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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옥션 정태희 경매사의 작가 탐색] 서도호가 만드는 한국의 집, 세계가 기억하다

‘이동 가능한 집’과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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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태희 서울옥션 경매사 겸 경매기획운영팀장⁄ 2026.01.05 15:06:55

정태희 서울옥션 경매사 겸 경매기획운영팀장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세계적인 미술관인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는 뜬금없게도 전시장 안에 한옥이 설치돼 화제가 됐다. 특히 전시 막바지인 10월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프리즈 런던 아트페어가 열리는 시기라 전 세계의 수많은 컬렉터들과 미술계 관계자들이 손꼽아 가봐야 할 곳으로 언급됐다. 바로 한국인 미술가이지만 세계무대에서 더욱 활약하고 있는 작가 서도호의 전시였다.

당시 전시에서 서도호는 ‘더 제네시스 익스비션: 서도호 –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선보였다. 부제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집’이 등장했다. 서도호는 과거부터 꾸준히 작품 세계에서 집을 주제로 한 작업을 제작해 왔다.

특히 국내에서는 2012년 리움에서 열린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전시 역시 한국에서는 거의 10년 만에 열린 대규모 개인전으로, 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작품이 관객을 압도했고, 서도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집’이라는 주제를 보다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독창적 작업의 출발

작가는 1962년 서울 태생으로, 그의 아버지는 한국 수묵 추상화의 거장 산정 서세옥이다. 서세옥은 전통적 한국화의 맥락을 현대 회화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였다. 서도호는 성북동 한옥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자연스레 아버지가 붓을 들고 화선지에 기운을 불어넣는 모습을 일상처럼 지켜보며 자랐다. 이때 한옥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이 오늘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 경험은 훗날 서도호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됐다.

동양화를 기반으로 한국적 추상을 시도한 아버지와 달리, 서도호는 서울대 동양화과를 전공한 후 세계 미술계의 중심인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이후 예일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예일대 졸업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본 리만머핀 갤러리의 공동 창업자 라쉘 리만은 당시 젊은 작가 서도호의 가능성을 단번에 알아본 듯하다. 투명한 천에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공간을 재현한 작업은 개인의 이야기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집으로 말하다

‘더 제네시스 익스비션: 서도호: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 테이트 모던 전시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and Victoria Miro. ©Do Ho Suh. Photo © Tate (Jai Monaghan)

서도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집’이다. 하지만 그의 집은 단순히 우리가 사는 공간적 형태의 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가 말하는 집은 이주와 이동, 기억과 상실, 정체성과 소속의 문제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작가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충격”이라고 회상했다.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느낀 낯선 이방인으로서의 생경한 기억에서 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출발한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주로 활용하는 소재인 폴리에스터나 은조사와 같은 반투명 천으로 집을 재현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서울 성북동의 한옥, 뉴욕의 아파트, 런던의 주택 등 그가 실제로 이동하며 거주했던 공간들을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때로는 외벽뿐 아니라 복도, 세면대, 가스레인지, 욕조 같은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반투명한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집에 빛이 투과하며 만들어지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관람객에게 실존하는 집과 아름다운 미술품 사이의 감각적 경계를 자극한다. 즉 집이라는 소재는 단순히 물리적 구조의 형태가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체험하며 각자 떠오르는 집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경험하는 공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갤러리를 통해 판매되는 서도호의 작품에서도 콘센트, 전화기, 문고리 등 집 안에 자리한 일상적 소재들이 등장하고, 그와 관련된 공감과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2012년 작 ‘서울 홈(Seoul Home)’에서는 한옥의 본질을 건드린다. 전통 한옥은 해체 후 다른 곳에서 다시 조립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동 가능한 집’이라는 개념을 작품으로 구현하며, 한 곳에 머무는 집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올 수 있는 집을 재현했다.

테이트 모던 전시 제목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 역시 이러한 한옥에 대한 개념과 사유에서 출발했으며, 작가가 살아온 여러 도시의 주거 공간을 실제 크기의 반투명 천 구조물로 구현했다. 관람객은 이 설치물 사이를 자유롭게 걸으며 삶의 궤적을 체험하는데, 이는 기억 속을 ‘걷는’ 방식으로 시간과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서도호 ‘Entrance’ 작품 이미지. 사진=서울옥션

서도호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극도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한옥에서 자란 작가가 서구의 고층 빌딩 숲을 경험하며 느낀 이질감, 유학생으로서 겪은 문화 충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정체성의 혼란 이 모든 경험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유와 보편적 감정의 지점에 맞닿아 있다.

특히 서도호의 초기 작업은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탐구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제작한 ‘플루어(Floor)’는 손가락만 한 플라스틱 사람 형상을 빽빽이 늘어놓아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유리를 덮은 설치 작품이다. 백인, 흑인, 황인종의 서로 다른 피부색 인형들이 유리판을 떠받치고 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인류라는 집단에 기여하는 하나하나의 작은 구성원을 표현하며 이목을 끌었다. 개인과 집단, 정체성과 익명성 등 다양한 주제와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은 동양인 작가의 시선에서 세계인들이 느끼는 복잡한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26년 주목하는 이유

서도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미술 시장 내 가치는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제 미술계에서의 활발한 활동과 주요 미술관 소장 여부도 중요하며, 작가의 전속 갤러리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

서도호는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참여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이후, 뉴욕 MoMA, 구겐하임,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LACMA, 런던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정상급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개인전은 112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 모았는데, 이는 그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관람한 전시였다. 현대미술 작가로서는 이례적인 대중적 인기를 보여주는 수치다.

2026년 국내 미술계에서도 예정된 다양한 전시 소식이 들려온다. 그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8월경 서도호의 전시가 개최된다는 보도자료가 눈길을 끈다. 다시금 세계적인 작가가 된 서도호의 대규모 전시가 빨리 다가오길 기다려지는 새해다.

관련태그
서울옥션  서도호  리움미술관  리만머핀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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