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북·미·중 회의에서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불거진 한반도의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선거승리는 부시 대통령의 강압주의적 대외정책에 대한 미국 국민의 심판적 성격이 강하다. 이에 최근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는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부시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종전협정에 서명할 수도 있다는 언급은 한반도를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초미의 관심이 됐었다. 또한, 미국은 지난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 접촉에서 15 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을 갖고 2008년 중순까지 북핵을 폐기한다면 북·미간 수교까지 가능하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해 내년 1월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에 더욱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 美민주당 선거 승리로 대북정책 변화 에상 교도통신에서는 힐 차관보가 핵 폐기를 2008년까지 할 것을 북한에 제안하면서 북한이 이를 수용한다면 체제보장과 경제적 지원,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할 수 있음을 전달했고, 이를 거부한다면 추가 제재에 들어갈 수 있음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한·미·일 3국 외교장관은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회담에서 우선 영변의 흑연감속로 등 관련시설 가동 중단으로 북한의 핵포기 의사를 분명히 하도록 요구했다.
이날 3국 외교장관은 △함북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 폐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요원 수용 △핵관련 모든 시설과 계획의 신고 △핵포기를 확약한 9·19 공동성명 이행 등 5개항목을 북측에 요구했다. 이는 부시 대통령이 종전협정에 서명할 수 있음을 밝힌 것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다. 더욱이, 내년 1월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에 더 큰 희망을 걸 수 있는 이유는 크리스토퍼 힐 수석 부대표가 북측에 전달했다는 핵폐기의 시한이 부시 대통령의 임기인 2008년이라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한 이라크 전쟁이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경제도 침체되는 등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 같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의 핵폐기라는 성과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라크에서의 철군계획서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민주당에서뿐만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일고 있고, 이탈리아·덴마크가 주둔군 감축계획안을 발표했으며, 영국 역시 내년 말까지 수천 명의 병력을 줄일 계획을 발표하는 등 철군 도미노 현상이 일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임기를 2년이나 남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인정한다면 결국 급속히 레임덕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 부시 대통령은 외교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실질적인 접근을 해 옴에 따라 북한이 이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초유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단 최근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부상이 “조건만 충족되면 핵 폐기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화답하는 등 6자회담의 성공가능성은 상당히 높아보인다. 이는 이제까지 김계관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가 “핵을 폐기할 것이라면 뭐하러 만들었겠나”라고 말했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북한이 6자회담의 의제인 핵폐기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희망이 높아지고 있다. ■ 미국의 제네바 합의 파기로 불신 극대화 그러나, 그동안 북·미간에는 상당한 불신의 벽이 가로막고 있어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로동신문는 1일 사설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환상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특집기사들을 실은 것도 아직 6자회담의 성공을 자신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로동신문은 이 특집기사에서 핵무장을 포기한 리비아, 사찰을 수용한 이라크, 사회주의를 포기한 동유럽 등을 예로 들면서 “제국주의자들이 내흔드는 사탕발림 ‘원조’ 미끼에 홀리면 파멸의 길”이라고 경계의 목소리를 내 놓았다. 사실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악의적 무시와 함께 정권 교체가 가능함을 언급하는 등 적대적인 것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10월 24일, 북·미간 양자회담을 통해 제네바 협의를 맺어 북한의 핵위기 해소에 합의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취임하자마자 ‘빌 클린턴 전임 행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모두 배제한다’는 기조를 내세우며 제네바 합의의 무효화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 북한은 제네바 합의대로 2002년 말까지 핵 개발을 중지하는 등 상대적으로 충실히 합의를 지켜온 반면, 미국은 중유제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 미국은 1994년 공화당의 의회 장악으로 약속했던 경제제재 해제도 2000년에 가서야 일부 해제했고, 2003년까지 경수로 1기를 짓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나마 약속을 지켰던 매년 중유 50만톤 제공 역시 제 때 스케줄에 맞추지 못하는 등 제네바 합의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미국은 약속했던 북한에 대한 공식적인 안전보장, 북·미 관계정상화, 대북 제재 해제 및 경제원조 대신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언급으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대북 적대 정책을 명백히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 위기를 느낀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을 할 수 있음을 밝혔고, 미국은 이를 두고 제네바 기본합의 위반이라며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을 중단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이자 미국의 국제 정책센터선임 연구원인 셀리그 해리슨 씨는 이에 대해 지난 2005년 8월 16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인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완전히 준수해 왔다”고 말했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제네바 합의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북한 김정일 정권을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부도덕한 정권’으로 보는 시각을 분명히 하며, 황장엽 등 북한 정권타도를 주장하는 탈북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격려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마약·인권·위폐 문제 등을 연이어 제기하면서 북한을 압박했고, 올 6월에는 위폐를 문제삼아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에 있는 북한 정부의 자금 2200만 달러를 동결했다. 북한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지난 7월 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어 지난 10월 9일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로서 한반도 핵위기는 크게 고조됐다. 그러나,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폐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핵을 폐기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UN을 동원해 전방위적인 대북 제재를 통해 대북 압박을 높여나갔고, 지난 10월 24일 스티븐 해들리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러시아 방문 중에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더라도 당분간 북한과는 외교관계를 수립할 계획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네오콘의 생각인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면 결국 정권 교체나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입장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듯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과 북한은 서로에 대한 불신 속에서 갈등을 증폭시켜 갔다. 2002년 제네바 합의 이후 핵 물질을 봉쇄했던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적대적 대북 정책 속에서 이제는 핵실험이 가능할 정도의 핵물질을 확보하는 결과를 낳게 됐고, 북·미간에는 깊은 갈등의 골만이 남았다. ■ 재개될 6자회담 산적한 장애물 속 희망 찾아야… 이렇듯 부시 행정부와 북한은 심각한 불신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의 국회 장악으로 인해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의 상징이었던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과 볼튼 유엔 대사가 사퇴함에 따라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의 비중은 상당부분 줄어들었지만, 6자회담의 장벽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북한은 일단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심각한 불신의 여파로 동결되어 있는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의 자금 해제 등 동시 행동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면, 미국에서는 북한에 강력한 지렛대 효과를 줄 수 있는 자금의 해제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인력수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은 미국이 주장한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궁까지 사찰을 허용했지만, 결국 미국의 침공을 받았다. 더욱이 이라크에서의 사찰이 사실상 군사지역에 대한 정찰이 되어 미국의 침공 때 이라크 후세인 정부가 힘 한번 못써보고 무너진 경험은 북한에 많은 교훈을 줬을 것이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에 대해 불신하는 입장을 가진 북한이 사찰요원이 원하는 지역에 대한 불시사찰을 응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더욱 철저한 사찰을 주장하면서 자국이 중심이 된 사찰을 요구한다면 어렵게 재개된 6자회담은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한반도의 핵 위기가 재발한 2003년의 북한 핵은 고농축 우라늄 방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미국이 고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을 요구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의 비핵화 실현과 철저한 검증이라는 명분하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이러한 요구는 고농축 우라늄 방식이 간단한 원심분리기만 있으면 농축이 가능해 사실상 철저한 사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 미 국방연구원은 지난 2005년 평화방송 장성민의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북한의 HEU(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과 관련해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워싱턴에서도 그런 관점이 지금까지 지배적이었으나 나는 미국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이슈였다고 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듯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방식은 다시 개최될 6자회담에서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편, 부시 행정부가 핵 문제 말고도 인권이나 재래식 군사력을 문제삼을 여지도 있다. 지난 10월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을 인용보도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가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핵 문제 말고도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또 다른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들리 안보보좌관은 “또 다른 문제들 중에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대규모 군사병력·북한 주민들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태도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핵 프로그램 뿐만이 아니라 재래식 군사력, 인권 등 포괄적인 변형을 요구면서 이 요구가 들어지지 않는다면 관계를 정상화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 한국, 다른 6자 회담국들과 중간자적 역할해야 이는 부시 행정부가 그동안 “정상적인, 혹은 변형된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할 것”이라고 말해왔던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후에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에서 핵 폐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미사일·인권 등을 문제삼는 다면 북한은 이를 대북 정권 교체 시도로 볼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산적한 장애물들 속에서 우리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북-미간 불신을 덜고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핵폐기와 체제 안정 보장의 동시수용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다른 6자회담국인 중국·일본·러시아와 함께 마련해 중간자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현재 지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경색된 남·북 관계는 반드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북 특사설이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설은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내년 초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6자회담이 부시 행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 등 호재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듯 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세계의 눈길이 한반도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6자회담의 실질적 성공으로 한반도 핵위기를 해소해 또 한번 세계의 눈길이 한반도를 집중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채송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