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화면 속의 여성들. 이들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녀들의 표정은 모두 시크하다. 일본 작가 키네(KYNE)가 그린, 이른바 ‘키네걸즈(KYNE-girls)’들의 모습이다.
RK·하나이 유스케 이어 이번엔 키네를 만나다
신세계갤러리 청담이 키네의 개인전 ‘루트(ROUTE) 3’를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갤러리 청담은 일본의 갤러리 타겟과 협업해 일본의 재능 있는 작가를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 왔다. 실제로 앞서 2024년 SNS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일본 스트리트 아트 사진작가 RK(료스케 코스케)에 이어 지난해엔 독특한 화풍으로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후 나이키·사카이·반스 등 여러 글로벌 브랜드와 컬래버 상품을 선보인 하나이 유스케의 작업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주인공은 키네다. 작가는 1988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같은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해 왔다. 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했으며, 2006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만화와 여성 팝 아이돌의 레코드 재킷 이미지를 비롯해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광고 작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업은 2010년대 이후 일본을 비롯해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엔 한국이 무대다. 이번 전시는 그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기도 하다. 이경민 신세계갤러리 청담 수석 큐레이터는 “지난해 작가는 후쿠오카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에 못지않은 규모로 국내 관람객과 만날 수 있게 마련했다”며 “판화, 드로잉, 벽화, 회화, 조각, 협업 굿즈 등 작가의 작업을 총망라하는 작품 총 70여 점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는 신세계갤러리 청담은 신세계가 백화점 외부에 처음으로 개관한 갤러리다. 신세계는 1963년 신세계 화랑을 개관한 이래 김환기, 피카소 등 국내외 저명한 작가들의 전시를 선보여 왔다. 강남점, 본점, 센텀시티, 광주신세계,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에 위치한 갤러리를 통해 패션,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된 전시와 이벤트를 통해 관객에게 차별화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해 왔다.
2023년 개관한 신세계갤러리 청담은 고급 편집 매장인 분더샵 지하 1층에 자리한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존 퍼슨이 갤러리 공간을 독창적인 화이트 큐브로 재구성했다. 또한 자연광을 구현한 조명 설계는 가고시안과 데이비드 즈워너 등 세계적인 갤러리의 조명 디다인을 맡아온 이소매트릭스의 감독 아래 완성됐다.
이 큐레이터는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구성된 신세계갤러리 청담 공간은 2023년 9월 세계적인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회고전을 시작으로 스털링 루비 등 글로벌 작가들의 주요 전시를 열어왔다”며 “건물 1층에 위치한 리테일 공간인 분더샵의 특징도 살려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한 작가들의 작업도 소개해왔다. 키네 또한 여러 브랜드와 독창적인 협업 굿즈를 많이 만들고, 자신만의 작업 세계도 탄탄히 구축해왔다. 이런 키네와 신세계갤러리 청담이 만나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시 기획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인 회화와 에디션 작품들은 이미 거의 완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큐레이터는 “키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대규모로 소개된 적이 없어 아쉬움을 표하는 코어 팬덤 층이 있었다. 이번 전시 소식에 작가의 많은 팬들이 관심을 보이며 갤러리를 찾았다. 전시를 기념해 작가에게 직접 작업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했는데, 사인을 받기 위해 이미 소장하고 있던 일러스트를 가져오는 팬들도 있었다”며 “평소 갤러리를 찾는 미술 애호가들도 키네의 작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관람자와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얼굴’과 ‘길’
이처럼 국내에도 많은 팬을 구축한 작가는 여성 이미지를 담은 작업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가 그리는 여성들은 거리감 있으면서도 절제된 인상을 지녔다. 굵은 선으로 표현된 눈썹과 눈을 가진 여성들은 한눈에 봐도 차분하면서도 단단하다. 그리고 이 여성들은 제한된 색채와 미니멀한 드로잉 스타일을 통해 관람자에게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큐레이터는 “작가가 그리는 여성은 화려하거나, 미소를 짓거나, 섹시한 매력을 어필하거나, 잘 보이려 하지 않는다. 애정을 소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라며 “이는 작가가 자라온 1980년대 일본의 보편화된 만화, 영화 등에서 많이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화면 속 여성들은 실제 모델이 있는데, 남성인 작가는 작업을 할 때 건조한 시선으로 대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한다”며 “타인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 여성 이미지들은 오늘날 동시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존재로 자리한다”고 말했다.
화면 속 여성들의 모습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화를 거쳤다. 작업 초기 증명사진처럼 얼굴에 집중됐던 이들의 신체가 점점 드러났고, 배경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람자와의 거리감을 유지했던 여성들의 시선은 낙서와 그래피티의 흔적, 항만 창고와 고가도로가 만들어내는 공기, 사람의 스케일을 넘어서는 구조물이 드리우는 그늘 등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이는 작가가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전시명 ROUTE 3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큐레이터는 “작가는 ‘route3boy’라는 닉네임을 오랜 시간 사용해왔다. 전시명 ROUTE 3는 지명 그 자체라기보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다뤄 온 ‘거리’를 상징한다”고 부연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인물과 장소를 한 화면에 섞지 않고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거리감을 유지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신작은 두 개의 캔버스가 한 쌍을 이루는 페어 작품(6점)이다. 한 캔버스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인물이, 그 옆에 바로 설치된 다른 캔버스엔 표지판과 신호등, 교량과 고가도로 같은 길의 풍경이 놓였다. 각각을 따로 떼어 놓아도, 붙여 놓아도 작품으로서 나란히 동등한 존재감을 갖는다. 어떤 페어에선 이 배경이 인물보다 크기도, 반대로 아주 작기도 하다. 즉, 풍경은 단순 인물의 배경으로 결코 물러서지 않고, 관람자 또한 ‘얼굴’과 ‘길’을 동시에 보게 된다.
이 큐레이터는 “작가가 한 화면에 만화적 컷 구성의 작업을 선보인 적은 있으나 아예 프레임을 각각으로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작가는 두 화면 사이의 거리감을 통해 미묘한 긴장감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의 작업 속 경계는 표정에서 공간으로 확장되고, 두 화면은 닿는 것 같으면서도 유지되는 거리감을 통해 새로운 조형미를 구축한다”며 “의도적으로 분리된 풍경과 인물, 그리고 절제미를 통해 관람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도 남긴다”고 말했다.
거대한 벽화도 눈에 띈다. 신세계갤러리 청담을 찾은 작가가 거대한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벽화다. 이 밖에 신세계는 명동 본점의 신세계스퀘어를 통해 이번 전시를 소개하는 영상을 띄우기도 했는데, 여러 매체를 통해 관객과 보다 소통하고 싶었던 작가가 만족을 표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가 작가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관람자에게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경험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세계갤러리 청담은 이번 키네 전시를 비롯해 국내외 다양한 작가의 기획전을 올해 이어갈 예정이다. 이 큐레이터는 “갤러리가 올해로 운영 3년차에 들어섰다. 꾸준히 이어지는 기획전과 더불어 살보 등 세계적 거장의 작품도 프리즈 시즌에 선보이며 갤러리의 인지도와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기대치 모두 높아졌다”며 “앞으로도 예술과 사람들의 접점이 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 4월 4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