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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걸리시 감성에서 매혹적인 힘을 지닌 불의 여신으로

대림미술관, 페트라 콜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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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천수림(사진비평)⁄ 2025.12.01 09:14:20

‘페트라 콜린스: 팬걸(fangirl)’, 비커밍 페트라(Becoming Petra), 2025. courtesy of DAELIM MUSEUM

대림문화재단 30주년 맞이 ‘페트라 콜린스: 팬걸(fangirl)’(2025년 8월 29일~2026년 2월 15일) 전시는 ‘뉴트로’, ‘Y2K’ 트렌드와 맞물려 젠지(Gen-Z) 세대가 추구하는 ‘요즘 감성’이 무엇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다.

페트라 콜린스는 35mm 아날로그 필름 특유의 파스텔 톤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청춘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사진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작가는 젊은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식을 사진에 담아내면서, 하이틴 문화와 걸리시 감성을 대표하는 동시에 원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페트라 콜린스의 미술관 개인전으로, 사진, 영상, 설치, 패션, 매거진, 아카이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조지아 오키프 – 페트라 콜린스의 해석

‘페트라 콜린스: 팬걸(fangirl)’, 더 게이즈(The Gaze), 2025. courtesy of DAELIM MUSEUM

런던 테이트 모던은 당시 스물 세 살이었던 페트라 콜린스에게 2016년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회고전 개막을 기념해 영상작품을 의뢰한다. ‘조지아 오키프 – 페트라 콜린스의 해석(Georgia O'Keeffe – Interpreted by Petra Collins)’ 영상 작품은, 오키프의 작품 세계를 페트라 콜린스 특유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미학으로 재해석했다.

영상의 몽환적인 배경은 오키프가 사랑했던 뉴멕시코의 사막 풍경과 레이크 조지의 광활한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사실은 세트장에서 촬영한 것이다. 파스텔 톤의 분홍색, 파란색, 보라색 등의 색채를 사용해 오키프 작품의 부드러움에 콜린스의 시그니처인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결합된다. 콜린스가 아끼는 뮤즈들(바바라 페레이라, 리 아모가, 시셸 코커, 마이아 루스 리, 아자니 러셀 등)이 출연해 여성성과 자연을 탐구한다.

영상에는 오키프의 생전 인터뷰 녹음본이 삽입됐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의 풍경을 어떻게 그렸는지 말해줄 수는 있었지만, 나에게 내 풍경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말해줄 수는 없었다(They could tell you how they painted their landscape, but they couldn’t tell me how to paint mine)”는 오키프의 음성이 콜린스의 뮤즈들의 목소리와 함께 반복된다. 이 작품을 보면 페트라 콜린스의 앞으로 전개될 아티스트로서의 방향성이 읽힌다. 20세기 거장 오키프가 현대로 타임슬립해 페트라 콜린스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건넬까.

‘페트라 콜린스: 팬걸(fangirl)’, 더 게이즈(The Gaze), 2025. courtesy of DAELIM MUSEUM

2000년대 하이틴 감성, 걸리시 스타일, 동시대적 소녀성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감각적으로 보여준 페트라 콜린스는 흥미롭게도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하다. ‘뉴 노스탤지어’의 몽환적인 색감과 미묘한 감성은 마치 살아본 적 없으나 그리운 미지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미있는 건 제가 느끼는 노스탤지어가 꼭 과거에 대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 제가 겪지 못한 십대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가깝죠. 제가 만드는 이미지들은 모두 내가 꿈꿔왔거나 과거의 내가 살았으면 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에 가까워요. 그래서 저는 그런 세계에 더 향수를 느껴요.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그래요.”(더 토크, 2016)

‘텀블러 걸’ 그리고 ‘셀피’ 시리즈

페트라 콜린스, ‘더 틴에이지 게이즈(The Teenage Gaze)’. 2010~2015. courtesy of DAELIM MUSEUM

작가는 열다섯 살에 사진을 독학으로 배웠다. 스스로 ‘텀블러 걸(Tumblr girl)’이라 칭할 만큼 소셜 네크워크를 통한 소통에 매료됐고, 패션 블로거 타비 게빈슨이 창간한 미국의 청소년 온라인 잡지 ‘루키’에 사진과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주목을 받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친밀하게 담아낸 사진 스타일로 팬걸들의 공감을 받으며 성장했다.

사춘기의 불완전한 감정, 정체성의 혼란을 담아낸 사진 시리즈인 ‘셀피(Selfie)’(2013), ‘더 틴에이지 게이즈(The Teenage Gaze)’(2010~2015), 유년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한 ‘커밍 오브 에이지(Coming of Age)’(2016~2017) 시리즈는 페트라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은 작품이다.

셀피 시리즈는 개인의 내밀한 공간에서 찍은 초상 사진의 맥락을 이어가며 맥긴리로부터 받은 친밀한 조명 및 구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대 셀카 문화를 새롭게 확장한다. 라이트 박스로 설치된 전시장 2층의 작품들은 아날로그 필름 특유의 색감과 기술적 미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유년기를 보낸 캐나다 토론토 집의 외관을 재현한 덕분에 작가의 내면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 몽환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빛도 아름답지만 자신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의상과 제스처는 연출한 것이다.

페트라 콜린스, ‘팬걸, 뉴 놀스테지아(fangirl, New Nostalgia)’. 2025. courtesy of DAELIM MUSEUM

청춘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셀피 시리즈를 보면 이 시대 청춘들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 라이언 맥긴리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두 작가가 공유하는 ‘청춘의 미학’은 촬영 방식 때문이다. 실제로 콜린스는 맥긴리의 뮤즈였다. 그의 작업 방식과 기술을 직접적으로 배웠다고 언급했다. 일종의 ‘라이언 맥긴리 학교’라고 칭할 정도이다. 그녀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파스텔 톤의 색감, 소프트 포커스, 최소한의 보정은 맥긴리의 스타일을 계승한다. 특히 ‘커밍 오브 에이지(Coming of Age)’(2016~2017)에서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와 기억을 표현할 때 이러한 몽환적인 분위기는 극대화된다.

청춘의 자유로움과 솔직함을 표현하는데 맥긴리와도 비슷하지만 콜린스는 여성성, 정체성, 신체에 대한 오해, 온라인 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담는다. 콜린스는 더 틴에이지 게이즈 시리즈 등을 통해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시각에 의해 왜곡되거나 대상화돼 온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스스로 재정의했다.

‘24시간 사이코(24hr Psycho)’(2015~2016) 시리즈는 감정적 고통을 겪고 있는 열 명의 여성 얼굴을 대형 클로즈업으로 찍은 작업이다. 어머니의 양극성 장애를 지켜보며 자란 작가는 이 감정이 표출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 지금 너무 우울해’, ‘내가 너무 싫어’와 같은 자기비하를 담은 네온 사인의 문장은 가볍고 쉽게 부서지는 네온사인 특유의 물성을 통해 인물들의 상태와 감정이 드러날 때를 시각화한다.

페트라 콜린스, ‘커밍 오브 에이지, 안나 앤 캐서린 온 클라린다(Coming of Age, Anna and Kathleen on Clarinda)’. 2017. courtesy of DAELIM MUSEUM

‘페어리 테일즈(Fairy Tales)’(2020-2021) 시리즈는 배우 알렉사 데미와 협업한 영상 작업으로 요정, 인어, 사이렌, 물의 정령, 타락한 천사, ‘불의 어머니’인 투즈 아냐 역할로 등장한다. 이들은 교외주택, 병원, 공항, 클럽 등의 공간에서 화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그동안 전해 내려오는 고전 동화의 서사, 성적코드와 폭력성을 주목하며 수동적이고 비현실적인 동화 속 인물은 적극적인 감정을 주체적으로 표출하는 인물로 변모한다.

헝가리인에게 ‘투즈 아냐’는 단순히 불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삶의 필수 요소이자 정화와 보호의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진다. 투즈 아냐는 또 물의 어머니, 바람의 어머니, 태양의 어머니 등 다른 정령과 연결된다. 작가는 투즈 아냐처럼 강력하고 원초적인 여성성을 강조하며 주체적 여성의 연대를 꿈꾼다.

<작가소개>

페트라 콜린스(Petra Collins, b.1992)는 35mm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활용한 파스텔 톤과 소프트 포커스, 초현실적 조명이 더해진 몽환적인 분위기의 사진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15살에 독학으로 사진을 시작한 작가는 자신의 사진과 이야기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며 수많은 팬걸의 공감과 지지를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디스차지(Discharge)’(Capricious, 2014), ‘베이비(Babe)’(Random House, 2015), ‘커밍 오브 에이지(Coming of Age)’(Rizzoli, 2017), ‘OMG 아임 빙 킬드(I’m Being Killed)’(Super Labo, 2019), ‘바론(Baron)’(Baron Books, 2020), ‘페어리 테일즈(Fairy Tales)’(Rizzoli, 2021(를 포함한 총 8권의 사진책을 출판했으며, 카프리셔스88(New York, USA), 에버골드 프로젝트(San Francisco, USA)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뉴욕, 파리, 오슬로, 밀라노, 홍콩, 토론토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고, 2016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전시에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재해석한 커미션 영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패션 포토그래퍼, 필름 디렉터, 모델,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영역을 확장한 작가는 현재 애플, 구찌, 클로에, 마크 제이콥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비롯해, 블랙핑크, 뉴진스, 빌리 아일리시, 셀레나 고메즈 등 다수의 셀러브리티와 협업하며 활동하고 있다. 2019년 패션 브랜드 ‘아임쏘리 바이 페트라 콜린스(I’m Sorry by Petra Collins)‘를 론칭했다.

글: 천수림
이미지 제공: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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