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7년 6월, 명동성당에 모인 사람들은 허기지고 지쳐갔다. 성당을 둘러싼 녹색의 방패와 그 방패들 사이로 날아와 꽂히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눈빛, 그들에게 명동성당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벽의 가장자리였다. 그때 누군가 촛불을 들었다. 하나의 촛불은 두 개의 불빛으로, 이어 거대한 불빛의 물결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열의 맨 앞에는 검은색 머리수건을 동여맨 수녀들이 있었다. 경찰도, 시민들도, 침묵 속에 빛나는 촛불의 대열에 할 말을 잃었다. 돌아가라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도, 싸륵싸륵 촛불 타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20년 후, 당시의 기억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한 수녀가 있다. 이 호노리나(본명 이애령) 수녀, 현 대전 성모여고 교장. ■ “현행 사립학교법, 교권 침해 전혀 없다” 지난 1월 16일 서울 여의도의 정치웹진‘무브온21’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이 교장은 최근 종교계열의 사립학교 측이 요구하고 있는 ‘개방형 이사제 폐지를 핵심으로 한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 교장은 특히 이들 종교사학 관련 단체에 ‘한국가톨릭학교 법인연합회’가 들어 있다는 점을 들어, “그 분들의 주장이 가톨릭 전체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지금의 사학법 하에서도 교육자율권에 대한 침해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장은 이들의 기자회견을 예로 들면서 “가톨릭 교육계 의견의 상당 부분이 박홍 신부의 의견과 반대”라고 밝혔다. 그는 “(사학법 문제와 관련해) 정진석 추기경도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특히 정 추기경은 ‘가톨릭이 비리와 관련된 바가 없는데 이런 데 참여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톨릭계 종교사학 역시 현행 사립학교법이 교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이 교장은 “제가 종교사학의 고등학교 교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교권침해라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사학계가 교권에 침해를 받는다고 느낀다면, 차라리 종교교육을 실시할 경우 두 개 이상의 종교를 제시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조항이 교육관련법에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강제적으로 종교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역으로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게 이 교장이 밝힌 이유다. 요컨데, 현재의 종교사학이 종교선택의 자유를 억압하고 특정한 종교만을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일 뿐, 종교사학 측에서 주장하는 현행 사학법의 교권침해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 교장은 “현행 사학법에서 감사 문제에 있어서 대학과 중·고교는 구분하고 있는데 대학은 감사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사학법은 대학에 미흡한 것이 사실이지만 중·고교 입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 “우리 교육의 제일 큰 문제는 학력 세습” 그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공교육의 위기와 사교육의 비대화’에서 찾았다. 이 교장은 “제가 볼 때 사람들에게서 이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좋은 정책이 나와도 돈 가진 사람들은 ‘우리 애가 어떻게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허점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또 “취학 전 아이들은 조기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학 전 아이들 중 일부는 조기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이 아이들 중 일부는 중학교에 와도 책을 못 읽는 아이들도 있다”면서 대전 성모여고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 교장에 따르면, 대전 성모여고는 “들어오는 학생들의 반 이상이 결손가정 출신”이다. “그 아이들은 학원에 가고 싶어도 못 가고 과외 받는 아이들은 5%도 안 되는데 과외 받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학교의 방침에 불만”이라는 것이다. 이 교장은 그 이유로 “(과외 받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학교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교장의 설명이다. 이 교장은 “사실 학교 운영에 있어서 제일 큰 고민은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제일 큰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적인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말은 “어느 대학 출신인가보다도 어떤 기술이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인데, 자녀의 미래는 ‘아버지의 경제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학력이 세습된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이 교장은 토로했다. ■ “노 대통령, 개인의 감정에서 좀 더 자유로와져야 한다” 그는 “교육의 최고 권력자는 학부모”라고 규정했다. “‘어머니 안에 적이 있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구(詩句)도 있듯이 그들 중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바로 학력세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이 교장은 비판했다. 이날 스스로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밝힌 이 교장은 노 대통령에 대한 솔직한 감회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교장은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 분의 삶을 보고 존경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제가 학교장을 하다보니까 제 소신대로 결정할 수 없는 때가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라크 파병’ 등의 문제 등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대통령의 고뇌를 이해한다”는 이 교장은 “‘대연정’ 제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장은 “부분적으로는 아쉬운 것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게 그 이유다. “어떤 누군가가 대통령에 대해 공격을 했을 때 속이 상하겠지만, 좀 자유로워지셔야 한다”고 이 교장은 강조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일 때 그의 정신 때문에 따랐던 사람들은 힘이 빠진다”고도 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고전(古典)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고전이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이 교장은 “그 결과가 요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한계’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어느 광고에서 보니까, ‘논술은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쓰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광고를 떠나서 그 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이 교장은 자신이 교장직을 맡고 있는 대전 성모여고 학생들에 대해 “우리 성모여고 아이들은 제가 봤을 때는 순박한 편이다. 그리고 참 예쁘다”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