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선 서울옥션 고미술 스페셜리스트⁄ 2025.12.15 15:42:24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법고창신, 이 사자성어는 추사 김정희의 삶을 관통하는 한마디로 종종 쓰이곤 한다. 그는 우리에게 ‘세한도’로 유명한 화가이자 추사체를 완성한 서예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업적은 다른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바로 고증학(考證學)과 금석학(金石學)이다.
고증학은 중국 명나라 말기에 등장한 유학의 분파다. 문헌학·언어학 등으로 대표되는 학문이 정치·경제적 대응책으로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다. 이는 조선후기 실학사상에 영향을 미쳐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 금석문을 중심으로 한 김정희, 경전을 중심으로 한 정약용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금석학은 금석문학·비문학(碑文學)으로도 칭하며, 금속기나 비석 등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연구하는 고고학의 영역이다. 중국에서는 후한 이래로 자리 잡았으나 조선에서는 김정희를 기점으로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해나갔다. 중국 청대에 앞서 언급한 고증학이 대두되면서 성행하기 시작한 금석학이 조선 문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를 ‘고증’하는 작품들을 이번 서울옥션 188회 경매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章 海東第一)
학문과 문장에 있어 조선에서 제일이다
출품작 중 작자미상의 ‘완운대상’이라는 작품을 살펴보면 한 인물의 초상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일반적인 옛 초상화와 달리 얼굴 부분만 확대하거나 정자세 또는 정좌(正坐)의 전신상이 아니라 한 손에 책을 말아 들고 비스듬히 선 입상이다. 복식 또한 관복의 형태를 갖추지 않아 학자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그림 우측 상단에 적힌 화제를 통해 ‘완운대상(阮雲臺像)’이라는 인물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초상 속 주인공은 바로 청나라 연경학계의 거두이자 김정희의 스승으로 알려진 운대 완원(阮元, 1764~1849)이다. 완원은 청나라의 고증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당대 금석학의 연구 방향 정립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학문 전개에도 큰 영향을 줬다.
특히 1809년 생원시에 급제한 김정희가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연경(오늘날 북경)을 방문했을 때 완원과의 만남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24세의 김정희는 완원과 교유하며 그의 학문적 체계를 깊이 받아들였고, 이는 훗날 추사체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더불어 김정희가 그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와 자신의 호를 ‘완당(阮堂)’이라 칭하며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여겼다는 점에서도 완원의 영향력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현재 중국 내 전하는 완원의 초상과 비교할 때, 넓은 이마와 짧은 머리, 길고 예리한 눈매, 수염의 형태 등으로 미루어 그의 용모를 충실히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초상의 좌측 하단에 찍힌 ‘장퇴연년(長堆延年)’이라는 인장과 상단의 ‘소향설관장(小香雪館藏)’이라 쓰인 묵서는 이 작품을 소장했던 인물이 조선후기 서화가 우봉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었음을 알려준다.
소향설관은 조희룡이 신안 임자도로 유배 갔던 시절에 머문 처소의 이름으로, 그 당시 접한 작품임을 배관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다. 이는 리움미술관 소장 ‘홍매대련’에서도 동일 묵서가 확인된다. 장수를 의미하는 문구인 장퇴연년의 도장 또한 개인 소장 작품들에서 사용례를 찾아볼 수 있어 조희룡의 구장품임을 ‘고증’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희룡이 소치 허련과 함께 김정희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림을 그린 이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조희룡이 자신의 스승인 김정희가 존경하던 청나라 문인 완원의 초상을 소장했던 점에서 그들의 학맥과 사제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소재(蘇齋, 옹방강) 서재에 모신 소동파입극도를 주야운(朱野雲, 주학년)이 임모해 보내온 것이다. 소재·운대(芸臺, 완원)·분정(分亭, 미상)·심암(心葊, 이임송)·지만(芝灣, 송상宋湘)의 시도 함께 있다. 그리고 오하(吳下, 강소성 소주)에 전한 관지(顴誌, 오른쪽 뺨)에 점이 그려진 진영(眞影)을 내 서재에 모시고 있어서, 재전(再傳)해 온 조자고의 그림에 이 내용을 함께 적는다.>
완원 외에도 청나라 문인 중 김정희의 스승으로는 소재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이 잘 알려져 있다. 옹방강 역시 청대 문인이자 서예가, 금석학자로 활동했으며, 김정희의 연경 방문 때 만남이 이뤄졌다.
김정희와 옹방강의 교류는 현재 여러 서화들을 통해 확인되며, 한 예로 2022년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됐던 ‘소동파입극도’를 살펴볼 수 있다. 소동파입극도는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소동파의 전신상으로, 김정희를 거쳐 백련 지운영 등 여러 근대 화가들도 다룬 화제다. 특히 김정희가 소장했던 이 작품은 옹방강의 서재에 걸린 그림을 청나라 화가 주학년(朱鶴年, 1760~1834)이 임모해 추사에게 선물했다는 제발이 함께 전하는 귀한 작품이다.
실제 김정희는 청나라 연행 때 옹방강의 서재를 방문해 그가 소장한 여러 시서화를 감상한 것으로 전한다. 또한 이 제발의 내용을 통해서도 김정희가 동시대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유뿐 아니라 그들과 작품 세계를 공유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김정희는 당대 조선을 넘어서 다양한 문인들과 국제적으로 교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해나갔을 뿐만 아니라 연구가 많이 되지 않았던 금석학 분야를 발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글의 소제목처럼 옹방강이 김정희에게 해동 제일이라고 상찬했던 그의 명성을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