 주는 침묵에 주목한 사진들을 선보인다. 말과 소리들이 사라진 이미지에서 평온한 침묵의 시간을 느낄 수 있다.
허유 작가는 “나에게 일상(日常)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매일이 같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매일(日)이 항상(常) 다르기 때문”이라 강조한다. 일상의 냄새가 날아가기 전 카메라를 든다는 그에게 오늘은 또 지겨운 오늘이 되기도, 잡고 싶지만 놓쳐버린 오늘이 되기도 한다.
고객이 작가가 되고, 작품이 백화점에 전시되는 현장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건 윤현 작가의 참여다. “가끔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여가시간을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해 보여준다.
윤현은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여름 진행한 사진 공모전의 수상 작가로, 이번 전시까지 참여가 이어졌다. 이는 롯데그룹이 펼쳐 온 기존의 아트슈머(Art+Consumer, 문화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소비층) 마케팅에서 프로슈머(Prosumer, 단순 구매에서 더 나아가 생산도 하는 소비층) 마케팅으로의 확대를 보여준다.
앞서 롯데백화점은 백화점의 쇼핑 공간 및 갤러리를 활용해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데 주력해 왔다. 지난 2월엔 본점 8층 이도 아뜰리에 매장에서 소반을 7명의 현대 공예 작가(김승환, 김현수, 박선영, 양웅걸, 이정훈, 최정호, 하지훈)가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소반, 다시 만나다’전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관련해 롯데백화점 측은 “문화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소비층인 아트슈머를 겨냥해 기획한 전시”라며 “단순히 쇼핑 아이템만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이 아닌, 문화와 쇼핑이 결합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다양한 예술 기획전은 현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번 ‘보통의 여름’전을 보러 갔을 때도 백화점 곳곳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도널드 로버트슨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걸 볼 수 있었다. 이어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은 6~8월 중견 동양화가 김선형 작가의 개인전 ‘가든 블루’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최근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광명점’에서 ‘롯데몰 광명점’으로 전환된 롯데몰 광명점은 복합 쇼핑 문화 공간의 성격 강화를 강조하며, 그 일환으로 미술품 렌탈숍인 ‘갤러리K’를 오픈했다. 작가 28명의 미술품을 판매하고 대여해주는 공간으로, 갤러리 오픈 당일엔 오만철 작가가 도자 예술과 회화를 접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관련해 롯데몰 서용석 광명점장은 “광명몰은 미술품 렌탈숍 등 고객 체류시간을 증대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차별화된 집객 콘텐츠를 갖춘 복합 쇼핑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선 사례들은 예술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전문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꾸리며 아트슈머의 소비 취향을 겨냥한 측면이 강했다. 이 가운데 ‘보통의 여름’전은 예술에 관심이 많은 고객의 직접적인 참여까지 동원하는 프로슈머 마케팅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해 여름 공모전에 선정된 윤현 씨가 작가로서 올해 전시에 참여했고, 6월 1~21일 ‘여름’을 주제로 고객 사진 공모전 접수를 또 새롭게 받는다. 6월 26일 롯데백화점 애플리케이션과 홈페이지를 통해 1등부터 3등까지 수상자가 공개된다. 수상자에겐 각각 상품권이 증정되고, 당선작은 7월 14일~8월 17일 전국 롯데백화점에 전시될 예정이다. 즉 백화점을 방문한 고객이 단순 고객, 관람객에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 콘텐츠 발굴, 소비에 참여하게 되는 형태다. 고객이 작가가 되고, 자신의 작품이 백화점에 전시되는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은 이벤트는 추억도 만들어준다.
이번 자리에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기 위한 팝업스토어 등의 이벤트도 마련됐다. 6월 1~11일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더웨이브 팝업 행사장에서 전시된 작가의 사진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마켓이 열렸다. 사진 복합 문화 공간인 ‘291 포토그랩스’와 연계해 사진 작품을 비롯해 빈티지 필름 카메라, 포스터, 마스킹테이프 등을 활용한 상품을 선보였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와 팝업 스토어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공간이 북적북적했다.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박민지 씨는 “평소 사진 전시에 관심이 많아 방문했는데 사진 공모전 정보를 듣고 관심이 생겼다”며 “내가 찍은 사진이 백화점에 걸리면 기분이 색다를 것 같아 응모해볼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6월 6~7일엔 작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개개인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열정을 쏟는 ‘1인 크리에이터 시대’다. 보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잘 아는 것을 공유하고 보다 알리고 싶은 사람들의 창작 욕구가 넘쳐나는 것”이라며 “좋은 콘텐츠를 잘 만들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콘텐츠를 보는 사람을 단순 방관자로 둘 뿐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같이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다. 이에 프로슈머를 주요 타깃으로 한 자리도 앞으로 더욱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사진 콘텐츠를 단순히 구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도 같이 하는 데 관심이 많은 프로슈머 성향의 고객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이번 사진 공모전 이벤트를 기획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들을 백화점 매장 내에 전시해 고객이 따로 전시회나 갤러리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문화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