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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노무현은 박정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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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호 ⁄ 2007.07.02 13:06:23

“이것이 생(生)이었더냐, 자,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니체의 영겁회귀는 삶이, 역사가 단순히 무한 반복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삶의 동력)에의 의지’나 ‘운명애’가 뒷받침된 탈 니힐리즘을 위한 근원적인 인식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하여 영겁회귀 속에서도 운명에 대한 사랑은 발현되며 삶에 대한 능동적인 철학과 자세가 구비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이었더냐, 자 그렇다면 다시 한 번!’이라는 것도 결국 니체 자신이 정립한 개념인 영겁회귀-권력에의 의지가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지 그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산재해 있는 삶의 본질과는 다른 요소들 즉 신·도덕·관습 등에 의해 이성은 자라났고 이러한 이성이 신의 보호아래 세계를 인식하고 변혁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역사의 경험에서 깡그리 실패로 귀결되었고 결과적으로 니힐리즘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니체의 영겁회귀-권력에의 의지-운명애는 이러한 니힐리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자신의 선택과 운명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법’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여 그의 저서 <권력에의 의지>는 부제로 ‘모든 가치의 전환을 위한 실험’이라 명명되었고 그러한 실험은 인간 삶의 곳곳에서 부단히 투쟁을 양산시키고 있다. 가치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그 가치를 지키려는 측과 변혁시키려는 측의 생사를 건 전쟁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 박정희의 과거, 노무현의 현재 그리고 대한민국 박정희는 베트남 파병을 했고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을 했다. 박정희는 지지자들이 결사반대하던 중화학 공업 육성책을 내놓았고, 노무현은 진보진영의 극렬반대에 눈한번 안주고 한미 FTA를 밀어붙였다. 박정희는 영남의 고정적이고도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노무현 역시 영남의 지지를 위해 대연정을 제안했다. 박정희는 유신을 했고, 노무현은 개헌을 시도했다. 이쯤 되면 니체의 영겁회귀를 들이밀어 볼 만하다. 군인 박정희에서 민간인 노무현으로 바뀌었을 뿐 겉으로 드러난 정책 구사는 어찌 보면 똑같다. 파병, 무리한 산업구조조정, 특정지역지지, 개헌 등. 그러나 아무도 노무현을 ‘제 2의 박정희 같은 독재자’라 비판하지 않고, 아무도 노 대통령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없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한국 언론이나 국민 인식은 박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정확히 대척점에 놓는다. 박 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결구도에서 안보와 단결을 강조하고, 국가대표 급 기업 육성을 위해 특혜와 몰아주기 경제정책을 구사한 반면, 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상 강행에도 불구하고 공존공영 해야 할 형제국가로, 분배와 성장의 적절한 조화만이 지속발전이 가능한 국가 성장전략임을 설파하고 있는 점에서도 두 지도자의 차이점은 극명하게 부각된다. 이 뿐만 아니다. 역사의 평가가 있겠지만,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이 외화벌이와 미국의 한국 철수에 대한 일종의 애정공세였다면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은 평화유지를 위한 비전투병 파병이라는 명분과 함께 남북미 관계의 안정적 운용이 그 목표였다는 점에서 두 파병 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또한 지지자들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배치되는 산업구조조정 역시 재조명해 볼 수 있다.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우선육성 정책이 농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있던 박정희 정권에게는 중대한 도전이었지만 결국 밀어붙였고, 그 결과로 인한 과실은 한국적 기득권 계층의 완성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소수에 집중되었다. 반면 노 대통령이 한·미FTA를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범진보 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추진한 것은 특정한 계층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산업구조로 기인한 한국 경제발전의 정체를 돌파하는 동시에 비전 2030을 통해 복지의 확충이라는 ‘대외적 경쟁력 확보-대내적 복지확충’이라는 이중의 정책 도구로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추진하는 모양새다. ‘지역구도vs대연정’이나 ‘유신vs개헌’ 역시 위와 같은 맥락으로 살펴볼 수 있다.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특정 지역을 고립시키려는 시도와 특정지역을 포용하려는 시도는 결코 등가로 평가될 수 없다. 자신의 집권을 더욱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시도한 유신개헌과 87년 체제를 끝내고자 시도한 노무현의 개헌이 같은 것이 아니듯 말이다. 결국 두 전·현직 대통령을 비교하려는 이 글의 목적은 ‘모든 가치 전환을 위한 실험’들이 박정희 시대와 노무현 시대에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가이고 그러한 실험들이 결과로서 무엇을 도출할 것인가를 살펴보는데 있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박정희의 이름이 아직도 ‘가장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은 박정희가 만든 조국 근대화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향수처럼 혹은 이념처럼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의 가슴에 남아 꿈틀대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죽었을지언정 박정희의 전략과 정책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남아서다. 그것은 ‘그람시’가 언급한 것처럼 1인 독재라는 더할 나위없는 최상의 진지와, ‘조국근대화’라는 헤게모니의 장악, 그리고 18년 집권이라는 ‘장기전’까지 겸했기에 가능했던 정치적 작품이다. 박정희를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올리는 사람들 중에 김대중-노무현을 지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것이 바로 박정희가 남긴 가장 위대한 정치적 과업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정치지도자는 죽어서 세력을 남기는 것이다. 노무현의 작업은 세력을 남기는 작업이다. 하여 ‘끔찍한 일’이지만 연말 대선에 패배한다손 치더라도 ‘노무현 세력’은 남는다. ‘노무현 세력’은 조·중·동이나 악질적 언론들 혹은 네티즌들이 껌 씹듯 뱉어버리는 ‘1인을 추종하는 종교적 집단’이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는 세력이기에,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려는 노무현의 전략과 정책에 동의하는 세력이기에 훨씬 강력한 세력이 될 것이다. 박정희 세력을 비로소 처음으로 극복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남정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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