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8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0.06.29 14:16:44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다음은 전시 ‘퓨처데이즈(Futuredays) – 시간의 공간’(플랫폼엘)을 열고 있는 신준식 작가와의 대화 내용이다.
- 전시 작품(공간)마다 눈(snow)처럼 보이는 이미지와 큐브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와 이미지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다.
그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눈과 큐브(tesseract)는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눈은 관람자가 서 있는 곳이 작품 속 한가운데임을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전시 관람 중 만났던 여러 겹의 시공,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시공의 공존을 의미하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기능한다. 나아가 관객이 서 있는 곳이 단일한 시공이 아닌 확장된 현실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시장 전체에 퍼져있어 작품뿐 아니라 이동 공간에서도 만날 수 있는 테서렉트는 관객이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 머무름을 상징한다.
- ‘It from bit’(2020)에서 공간을 부유하는 뒤엉킨 가상의 이미지들은 우리 머릿속 기억의 파편들을 재현한 것 같다. 기억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머릿속에 저장된 일종의 정보라는 점에서 멀티미디어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와 비교할 수 있다. 또한 기억은 고정된 객관적 진실이 아니며 끝없이 변주되고, 사라지고,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허상으로 이뤄진 것이라 해도 기억은 나라는 존재의 실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단어 그대로 ‘기억’에 관한 선생님의 정의 혹은 생각을 듣고 싶다. 또한 ‘It from bit’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도 궁금하다.
질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기억은 존재의 실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기억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미디어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전달 체계의 교통 속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하지 않게 수집된 수많은 정보에 의해 매개된 것이다. 정보는 단순히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얻어져 각인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의 DNA 속에 수많은 정보가 내포되어 있음을 인지할 때면 ‘과연 나라는 존재가 내가 알고 있는 나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It from bit’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일상 속 기억의 파편들을 격식 없이, 형식도 없이 표현한 것으로 VR 페인팅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Volumetric 3D Video Capture)로 만들어진 ‘책 읽는 소녀(2018)’, CG(Computer Graphics)로 제작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콘텐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형식의 기술과 파일들이 캔버스 위의 그림과 서로 연결되어 한 곳에서 상호 작용하고 소통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신준식의 ‘XR(확장현실) 아트’의 대표성을 가진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기술적인 원리나 이론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 이미지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순간이동자(Teleporter)인 ‘비트(bit)’가 실제 공간과 조건에 반응하며 움직인다는 것 역시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확장 현실 이미지가 한정적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기술의 진행이 여기까지인지, 아니면 가상의 이미지임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움직임이나 이미지를 조절하신 것인지 궁금하다.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를 말해야겠다. ‘순간 이동’을 대리하는 아바타 ‘비트’가 확장 현실(XR)의 모든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트’는 확장 현실 공간에 동원된 하나의 오브제일 뿐이다. 예를 들어 ‘It from bit’에서 확장 현실을 구현하는 ‘책 읽는 소녀’와 같은 다양한 오브제 중의 하나인 것이다. 2019년에 진행된 전시 ‘퓨처데이즈(Futuredays) – 순간을 경험하다’ 중, ‘Somedays in Futuredays’(2019)는 XR 아트의 전형과 같다. 확장현실이란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증강 현실(AR, Augmented Reality), 혼합현실(MR)과 같은 모든 가상현실 구현 기술이 총망라되고, 여기에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 기술 등이 더해진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의 콘텐츠를 구성하기 위한 확장된 기술의 종합체와 같다.
이번 전시에 특별히 동원된 아바타 ‘비트’는 CG로 제작된 이미지에 혼합현실 기술이 융합된 것인데, ‘비트’가 관객을 포함한 공간을 날며 이동하는 광범위한 이동 범위 때문에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 기술은 사용되지 않았다. 내 작품에 이용되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의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 구현 기술의 영역은 반경 5x5 평방미터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CG로 제작한 이미지이기 때문에 가상의 이미지임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다만 시공을 넘나드는 존재인 만큼 ‘비트’에서 나오는 광채, 갑자기 나타나거나 픽셀(pixel)과 함께 사라지는 것 같은, 현실적인 물체와 대비되는 이질적인 느낌은 의도된 표현이다.
- ‘Unusual, Abnormal, Strange’(2020)를 보며 순간적으로 백남준의 ‘TV 정원’(1974)을 떠올렸다. 실재하는 식물과 가상의 식물, 폭포, 도끼질하는 발레리나 등이 공존하는 상황은 실재와 가상, 현실과 환상이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과거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며 인공적인 자연의 이미지가 진짜 자연을 압도하기도 한다. 미래에는 가상의 자연이 진짜를 대체하고 자연의 정의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가상의 자연 이미지만으로 구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극명하게 대비되는 자연을 한 자리에 결합한 이유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또한 발레리나의 얼굴에 독특한 분장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지도 설명 부탁드린다.
가상의 자연 이미지만으로 작품을 구성할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과 같은 느낌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론 초현실의 세계 그 자체를 표현하려 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을 통해 긴장감 또는 비현실적 느낌을 유도한 것도 있다. 내가 하는 시공에 대한 탐구와 상상에는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썩고 흙이 되어 현실의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지만 나의 시원을 구성하는 에너지는 동양적으로는 영겁, 서양적으로는 영원의(eternal) 개념 속에서 또 다른 생으로 여행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Unusual, Abnormal, Strange’는 작년에 선보였던 ‘Somedays in Futuredays’처럼 시공이 각기 달랐던 각각의 인생의 층에서 경험했던 이미지들을 한 작품(공간) 속에 모아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각기 다른 시공에서의 정보를 품은 채 한곳에 모여 교통하며 하나의 모습을 연출하는 초현실의 세계를 가상현실 구현 기술을 통해 표현하고, 느끼고 싶었다. 한편 발레리나 얼굴의 분장과 옷 위의 물감 자국은 절대로 평범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거의 예술적 사고와 표현으로부터의 단절을 상징한다. 도끼질 역시 같은 의미를 갖는다.
- ‘Unusual, Abnormal, Strange’에서는 AI가 관객의 얼굴(표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곡한 음악을 들려준다. 감각의 확장에서 시공간의 확장을 지나 감성(감정)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업처럼 보인다. 관객의 얼굴이 어떤 영향을 끼쳐 매번 다른 음악을 만드는 것인지 그 원리를 설명해주셨으면 한다.
성별, 나이, 감정, 피부색, 눈의 크기나 얼굴의 형태 등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얼굴의 고유한 특징을 AI가 찾아내고 분류한다. 이후 감정을 분노, 공포, 행복, 중립, 슬픔, 놀람 정도로 나눠 관람객을 위한 음악을 작곡해서 연주한다.
- XR 아트는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에 상당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혹시 이와 같은 작업을 온라인상에서, 언택트적인 상황에서 진행하실 계획은 없으신지 궁금하다.
XR 아트는 분명 언택트 시대에 유의미한 작업이다. 확장현실을 비롯해 가상현실 구현 기술을 이용한 콘텐츠들이 언택트 시대에 유효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6년 전인 2014년, 내가 처음 VR painting 작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가까운 미래에 미술관과 갤러리 등의 온라인 플랫폼에 가상현실 구현 기술을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섹션이 따로 생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된다면 가상현실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헤드셋을 소유한 사람은 원하는 시간에 자신의 원하는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지금도 유효한 생각이다. 나는 이미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XR 아트를 마치 전시장에서처럼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완성 중에 있다. 간단한 준비와 다운로드를 통해 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XR 아트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듣고 싶다.
XR 아트는 작품 감상법이 다르다. 회화나 조각과 같은 작품들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의 외면만을 감상할 수 있지만 XR 아트는 공간마저 작품의 일부가 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는 장소 특정적 미술이나 공간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이전의 작업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물리적으로는 비어있는 공간에 XR 이미지가 채워지고, 관객도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관객은 물리적 영역을 넘어서는 작품 속을 걸어 다니며 소통하고, 공감을 형성하고, 감성을 공유한다. 또한 모든 가상현실 구현 기술들을 하나의 작품에 융합한 XR 아트가 그렇듯 기술을 표현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예술가의 표현 영역이 더 광범위해졌다. 나는 이 확장된 표현 도구를 사용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