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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아닌 원인 치유,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매년 수만명 봉사체험… “삶과 존재의 소중함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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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호 ⁄ 2007.07.03 14:31:19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치는 글귀였다. ‘식(食)’은 단순히 삶의 기본적 요소이자 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이들에게 ‘식(食)’은 삶의 ‘목적’이자, ‘기본적 요소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면과 인간만의 고유한 존엄성 사이에 잠시 ‘식(食)’이라는 단어를 대입해 본다. 꽃동네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전국적으로 눈이 내린 후여서 아름다운 설경과 깨끗한 공기에 먼저 감탄했다. 그 후 산에 둘러싸인 꽃동네 시설의 규모에 놀랐다. 처음 꽃동네를 알게 된 것은 ‘꽃동네’ 자체가 아닌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의 ‘횡령죄’ 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이다. 하지만 이번 취재 목적은 어디까지나 ‘꽃동네’이며, 특히 그 중에서도 보호 대상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사랑의 연수원’임을 미리 밝혀둔다. 참고로 오 신부는 지난달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바 있다. 음성 꽃동네는 1976년 설립되어 이미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으며, 또 살아가고 있다. 처음 시멘트 벽돌로 지은 부랑인을 위한 한 채의 집이 현재는 부랑인시설과 아동시설, 노인요양원·정신요양원·심신장애인요양원 등 수많은 요양기관뿐 아니라 의료기관과 교육기관까지도 여럿 갖출 정도가 됐다. 꽃동네는 가평을 비롯한 서울·청주·강화·옥천 등 국내 분원 뿐 아니라 미국과 필리핀 등 해외 분원도 마련되어 있다. 음성 꽃동네에서 22년간 지내온 박 마테오 수사는 “여기 사정을 모르는 일부 사람들은 꽃동네 규모가 너무 크다고 말하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20% 이상은 의사와 간호사의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이며, 일반 복지시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꽃동네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하지만, 사실상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 따라서 거주지가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환자가 우선 입소 대상이 된다. 마테오 수사는 “아무 조건 없이 입소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목표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꽃동네를 찾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는 사람을 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실제 꽃동네가 생긴 후, 장애아동을 비롯해, 버려지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게 되자, 한동안은 CCTV를 설치해야 할 정도였다. 밑 빠진 항아리에는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 꽃동네가 오는 사람을 모두 수용한다고 해도, 부랑인과 버림받는 심신장애인· 노인들은 끝없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사랑의 연수원’. 이곳은 기존 꽃동네가 결과적 치유를 위해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원인적 치유를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즉 꽃동네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행복한 개인·가정·국가·인류를 위한 가르침’을 위한 곳이다. 쉽게 말해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으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됐다. 10여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7년 5월13일 개원한 후,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명 이상의 학생·공무원·경찰·군인 뿐 아니라 기업인들까지도 찾는 곳이 됐다. ■ 매년 수만명이 체험 통해 봉사개념 새로 배워 보통 한번에 700~800명의 연수생을 받는다.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대다수 이지만,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신입직원 연수나 봉사활동을 위해 많이 찾고 있다. 학생들의 경우, 지원학교가 워낙 많아서 일년에 단 하루 전화로만 예약을 받고 있다. 이미 내년 말까지의 모든 예약이 완료된 상태. 2008년 예약분은 내년 3월에 할 예정인데, 벌써부터도 예약일을 알기 위한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연수기간은 보통 2박3일로 진행되며, 장애체험과 봉사활동·공동체놀이 외에도 캠프파이어·소감문 작성·명상·유언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연수비용은 성인의 경우 5만원, 고등학생 4만원, 중학생 3만8천원이다. 연수생의 하루는 6시 기상으로 시작된다. 학생들에게는 이른 시간이다. 간단한 청소를 시작으로 아침 식사후, 본격적인 연수생활이 시작된다. 중증환자나 심신장애인에 대한 봉사를 하기 전에는 사전 교육을 통해, 충분히 마음가짐과 봉사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게 된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봉사활동 외에도 장애인 체험 등을 통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또한 공동체놀이와 모둠작업을 통해 ‘함께 사는 방법’,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다. 특히 퇴소 전 연수원 생활에 대한 감상문 쓰기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은 많은 연수생들이 이곳에서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삶에 대한 변화가 가장 큰 시간이다. 베드로 수녀는 “한명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 눈물 파급 효과는 매우 빠르게 나타난다”며, “연수원에서의 짧은 체험으로 아이들의 인생관에 커다란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매순간 체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랑의 연수원은 교육관과 생활관으로 나뉜다. 교육관에는 전시실과 영상실·대강당 등 연수를 위한 공간뿐 아니라, 야외잔디구장·음악당·조각공원·야외공연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과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전시실에는 행복한 개인·가정·국가·인류를 주제로 한 4개의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이곳은 대전 엑스포 행사 후, 철거된 자재들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2,500명이 숙박할 수 있는 생활관에는 강당과 세미나실 등도 마련돼 있다. 마침 하안중학교 학생들이 입소식 후, 영상실에서 수녀님의 첫 봉사에 대한 경험담에 대해 듣고 있었다. 재미있는 말투와 몸짓으로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는 수녀님 모습이 위엄있어 보이기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불만이나 불평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지만, 불평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먼저 하길 바란다”는 말에 아이들 눈빛이 진지해진다. 베드로 수녀님은 “이 곳에 온 아이들의 표정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특히 아이들은 새로운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빨리 흡수한다”고 말한다. 마테오 수사는 “아이들은 열정적이고, 솔직하며, 감수성도 풍부하기 때문에 연수 효과가 굉장히 크다”며, “연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찰하게 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내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나 못지않게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는 점이라고. 그는 또한 “중고등학생들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사회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대부분의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랑의 연수원과 꽃동네가 목표로 하는 ‘버려지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우러름을 받으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은 분명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랑의 연수원과 같은 시설은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독창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자체적으로 평가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야했다. 시행착오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에도 ‘사랑의 연수원’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이러한 일환으로 국제대회도 열렸다. 마테오 수사는 “앞으로 ‘국제화’를 위해 외국인도 이곳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려운 점이라면, 지도교사의 부족이다. 무엇보다 ‘봉사’ 정신이 투철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테오 수사는 “교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이곳에서 일정 기간 교육기간을 거쳐 자체 심사에서 통과되면 지도교사로 활동할 수 있다”며, “지식과 능력이 아닌 인성과 감성이야 말로 지도교사의 으뜸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대안 기관은 사랑의 연수원 뿐 아니라 대학교육기관으로도 마련돼 있다.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가 바로 그곳으로, 사회복지 전문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9년 설립됐다. 현재 사랑의 연수원에서 업무를 맡고 있는 이은희 씨도 개교 당시 처음 입학한 학생으로 졸업후, 사랑의 연수원에서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이 씨는 “이 곳은 단순한 직장이 아닌 ‘사랑의 장소’이자, 매일 사랑을 배우고, 또 스스로 변화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봉사란 베푸는 개념의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이라는 마테오 수사의 말을 떠올리며 ‘희망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다른 모습, 또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희망의 집’ 희망의 집은 심신장애인이 생활하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 포장과 트리 장식 등 분주히 행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일까. 새로운 사람에 대한 반가움일까. 많은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손을 내미는 그들의 눈이 맑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얼굴 근육을 힘겹게 움직여 미소를 보낸다. 가까스로 인사말을 건네는 입에서 침이 흐른다. 따뜻한 체온이 손을 통해 전달된다.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나, 다가서는데 대한 망설임은 가지고 있지 않다. 방마다 침대와 텔레비전이 마련되어 있고 방은 따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분위기가 밝고 아늑했다. 드문드문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이 안마를 해주거나 말동무를 해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진희 학생(하안중학교 3학년)은 “거리에서 (심신장애인을) 볼 때는 무서웠는데, 막상 와 보니 다들 친절하고 잘 대해준다”며, “힘든 점도 있지만 보람을 많이 느껴요. 앞으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기특한 말을 한다. 화가 안 모씨는 최근 열린 미술대회에서 수상을 해서 2박3일간 제주도에 가게 됐단다. 동료들이 와서 축하해주고 부러움을 표하자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역력하다. 휠체어에 앉아 유일하게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그린 그의 그림을 보니 온통 꽃밭이다. 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화사하다. 그의 마음에는 희망이라는 꽃이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스친다. 컴퓨터실에 들어서니 몇몇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한 명은 컴퓨터 지도교사와 채팅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교사가 대화를 하고, 이 쪽에선 거의 읽기만 하고 있었다. 그는 곧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려져 있는 사진을 자랑한다. 지난 체육대회때 찍은 사진 3장이 올려져 있었다. 시인 이 모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있는 시를 보여준다.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한참이 걸린다. 원하는 곳으로 바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다. 손동작보다 더 힘겹게 입을 뗀다. 죄송하게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시설 관계자가 “꼭 방명록에 글을 남겨달라는 말”이라고 설명해준다. 한 아주머니는 두 손에 기자의 손을 꼭 잡고서 도무지 놓아주질 않는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까. 세상을 향한 손짓일까. 꽃동네에서 봉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성인이라면 신청하면 봉사를 할 수 있다. 학생의 경우는 고등학생 이상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방학 때는 학생 자원봉사자가 많아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숙식을 시설 생활자들과 함께 해결한다. 마테오 수사는 “꽃동네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배우는 것이라면 한사람, 한사람이 누구나 소중하다는 점”이라며, “우리 사회는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더 나아가 ‘큰 가족’으로서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마주치면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로 따뜻하게 미소지어 주는 곳. 이 곳 꽃동네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온 사람들에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보금자리가 아닐까.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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