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원로들이 대선 정국에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내 유력 대선 후보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양 진영에는 정계 원로들이 앞다퉈 대선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나서고 있다.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전 시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가운데,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양 후보 진영은 원로들 줄세우기 경쟁이 붙었다. 이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중진 영입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은 이명박 전 시장측으로, 최병렬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측 캠프에 합류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을 두고 양측 진영에서 김 의원을 영입하려는 물밑 전쟁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지역적으로 호남출신인데다가 정치적으로 민주계출신으로 적지않은 정치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의원은 호남출신 대의원들에 대한 당내 높은 영향력으로 ‘대어(大漁)’라는 평을 받고 있다. 당의 공식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덕룡 의원은 11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10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부인의 공천헌금 비리 문제로 정계은퇴 직전까지 갔던 김덕룡 의원은 공식 정치활동을 자제해 왔던 것. 정치권에서는 김덕룡 의원이 11일 당 공식회의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재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김 의원이 겉으론 중립이지만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 전 시장 측에선 “서 전 대표가 캠프에 합류한 마당에 같은 민주계 출신으로 기반이 겹치는 김 의원이 쉽사리 박 전 대표 쪽으로 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김덕룡 의원이 아직까지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친 김덕룡계로 일컬어지는 이혜훈·이규택 의원과 이성헌 전 의원 등이 박 전 대표 진영에 있는데다가 김 의원이 지난해 불거진 부인의 공천비리 배후로 이 전 시장 측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박근혜측 “이회창 오라” 이회창측 “특정후보 지지 없다” 한편,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양측의 러브콜도 만만찮다. 박 전 대표 대선캠프 공식합류를 선언한 서청원 전 대표는 지난 9일 “오늘을 계기로 이회창 전 총재와 최병렬 전 대표도 고마움을 느끼고 돌아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회창 전 총재측은 서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이 전 총재 측근 뿐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전 총재가 직접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는데, 캠프합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흥주 전 총재특보는 “어느 특정후보 캠프에 합류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 전 총재가 양 진영을 골고루 만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전 총재가 공정한 경선을 바라는 분인데 서청원 전 대표처럼 한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다. 경선 과정에서 누구를 지지할 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계 원로 인사들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당대표 캠프로 쏠리면서 정치적 계파를 함께했던 인사들끼리도 등을 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 시장 쪽에는 YS 추종 세력이었던 상도동계 중 이재오 최고위원과 안경률 의원이 대표적이다. 민정계 중에는 이 전 시장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비롯,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이었던 신경식·양정규 전 의원도 이 전 시장을 지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의 경우, 민정계 중에는 현경대·정재철 전 의원, 강재섭 대표를 꼽을 수 있다. 당내 자민련계의 중진인 김용환 전 의원과 김학원 의원도 박 전 대표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후보진영은 원로들의 적극적인 영입 이유로 원로급의 상징성을 든다. 이러한 상징성은 실제 득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박 전 대표측 관계자는 “서청원 전 대표는 수도권에서 (대의원 표심에) 영향력이 적지 않다”며 서 전 대표의 활약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최병렬 전 당 대표는 수도권과 부산 지역에서, 김덕룡 의원은 호남 지역에서 지역표를 끌어올 수 있다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 원로들 영입, “상징성과 득표 위해” 하지만 이러한 원로들의 ‘정계 복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들 원로들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 때문에 구태정치를 재현시키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이 전 시장측 관계자는 “서창원 전 대표는 당권을, 최병렬 전 대표는 경남지역 공천을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측 관계자는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은 국회의장을 내락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 전 시장 지지는 아들 김현철 씨의 공천을 약속받은 것이며, 주호영 의원(이 전 시장 비서실장)은 법무부장관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후문도 돌고 있다. 박 전 대표측 관계자는 “(원로 영입은) 원로들 사이에서 이번 대선에서 꼭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선 박 전 대표를 지지해야한다는 충심이 공감대를 이루면서 자발적으로 이뤄진 결과”라며 “지지율 1위도 아닌 2위 진영에 가담한만큼 줄서기로만 평가절하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측 관계자도 “박 전 국회부의장은 아직 현직의원인만큼 플레이어로서 뛰는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전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경선 과열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줄세우기가 아니라, 지지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경선 중립을 표방하는 ‘당이 중심이 되는 모임’(중심모임) 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청원 전 대표 영입 등 ‘중진 줄세우기’에 관해 “지지하고 싶은 사람이 (캠프에) 들어오는 것은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미국은 경선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심하게 경쟁한다. 현 상황이 과열됐다고 심각하게 보지 말아달라”면서도 “그러나 공갈·협박 등으로 줄세우는 것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중립을 지키겠다던 의원들까지도 한 쪽 캠프의 공개 지지를 선언하면서, 양측의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지난해까지 캠프당 20명 정도에 불과했던 공개지지 의원들은 올해 다수의 중립 의원이 캠프에 합류하면서, 양 캠프는 약 50명가량의 지원 의원을 얻게 됐다. 현재 한나라당 전체 의원 127명 가운데 이 전 시장 측은 이재오 최고위원을 비롯, 최근 많은 의원들이 부쩍 캠프에 합류해 지원 의원은 60여명 가량까지 늘어났다. 반면 박 전 대표의 경우 대표 시절 당직자들이 대세를 이루며 ‘당심’에서는 다소 앞선 추세를 보이고 있다. 취약 지역을 향한 주도권 싸움은 더 치열하다. 박 전 대표는 지난 5·31 총선에서 대구권에 중점을 두었던 것에 이어 이번 4·25 재보선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유세를 통해 충청을 전략지로 삼을 계획이다. 반면 이 전 시장 측은 호남에서의 40%라는 높은 지지율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 ‘후보 지지’ vs ‘줄서기’ 찬반 극명히 나뉘어 이러한 한나라당의 의원 또는 원로들의 ‘줄서기’에 대해 당 안팎으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당 지도부조차 ‘줄서기’ 설전을 벌이며, 당 전체가 ‘경선’과 ‘줄서기’ 논란에 휩싸여 있다. 최근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 간 줄서기 논란으로 인한 당 지도부의 ‘사퇴’ 설전에 이어, 전여옥 최고위원과 권영세 최고위원도 당내 의원들에 대해 ‘줄서기’ 비난을 이어갔다. 당내에서는 ‘줄서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뿐 아니라 ‘자유로운 지지후보 결정’이라는 반대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실정. 홍준표 의원은 “줄세우기라는 것은 소신없이 공천 때문에 줄서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소신을 가지고 그 사람과 같이 국정운영을 해보겠다고 자기 의지대로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 두 가지를 묶어서 줄세우기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경선은 원래 중립이란 게 없다. 선거에서 중립은 그 무효표. 그것은 그렇게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선거는 점잖게 중립지대에 있는 게임이 아니”라며 “한나라당이 그 사이에 너무 점잖은 내부 경선도 해왔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치열함이 부족한 정당”이라고 말해, 줄세우기에 대한 비판을 ‘기우’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은 11일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하고 있는 원로들을 향해 “국민에게 진 빚부터 갚으라”는 쓴소리를 했다. 고 의원은 “서청원 전 대표뿐만 아니라 당의 원로와 중진을 자처하는 분들이 너도나도 줄서기에 가세하는 형국”이라며 “한지붕 세가족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의 단결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유력 대권주자에 대한 줄서기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서청원 전 대표가 박 전 대표측에 합류하면서 ‘시스템 정치’와 ‘박 전 대표에게 빚을 갚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줄서기는 결코 시스템 정치가 아닌 계파 정치이며, 빚 갚아야할 대상은 바로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의 원로와 중진들이 ‘줄서기의 확장판’을 만드는 것은 한지붕 세가족의 분열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며 “계파 정치 답습에 골몰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편, 서청원 전 대표는 당직자들의 줄서기와 관련한 비판과 관련 “중립을 가장한 이중적 태도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서청원 전 대표는 “당내 비판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당의 최종 의사 결정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선거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떳떳하다면 자신이 의사를 밝히는 것이 낫다”며 “정치는 국민들의 지지에 의해 하는 것이고, 당에서 ‘올드 보이’를 만들어서 과거의 정치인들을 매도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표측은 당내 줄세우기에 대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는 이명박 전 시장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측의 이혜훈 의원은 1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줄세우기 또는 줄서기에 대한 비판은 한측(이명박 전 시장측)의 문제”라며 “박 전 대표가 줄세우기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김무성 의원도 이날 상임전국위에서 “한 쪽에 서 있는 시도당 위원장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시도당 위원장 선출 과정의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시도당위원장 선출을 새로 해야 하는 데 이 분들이 투표권을 가진 운영위원들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해, 이 전 시장측에 대한 견제를 낮추지 않았다. ■ “경선 과열이 구태정치 부르나” 우려 목소리 이에, 김형오 원내대표는 당내 후보진영간 대립과 ‘줄서기’ 비판에 대해 “줄서는 문제로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 원내대표는 10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선당후캠’이라는 글을 통해 “당의 이익이 캠프의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며 “적어도 캠프에 참여하는 의원들의 기본의식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있고 난 후 대선주자가 있는 법”이라며 “적어도 10년 야당을 하고 집권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처지에는 더욱 그렇다”며 당내 의원들을 향해 자제를 촉구했다. 한나라당내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당이 중심되는 모임’(중심모임) 의원들도 경선과 관련되어 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등 당내 갈등을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심모임’의 회장인 맹형규 의원은 10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선거인단 자격문제, 경선 방식 등에 대한 논의도 남아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8월 경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맹 의원은 경선 확정에 대한 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한편, “후보측 대리인을 제외한 당원당규특위를 조속히 구성해서 경선과 관련된 현안들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도 “한나라당식의 5감정치는 중단해야” 한다며 따끔한 충고를 했다. 최 대변인은 서청원 전 대표의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에 대해 “차떼기의 대명사가 귀환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차떼기 딱지를 붙였다”고 비꼬았다. 그는 “서청원 전 대표는 2002년 썬앤문 부회장으로부터의 수뢰혐의, 2004년 한화로부터의 수뢰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던 분”이라며 “옛날 분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개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나라당이 대권후보 줄세우기를 강요하면서 마치 조기 꾸러미 엮듯이 모든 정치인을 엮는 구태정치를 보여주면서 국민들의 5감을 자극했다”며 “한나라당이 소위 말해서 5감정치의 완결편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