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25.11.07 11:47:04
‘마자린의 구체관절인형 공방’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자신에게 깊은 영감을 준 ‘인생영화’를 주제로 각자의 다양한 세계를 펼친다.
인사동 아리수 갤러리에서 ‘제1회 마자린 인형 공방전’이 18일 개막한다. 2017년 시작돼 8년을 맞이한 마자린의 구체관절인형 공방(이하 공방)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인형 만드는 법을 배웠고, 이들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인형 작가로 성장했다. 이번 전시는 이런 그들의 작업 세계를 살펴보는 취지로 마련됐다.
공방을 운영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한 고정석 작가(마자린)는 “작가, 원형사, 업체 대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수강생들이 늘어나면서 공방만의 전시를 기획했고, 그 결과 20명의 작가가 모여 첫 전시를 선보인다”고 말했다.
전시엔 ▲고정석(마자린) ▲안상희(가인돌) ▲이유정(플로베) ▲이정현(은소돌) ▲송여름(키셀리) ▲김연서(주올로직) ▲유민선(얀피돌) ▲이현지(BloomingLee Studio) ▲윤하늘(플러피치) ▲김수진(수진킴돌) ▲김윤주(돌리하우스) ▲김지영(바비핑거) ▲신우림(키스도도) ▲장서경(제프돌) ▲이정훈(쥬니르) ▲정유진(검댕) ▲김태인(TTOTTI) ▲임해연(메르헨돌) ▲문춘경(봄이오오) ▲유소은(칼랑해)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이 모인 주제는 ‘나의 인생 영화’다. 고 작가는 “인형 제작 과정엔 사포질처럼 단조롭고 지루한 시간이 많다. 그럴 때 작가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틀어 놓고 귀로 들으며 작업을 이어가곤 한다”며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마치 서로 다른 영화와 드라마가 담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라이브러리를 보는 듯하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영화,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아 각자의 색깔을 표현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고 작가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에서 영감 받은 작품을 선보인다. 힘들었던 코로나19 시기 무려 4번이나 정주행하며 위안을 받았다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고 작가는 나름의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새로운 결말에 대한 상상을 곁들여 자신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극 중 산사스타크, 대너리스 타르가옌 캐릭터에 집중했다.
고 작가는 “산사스타크는 처음엔 이기적이고 허영심 많지만, 영주의 딸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원수의 가문들과 여러 번 결혼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더 단단해지는 캐릭터다. 원수를 처단할 땐 겁을 먹기도 하지만 이내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며 나약함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며 “그렇게 성장한 산사는 북부를 독립국으로 선포하고, 본인이 여왕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여왕으로서 사람들을 통치하고 있는 산사를 상상해보며 작업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실용적이고 차분했을 북부 지방의 사람들의 이미지에 착안해 기본 베이스는 흑백으로 표현했고, 수많은 크리스털을 붙여 여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산사스타크를 그렇게 완성했다.
또 다른 캐릭터 대너리스 타르가옌은 왕의 딸로, 처음엔 지혜롭고 성품이 좋지만 아버지의 사이코적 유전자로 인한 결함으로 붕괴하는 캐릭터다. 나중에 굳건해지는 산사스타크와 어찌 보면 대비돼 보이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고 작가는 “극 중 대너리스는 미친 여왕처럼 돼가지만, 나는 이 캐릭터의 미친 유전자가 불과 함께 소멸되고, 끝까지 멋진 여왕으로 남은 모습을 상상해봤다”고 설명했다. 극 중 대너리스는 가장 많은 곳을 돌아다녀 다양한 의복이 나오는데 그 중 가장 위엄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되는 파란색을 주요색으로 활용했다. 또 타르가옌 종족은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머리를 땋는데, 이를 권위 있는 뿔 형태로 작업하는 시도를 했다.
김수진(수진킴돌) 작가는 뉴욕 맨해튼 최상류층 자녀들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 ‘가십걸’의 소녀들을 통해 사람들 내면에 자리한 불안의 감정에 다가간다.
극 중 소녀들의 겉모습은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엔 서로에 대한 질투, 선망 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표출된다. 김 작가는 이런 어린 소녀들의 시기와 질투, 불안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감추어 두고 싶은 감정의 민낯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고.
김 작가는 “가십걸들은 외면적으로 당당하고 독립적인 자아를 추구하지만, 그 이면엔 친구와 부모 등 주위의 평판에 쉽게 무너지기 십상인 여린 자아 또한 자라고 있다”며 “어른이 돼가며 감정을 숨기는 것에 단련이 돼가고 있을 뿐,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집단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안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김 작가는 이런 화려함 속 숨어있는 불안의 양가적인 면모를 한 작품에 모두 담았다. 그는 “자신만 몰래 알고 싶은 내면의 불안을 나보다 우위라고 여겼던 친구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는 아이러니한 안정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며 “이렇게 극단의 느낌으로 대비되는 감정들을 소녀들이 밝고 화사한 착장을 하고서 짜증과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형은 지브러시로 모델링해 3d 프린팅한 원형을 사포가공한 후에 스프레이로 마무리했다. 그 이후 복제를 위한 실리콘 몰드를 만들어 조색한 우레탄 레진을 부어 굳힌 후 각 파츠를 뽑아내 조립해서 본체를 완성했다. 의상은 가십걸 주인공들의 대표 교복 이미지에서 착안해 코트, 가디건, 치마, 블라우스 등의 패턴을 만들고 재단해 손바느질로 작업했다.
김 작가는 “개인적으로 넋 놓고 의상 바느질을 하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며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들며 때론 즐겁게 때론 고통스럽게 완성한 작품. 보는 이들은 즐겁게만 감상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작가들의 인생 영화와 독창적인 작업 세계가 어우러진 전시는 인사동 아리수 갤러리 1층에서 18~25일 열린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