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5.08.18 13:39:05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속 두 주인공의 피아노 배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짜릿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 배틀이 현실에서 이뤄진다. 그것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피아노와 오르간의 희귀한 배틀.
롯데문화재단이 ‘오르간 오딧세이’의 이번 주제로 ‘배틀 오르간’을 들고 왔다. 롯데콘서트홀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오르간 오딧세이는 2017년부터 8년째 공연돼왔다. 단순히 연주뿐 아니라 악기가 연주되는 방식, 역사 등 흥미로운 스토리도 들려주며 관객과 함께 오르간을 깊이 탐구해 가는 자리다.
오르간 오딧세이는 매 공연마다 겹치지 않는 새로운 테마를 선보여 왔는데, 이번 배틀 오르간은 제목 그대로 피아노와 오르간의 신선한 대결을 내세웠다. 여기에 각각 연주자와 콘서트 가이드로 해당 무대에 선 바 있는 오르가니스트 이민준과 피아니스트 김경민이 1년여 만에 다시 무대에 올라 이번엔 오르간과 피아노의 진검 승부를 선보인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피아노 전공 선후배 사이다. 피아노를 먼저 시작했던 이민준은 대학시절 오르간을 부전공하고 이후 독일 뤼벡 국립음대에서 오르간 석사과정과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지난해부터 오르간 오딧세이의 콘서트 가이드로 활약해온 김경민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재치 있는 입담과 섬세한 연주 실력으로 MZ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이들은 “대결이 기대된다”며 웃어보였다. 1년 전 공연 때와 비교해 봐도 한결 편안해진 표정과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눈에 띄어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연이 이뤄진 과정 및 주안점, 각자 꼽는 피아노와 오르간의 매력 등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번 ‘배틀 오르간’ 공연의 콘셉트는?
김경민·이민준 “오르간, 피아노를 번갈아 연주하는 배틀 형식의 공연입니다. 지난해 7월 ‘블루 랩소디’ 주제의 공연에서는 함께 오르간을 살짝 연주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각자 피아노, 오르간만을 집중해 연주합니다.”
- 1년 만에 다시 같은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데 감회는?
이민준 “1년 전엔 오케스트라 곡을 오르간 곡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더 걱정이 많았어요. 피아노를 연주할 때 건반을 터치하며 곡을 상상한다면, 오르간은 제가 직접 어떤 소리를 뽑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기도 했어요. 또 한 번의 경험이 있다보니 이번엔 좀 더 재미있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 그간 오르간 오딧세이의 주인공은 오르간이었는데요. 이번엔 피아노 또한 부각된다는 점에서 특히 피아니스트로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김경민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배틀을 좋아해서 이번 공연 이전에도 피아노끼리 겨루는 공연을 많이 했어요. 또 이민준 오르가니스트는 제 대학교 후배라 사적으로도 이미 친했기에 공연을 준비하면서 더 자유롭게 의견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지난해 공연과 비교해 차별점은?
김경민·이민준 “지난해 블루 랩소디를 타이틀로 내걸었던 공연에서 피아노와 오르간의 듀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엔 본격 피아노 대 오르간 즉, 솔로로 더 매력을 불태우는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1년 전의 공연과도 비교해서 더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여드리려 해요. 관객 또한 이번 공연에서 두 악기의 차이와 매력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각자 피아노와 오르간의 매력을 꼽자면?
이민준 “피아노와 오르간은 같은 건반 악기지만, 소리가 나는 방식, 연주 방법 등에서 사실상 매우 다른 특징을 지녔어요. 피아노가 해머가 현을 때려서 바로 소리가 나는 타악기적 방식의 악기라면, 오르간은 건반을 눌렀을 때 파이프 상자에 바람이 들어가고 밸브가 열린 뒤에야 비로소 소리가 나는 관악기적 방식의 악기입니다. 또 오르간은 건반 악기이지만, 오케스트라 소리를 잘 따라할 수 있어 어떨 때는 현악기 소리를, 어떨 때는 관악기 소리도 낼 수 있죠. 악보를 연구, 편곡해 오르간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점이 매력입니다.”
김경민 “오르간은 소리를 내거나 편곡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한데, 피아노는 악보만 준비돼 있으면 바로 칠 수 있어요. 그만큼 직관적으로 소리가 나기에 기교와 디테일을 뽐낼 수 있죠. 그래서 조금만 실수해도 티가 나기에 숨을 곳이 없어요(웃음). 잘 쳐도, 못 쳐도 온전히 연주자의 책임이죠. 이처럼 피아노가 건반을 치는 게 중요하다면, 오르간은 건반에서 손을 뗄 때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공연 때 이민준 오르가니스트와 영화 ‘해리포터’ 곡으로 듀오를 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오르간을 연주해봤는데 오르간은 건반을 눌렀을 때 피아노처럼 바로 소리가 나지 않아서 제가 제대로 치고 있나 헷갈리기도 했어요.”
- 그러면 협연할 때 타이밍을 맞추는 게 많이 어려웠겠는데요.
김경민·이민준 “관객이 들을 때는 피아노와 오르간 소리가 잘 맞겠지만, 무대 위 연주자에게는 잘 들리지 않아요. 오르간 건반을 눌러도 무대 뒤쪽에 설치된 파이프에서 소리가 나기에 시간차가 있어요. 작은 소리는 시차가 한 0.5초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공연 때 이 타이밍을 맞추는 게 조금 어려웠어요. 하지만 젠 서로 눈빛만 봐도 타이밍을 맞출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아요. 그만큼 리허설도 많이 했고요.”
- 그런 각 악기의 특성을 바탕으로 공연 리스트를 짤 때 특히 고려한 점은?
김경민 “배틀이라 하면 사실 기교를 가장 많이들 떠올리죠. 피아노는 기교를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대표곡들이 있고, 오르간의 경우 이 큰 악기를 어떻게 기교적으로 칠 수 있을지 고민했죠. 그래서 기교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대표곡 중 ‘메피스토 왈츠’와 ‘라 캄파넬라’를 선곡했어요. 특히 저는 라 캄파넬라 곡이 지닌 색채와 캐릭터에 많은 상상력을 부여하며 연주를 준비했어요. 이 곡들을 피아노와 오르간의 연주로 번갈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름에 음악으로 한 번 뜨겁게 불타올라보자는 마음으로 리스트업을 짰습니다.”
이민준 “메피스토 왈츠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줄곧 쳐온 곡이기도 한데요. 오르간으로는 처음 편곡하는 거라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피아노는 88개 건반이 있는데 오르간은 그보다 건반 수가 적고, 단이 나뉘어져 있어 발도 움직여야 하는 등 고려할 점이 많은데요. 그래서 오르간에서 최대한 아래 옥타브에서 시작한다든지 편곡 과정을 거쳐 피아노와 유사하게 칠 수 있도록 연구했어요. 편곡에 약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고요. 어떻게 연주해야 피아노와의 배틀에서 이길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는데, 준비하면서 ‘피아노로 연주하던 소리가 오르간으로는 이렇게 편곡될 수 있구나’ 체감하면서 놀라기도, 재밌기도 했어요. 리스트의 작품 외에도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g단조를 오르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는 지난해 공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도 선보이는데요.
김경민·이민준 “지난해 공연 때 유독 반응이 좋았고, 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는 대중적인 곡이기에 이번 공연 리스트에도 넣었습니다. 지난해 공연을 통해 관객이 재즈적이고 듣기 편한 곡들을 많이 즐긴다는 걸 느꼈어요. 거쉬인 곡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비중이 비슷하면서도 재즈스러운 면이 있어 여기에 잘 맞습니다. 또한 한 번 이미 호흡을 맞춘 곡이니 이번엔 더 잘할 수 있고, 또 다른 포인트도 강조할 수 있어 한 번만 하고 말기엔 아까운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 피아노 소리가 웅장한 오르간 소리에 묻히진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는데요.
이민준 “확실히 오르간으로 합주를 할 땐 다른 악기와의 화합을 더 생각하게 됩니다. 솔로 연주를 할 때 소리를 더 많이 뿜는다면, 합주를 할 땐 다른 악기의 소리가 들려야 해서 오르간 소리가 빠져줘야 하는 타이밍도 있고요. 그래서 음색 조합을 단순하게 한다든가, 음량을 조절한다든가, 묵직한 소리보다는 가벼운 소리를 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조절합니다. 이번엔 배틀이다 보니 오르간 소리로 다 눌러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공연의 마지막은 화합하는 콘셉트이다보니 자제해야겠죠(웃음).”
김경민 “피아노는 오르간의 웅장함엔 이길 수 없겠지만 빠른 속도와 테크닉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웃음).”
- 오르간 오딧세이는 공연 중 파이프 오르간 내부를 생중계하며 악기에 대해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한데요. 이번에도 진행되나요?
김경민 “물론이죠. 공연 중 이민준 오르가니스트가 솔로 곡을 연주할 때 제가 무대 뒤쪽으로 이동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파이프 오르간 내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도 오르간 오딧세이 콘서트 가이드를 맡기 전엔 오르간에 그런 큰 내부 공간이 존재하는지 몰랐어요. 제 주변 지인들 또한 공연 중 오르간 작동 원리가 정말 재밌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줬어요. 처음엔 낯설기도,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르간 내부가 제 방처럼 편안합니다(웃음). 오르간은 소리도 아름답지만, 악기 자체가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도 갖췄어요. 롯데콘서트홀에 오르간이 있기에 보다 공연장이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롯데콘서트홀을 통해 오르간의 매력을 보다 많이 사람들을 알 수 있었고요.”
이민준 “오르가니스트 입장에서 롯데콘서트홀에 감사해요. 한국에선 오르간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고, 만약 연주를 듣는다 해도 유럽에서조차 공연장 끝 쪽 저 멀리서 혼자서 연주하는 연주자는 안 보이고 소리만 들려올 때가 많아요. 그런데 롯데콘서트홀은 애초 만들어질 때 오르간 악기가 공연장에 잘 부각되도록 하고, 연주자 또한 무대 중앙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여기에 오르간 내부까지 보여주며 작동 원리를 생중계로 보여주는 등 오르간에 대한 접근성을 다방면으로 높이는 기회가 됐어요.”
-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오르간을 연주해봤는데, 롯데콘서트홀 오르간 소리의 특색은?
이민준 “유럽에서도 많이 연주해봤는데, 각 오르간마다 확실히 다른 면이 있어요. 오르간은 생긴 것도 각각 다르고, 또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피아노에도 악기 브랜드가 있듯 오르간도 제작사가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합니다. 롯데콘서트홀의 경우 오스트리아 리거사의 오르간을 갖췄습니다. 이는 프렌치 오르간 스타일로, 비교적 강하고 파워풀한 면이 특징입니다. 부천아트센터에서도 오르간을 연주해봤는데요. 까사방이라는 캐나다 브랜드의 악기로, 부드럽고 색채감 있는 소리가 났어요. 이처럼 각 오르간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 이후 또 듀오나 배틀 공연 기회가 있다면 선보이고 싶은 곡은?
이민준 “이번에 피아노곡을 편곡했다면, 다음엔 오케스트라 곡을 편곡해보고 싶어요. 솔로 악기 중 유일하게 오케스트라를 모방할 수 있는 악기가 오르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교향곡을 한 번 오르간으로 연주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리스트의 피아노곡과 오르간곡을 각각 나눠 공연 1, 2부를 구성한다든지 하는 프로그램도 생각해봤어요. 그런 시도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김경민 “클래식한 피아노 협주곡을 해보고 싶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등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본 곡을 오르간과 협연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땐 다양한 음색을 느낄 수 있고, 지휘자를 비롯해 오케스트라 각 개인과 소통하는 느낌이 가장 즐거웠는데요. 오르간의 경우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라 협연 시 피아노 듀오를 하는 느낌도 나고, 디테일적으로 일대 일로 섬세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배틀’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공연이 끝나고 현장에서 관객의 투표를 통해 승자를 가리는 이벤트도 진행한다고 한다. 두 연주자는 “자신있다”며 웃어보였다. 이번 공연은 이 대결도 흥미롭지만, 대중적인 악기인 피아노 그리고 과거 비대중적이었지만 오르간 오딧세이를 통해 점점 보다 많은 사람들과 접점을 넓히고 있는 오르간이 만나 들려줄 하모니가 특히 기대되는 자리다. 공연은 롯데콘서트홀에서 20일 오전 11시 30분에 열린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