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고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 고전하고 있다. 고급공무원과 은행원을 ‘최고의 직업’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는 탈개성화도 비정상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런 까닭일까? 대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탈 정치화는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에 놓인 오늘날 대학생들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또 우리 사회의 한 축인 노동운동과 노사관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한국노총은 한림대 박준식 교수팀에게 ‘대학생의식조사 연구조사’를 맡긴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는 경기대, 국민대, 단국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숭실대, 연세대, 한성대, 한양대, 홍익대 등 수도권 10개 대학에 재학중인 615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실시됐다. ■대학생 70%, “자본주의 긍정적으로 본다” 우선 우리나라 자본주의에 대해서 대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과거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친노동’, ‘반자본’ 의식은 많이 약화됐다.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시절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낸 영향인 지 대학생들의 반자본주의적 정서는 누그러진 듯 보인다. 실제로 <표 1>에서 보는 것처럼 대학생들 가운데 ‘자본주의가 너무나 문제가 많은 경제체제’라고 답한 비율은 7.2%에 불과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경제체제’라고 답한 비율까지 합해도 대학생 10명 가운데 3명만 자본주의체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반면 ‘자본주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의견은 대학생 가운데 30%에 이르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경제체제’라고 하는 의견까지 더하면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비율은 70%에 이른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는 “과거 대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나타난 문제를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이를 옹호하는 독재권력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뛰어 들었던 점과 비교해 보면 매우 커다란 변화이다”고 평가했다.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는 역시 ‘빈부격차’ 그러나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 2>는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9개 항목들을 열거하고 대학생들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결과이다. 전체적으로 대학생들은 빈부격차·부동산문제·부정부패 등 모든 항목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 답변했다. 대부분의 문항에서 3분의 2 이상의 대학생들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다. 특히 빈부격차와 부동산문제, 그리고 부정부패 문제에는 90% 이상의 대학생들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다. ■대학생들이 바라본 노동운동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우리 사회의 한 축인 노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보적 목소리를 전달해 왔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성장했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노동조합의 성장세나 활동성 측면은 약화됐고 대중적 지지도 역시 떨어졌다. 학자들은 이런 노동운동의 약화를 ‘지식기반 사회로의 이동’,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 ‘경제적 세계화’와 같은 경제적 또는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노동자 내부의 이질성 증대 역시 노동운동의 약화를 초래했다. 이를 반영하듯 현재 대학생들은 현재의 노동운동 노선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노동운동이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가’에 대해서 대학생 67.6%가 ‘외면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왜 한국의 노동운동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표 3> ‘외면 받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대학생들은 ‘투쟁위주의 노동운동’이라고 대답했고, ‘비정규직 등 소외계층에 대한 대변이 미흡하다’는 의견과 ‘이념위주의 좌파적 편향’을 그 이유로 들었다. 대학생들은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경제적 이해의 대변을 목표로 사용자와의 타협을 중심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람직한 노동운동의 노선은 ‘근로조건 개선 위주의 실리적 노동운동(57.7%)’이라고 답했고, 노동조합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한 질문에서도 37.4%가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을 꼽았다. 반면 현재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변보다는 사회적 이슈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타협보다는 투쟁을 선호하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반영하듯 대학생 가운데 21%만 ‘비정규직 등 소외계층의 권익을 노조가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고 답했고 ‘사회민주화를 위한 정치참여’는 불과 3.1%였다.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통해 대학생의 노동운동에 대한 사고가 매우 협소하다는 점 또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왜냐하면 근로자 개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제도나 구조의 변화가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기적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는 것으로는 제도나 구조의 변화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조도, 집단행동도 필요하다 대학생들은 현재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피력했지만 노동조합 자체와 노조의 집단행동에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75.6%가 ‘필요하다’고 밝힌 반면 ‘필요없다’는 의견은 1.8%에 불과했다. 대학생 상당수가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대학생들은 ‘인격적 대우’, ‘근로조건 향상 때문’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임금인상’, ‘비정규직 처우개선’, ‘사회정의 실현’ 등이 뒤를 이었다. 또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이 이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사회불안요인으로 제거되야 한다’는 응답은 3.3%에 불과했고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11.2%)’, ‘최선은 아니지만 불가피(58.4%)’하다는 응답이 대체로 많았다. ■대학생의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 변화, 노조도 관심 가져야 연구조사를 맡은 박 교수는 발제문에서 “2000년대의 대학생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해 훨씬 높은 지지도를 보여주며 경쟁과 책임, 자유 등과 같은 요소를 더 강하게 지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자본주의로부터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부작용에 대한 무관심과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학생들은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지닌 장점을 수용하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이러한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교정하기 위한 사회적 개입과 양극화 해소 등 사회 통합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에 대해 그 필요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노조 역시 변화하는 대학생들의 사회의식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절실하다”며 “대학생의 노동운동에 대한 사고가 매우 협소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경제주의에 매몰돼 있는 대학생의 노동조합에 대한 사고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