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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먼 곳의 이미지, 그곳에 닿을 수 있는가

일민미술관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전 정연두, 박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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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71호 천수림(사진비평)⁄ 2024.05.02 10:20:30

빛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사진’은 다른 세계를 보려는 단순한 욕망에 그치지 않는다. ‘먼 곳의 이미지’를 붙잡으려 한 의지는 개인과 집단의 꿈을 넘어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정연두는 일본의 시각장애인 사진작가와 컬래버 작업을 통해 만든 슬라이드 영상 ‘와일드 구스 체이스’(Wild Goose Chase, 2014)를 통해 ‘본다’는 것의 실재와 환영을, 박민하는 ‘이중거울담론’(Discourse on Twin Mirrors)을 통해 ‘다른 세계’를 보려는 탐욕이 어떻게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두 작가의 작업은 일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포에버리즘’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전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전 1전시실 전시전경. 사진제공=일민미술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영원히 기억하는 방법이 있을까. 클라우드 아카이빙, 음성 복제, 시네마틱 ‘유니버스’, 그리고 SNS의 계정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결코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갖고 있던 기억, 사물, 일상 등이 영속적이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현재의 ‘노스탤지어 문화’는 대부분 마케팅과 연관돼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노스탤지어(nostalgia)의 기원은 그리스어 고통(algos)과 귀향(nostos)의 결합에서 기인한 용어다. 처음 노스탤지어는 군인, 선원, 노예에게 자주 관찰되는 향수병을 일컫는 용어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노스탤지어는 마케팅의 핵심 요소가 됐다.

문화비평가 그래프톤 태너는 이 현상을 영원주의(Foreverism)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포에버리즘은 단순히 기록을 보관하거나 보존하는 것과는 다르다.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업데이트해야 하며 리부팅해야 한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은 4월 12일부터 6월 23일까지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를 연다. 포에버리즘은 우리 사회 전반에 도래한 영원주의를 관찰하며 영원함의 속성을 돌아보는 동시대 작가 12팀을 소개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박민하, 송세진, 윤영빈, 이유성, 전다화, 정연두, 차지량, 홍진훤, 황민규, isvn[멜트미러, 김한주(실리카겔), 김정각, 김도이, 슈퍼샐러드스터프(정해리), 이유미(할로미늄)], 스티브 비숍(Steve Bishop), 정 말러[Zheng Mahler(로이스 응, 데이지 비세닉스)]가 참여했다.

정연두, ‘와일드 구스 체이스’

정연두, '와일드 구스 체이스(Wild Goose Chase)'.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분 49초, 스틸컷. 2014. 사진제공=일민미술관 © 정연두

‘영원히 지속되는 과거’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사진은 다양한 매체 중 ‘기억’을 담는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가장 충실히 해왔다. 정연두가 포에버리즘 전시에 선보인 와일드 구스 체이스는 흥미롭게도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이뤄진 슬라이드 형식의 영상작품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정연두는 퍼포먼스 기반의 사진, 영상, 설치 작업을 진행해왔다.

와일드 구스 체이스는 일본인 시각장애인 사진가 시라토리 겐지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정연두는 우연히 만난 시라토리에게 새 카메라를 선물했다. 그는 전맹이었기 때문에 대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사진을 촬영해왔다. 시라토리는 1년간 집과 직장을 오가며 찍은 8000여 장을 찍어 정연두에게 보냈다. 작가는 그중 1500장의 사진을 고른 후 평소 시라토리가 좋아하는 일본의 피아니스트 오조네 마코토가 작곡한 연주곡 와일드 구스 체이스를 얹었다. 작품의 배경 도시는 일본 이바라키 현에 위치한 미토시로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곳이다.

정연두, '내 사랑 지니'(Bewitched). 멀티 슬라이드 프로젝션 35mm 필름 50장, 가변크기. 2001-2024. 사진제공=일민미술관

앞이 보이지 않는 시라토리가 1년 동안 매일 기록한 사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에 대해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미토시 시민의 마음을 대변하듯 불안하게 흔들린다. 와일드 구스 체이스는 ‘부질없는 시도’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사진 속 일상은 그 자체로 매일매일 살아간다는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 도쿄, 베이징 등 여러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을 기록한 ‘내 사랑 지니’에서는 ‘꿈의 실현’에 대해 다룬다. 작가는 동일 인물의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정지 이미지로 촬영한 뒤, 두 대의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활용해 설치했다. ‘도쿄 브랜드 시티’는 도쿄 긴자의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근무하는 젊은 점원들을 촬영한 사진 연작이다. 정연두는 사진의 형식 안에서 이미지가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신기루처럼.

박민하, ‘이중거울담론’

박민하, '이중거울담론'(Discourse on Twin Mirrors). 3채널 비디오 설치, B&W+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1분 30초. 2020. 사진제공=일민미술관

이미지 연구자 박민하는 3채널 영상 이중거울담론을 통해 보는 것의 원리와 더 멀리 보려는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11세기 이슬람의 천체물리학, 천문학자인 이븐 알 하이삼(Ibn Al Haytham, 965-1040)의 시각의 과학적 원리를 담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추적한다.

이븐 알 하이삼은 이라크의 도시 바스라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카이로에서 보냈다. 그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이슬람 황금시대의 가장 유명한 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특히 천체물리학, 천문학, 광학 및 원근법 과학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시각의 과학적 원리를 최초로 설명했으며, 그의 연구를 통해 빛이 물체에서 반사돼 눈으로 전달될 때 시각이 발생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카메라’는 라틴어로 방을, ‘옵스큐라’는 어둠을 뜻하는 말로 어두운 방을 의미한다.

이븐 알 하이삼은 카메라 옵스큐라 효과를 최초로 완전히 이해했으며 밝은 빛이 눈의 통증을 유발한다는 결론에 도달해 눈이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방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추론했다. 박민하는 이븐 알 하이삼을 추적하는 한편 알 하이젠이 집필한 ‘광학의 서’(The Book Of Optics)에 등장하는 아르키메데스의 전술이 그려진 삽화를 소환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여러 대의 대형 거울로 태양을 반사해 적군들의 배를 불태웠다 이 전술은 불의 거울, 죽음의 빛으로 불리었다. 고대사회에서 거울은 주술적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 - 이중거울담론 자막 중에서

(오른쪽) 박민하,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 싱글 채널 비디오, 16mm 필름+2K,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17분. 2023. 사진제공=일민미술관

박민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먼 곳의 이미지를 붙잡고자 한 욕망을 ‘다른 세계’를 보려는 욕망, 제국주의적 시선과 관광산업으로 연결한다. 도플갱어처럼 3채널 영상 안에서 같은 이미지로 반복되는 캘리포니아에 설치된 이라크 바그다드 세트장은 이 전쟁과 욕망이 극대화된 공간으로 설정된다. 군사훈련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을 위해 재현된 이라크 세트장은 진짜 이라크 전쟁 지역처럼 실재한다. 작가는 ‘도플갱어’라는 명칭을 통해 실재하지 않는 그러나 실재할 지도 모르는 공포의 대상을 상상하게 만든다. 도플갱어는 서로 마주치는 순간 퇴색하고 종말을 맞는다.

작가는 또 다른 작품 ‘잡을 수 없는 눈 이야기’를 통해 ‘물리적 환영’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견된 인공 눈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잉여물로 그리움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타임 패러독스’도 먼 과거로부터 존재해 온 공룡 꼬리뼈 화석 ‘MBR19’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간다. 선사시대 화석과 3D데이터, 박물관 아카이브에 이르기까지 기술매체를 통해 저장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공룡뼈가 발굴돼 보존, 복원되는 사건, 영원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사건을 과학적 지식과 교차해 검증해간다.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독백하듯 읊는 이야기는 우리를 아주 먼 곳의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먼 곳의 이미지를 붙잡을 수 있을까, 물리적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작가소개>

정연두(Jung Yeondoo)는 1969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영국 골드스미스대학교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백년 여행기’(20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여기와 저기 사이’(2020,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지금, 여기’(2019,페리지 갤러리, 서울), ‘夕立 - Between Day & Night’(2018, 코마고메 소코, 도쿄, 일본), ‘YeondooJung: Behind the Scenes’(2017, 노턴미술관, 웨스트팜비치, 미국)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2023, 필라델피아미술관, 필라델피아, 미국)를 비롯해 토탈미술관(2021, 서울), 서울시립미술관(2019, 서울), 대만현대문화실험장(2019, 타이베이, 대만)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박민하(Park Minha)는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미국캘리포니아예술대학(CalArts)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Time Paradox’(2024, 실린더2, 서울), ‘Shadow Planet’(2023,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베를린, 독일)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Facing the Movement’(2022, LUX, 런던, 영국)를 비롯해 아르코미술관(2022, 서울), 남서울시립미술관(2021, 서울), 백남준아트센터(2019, 용인), 부산현대미술관(2019, 부산), 두산갤러리(2018, 서울), AALA Gallery(2018, 로스앤젤레스, 미국), 리움미술관(2016, 서울)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글: 천수림 사진비평
이미지 제공: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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