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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장진 사단’의 독특한 ‘골통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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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호 ⁄ 2007.10.15 12:59:05

<디-워> 광풍의 여파일지, 추석을 앞두고 찾아온 ‘청룽’을 피하기 위함인지, 사실 그동안 개봉했던 작품들, 그리고 앞으로 개봉할 작품들을 잘 살펴보면 ‘화제작’이 될 만한 영화들을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나마, 학생들이 중간고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10월 3주째부터 화제작들이 집중된 경향이 있습니다. 이명세 연출·강동원 주연의 , 그리고 11월에 개봉할 <식객> 정도가 눈에 띄는 작품들입니다. ■ ‘한국영화 정체’에 대한 소고< /b> 고만고만한 시나리오와 개성 없는 연출로 일관했던 한국영화의 일반적인 고질점들이 이렇게 서서히 여파를 미치는 것 같습니다. <디-워> 논란에서 소위 말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숱한 토론을 했다지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죠. 대중들이 한국영화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디-워>가 한편으로는 대중이 한국영화에 느꼈던 원초적인 불만을 자극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디-워>는 누구 말마따나 ‘엉망진창’이었던 면도 있었고, 심형래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 개연성이 떨어졌지만,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미지 샤워’ 효과 자체가 ‘독특했던’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야 자국 영화에서 자주 보던 것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자국 영화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 판에 ‘평론의 권리’와 ‘평론의 역할을’ 외쳐봐야 대중에게 씨가 안 먹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대중은 왜 한국영화에 분노했을까요? 예, 다양하질 못했거든요. 창의적이질 못했거든요. 창의적이지 못했기에 늘 뒷심이 부족했고, 각기 다른 영화를 봐도 같은 영화를 본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 아까워지죠. 한국영화가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보호’ 속에서 한국영화계는 뭘 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영화는 문화”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기획영화’로 돈을 벌었을 때 그 돈을 재분배하고 다양하게 재투자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다시 ‘기획영화’로 눈을 돌려 ‘반짝 흥행’에 목을 매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모험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상사부일체>가 바로 그 악순환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현장인들은 “늬들이 영화판 돌아가는 원리를 아냐”고 하소연합니다. 때로는 훈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대중’은 그것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해결할 문제이지, 대중이 고민해줄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회사 내부 사정 고민해주면서 물건 구매하는 경우,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경우인가요? 이동통신 시장 보세요.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숱하게 이어짐에도 ‘망 내 통화 할인’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생색내기’하니까 바로 “이동통신 개방해야 한다”는 반응 나옵니다.

이게 시장의 원리입니다. 영화는 문화이기도 하지만, 산업이기도 합니다. 영화인들은 ‘산업’으로서의 영화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상업’을 넘어 ‘산업’을 꿈꿔야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해봅시다. 누가 이런 노력을 보였습니까? 한국영화인들은 대중을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탓하고 싶다면 안목이 짧아 <상사부일체>같은 작품을 원하는 투자자들을 탓해야 하며, 창의력 있는 시나리오를 섣불리 내놓지 못하는 정체된 영화판 그 자체를 탓해야 합니다. 보세요. ‘밴드’라는 소재 가지고 영화 2개가 비슷한 시점에 동시에 개봉하지를 않나. 그나마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의 선전이 반가울 뿐입니다. 영화 <바르게 살자>는 이런 ‘무거운’ 시점에서 개봉이 예정된 영화입니다. 그나마 화제작 가능성이 있는 과 같은 시점에 개봉합니다. ■ <바르게 살자>가 이야기하는 ‘골통’< /b> <바르게 살자>는 10월 18일에 개봉합니다. 그런데 언론시사회가 9월 20일에 이뤄졌으니, 개봉일과의 간격이 좀 긴 편입니다. 대개 개봉 전주에 언론시사회가 열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 이른 시기이긴 합니다. 시사회 날짜와 개봉일의 간격이 너무 길면,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가 일상화 된 시대에는 손해 볼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 <바르게 살자>는 장진 감독이 각본·기획·제작을 맡으면서 연출은 자신의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던 라희찬 감독에게 맡겼습니다. 주연 캐릭터 이름이 왜 ‘동치성’이 아닌지 그게 좀 의문이었습니다만, 영화 내용을 보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정재영이 맡은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은 ‘정도만’, <페이백>의 멜 깁슨이나 <공공의 적>의 ‘강철중(설경구)’ 못지않은 ‘골통’이거든요. ‘골통’이란 무엇인가? 예, 융통성 없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입니다. 대개 조직 사회에서 눈치껏 행동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원리원칙을 지킨다거나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정도만’, 딱이죠. 새로 부임하는 서장의 신호위반, “바쁘니 좀 봐 달라”는 요구에도 기어이 딱지를 붙이고 마는 그런 경찰입니다. 언론시사회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질문했던 것은 “다들 골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손병호가 가장 적극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매력적이다. 역사를 잘 살펴보면 ‘골통’이 역사를 바꾸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내 캐릭터 ‘이승우’도 엄밀히 말하면 골통이다. 그래서 애정이 갔고 연기하는 것이 행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재영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그 이전에 “(원리원칙을 지키며) 살라고 배우지만 살아가면서 변해간다. 사회가 이렇게 만드는 면도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죠. 말수가 적었던 라희찬 감독은 “그냥 좋게 느껴지더라. ‘비켜간 친구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간단히 촌평했고, 제작자 장진은 “사실 우리는 이런 인물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래서 애정이 갔다”고 답변했습니다. <바르게 살자>는 그런 면에서 드라마 <하얀 거탑>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경찰’이라는 조직사회에서, 원리원칙을 지키고자 하다가 좌천당하고 무시당하는 인물. 조직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지 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골통’이 판을 키운다, ‘모의 강도’< /b> <하얀 거탑>은 약삭빠른 야심가 ‘장준혁’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바르게 살자>는 ‘최도영’의 경찰 버전 ‘정도만’을 주인공으로 설정합니다. 새로 부임해 언론의 주목도 받으면서 강도를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모의 강도 훈련’을 발상한 서장 ‘이승우(손병호).’

하지만, ‘강도’ 역을 ‘정도만’에게 맡기면서 일이 꼬여갑니다. ‘정도만’이 너무 철두철미하게 강도짓을 준비하고 훈련과정에서도 실제와 다를 것 없이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실제 상황처럼 돌변해버린 것입니다. <바르게 살자>는 이 과정에서 충돌하는 ‘정도만’과 ‘이승우’의 대결을 그린 영화입니다. 손병호가 “내 캐릭터 ‘이승우’도 ‘골통’이라 애정이 갔다”는 이야기, 여기서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골통이 또 난리 친다”고 핀잔주면서 대충 끝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그였지만, 알 수 없는 승부 근성이 자극한 것인지, 내면의 직업 정신이 발휘된 것인지, 그 역시 끝장을 보려 했기 때문이죠. 장진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이야기 구도입니다. 내용물 자체도 장진의 색채가 많이 묻어납니다. 라희찬 감독이 ‘장진의 조감독’ 출신이었기 때문에 받은 영향도 많았을 것입니다. 부담 없이 지켜보기엔 딱 좋은 영화이며, 장진 특유의 ‘한 박자 늦은 유머’도 쏠쏠한 맛을 보여줍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양하게 등장시켰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한편으로는 아쉽게 작용합니다. 시간상 이들의 매력을 구체화시킬 여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신선했던 설정과는 달리 결말에는 역시나 파격이 없습니다. 장진 색채의 영화는 가끔씩 ‘뒷심 부족’이라는 단점을 노출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으로 라희찬 감독이 감독 인생을 살면서 극복하거나, 아니면 장진 본인의 치열한 노력으로 극복할 수도 있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장진 색채의 영화에서는 ‘파격’이라는 장점까지 치밀하게 견지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어쩌면 장진이 내심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한국의 우디 알렌’이 완벽하게 탄생할지도 모르는 겁니다. 물론, 요즘에는 ‘우디 알렌’도 나이 탓인지 뒷심이 너무 딸린 작품들을 종종 내놓습니다. 설정에서 신선함을 구하려다가 저지를 수 있는 오류죠. ■ ‘파격’의 아쉬움< /b> 글 전반부에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약점을 이야기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장진 사단이 이따금씩 엿보이는 ‘뒷심 부족’, 사실은 한국영화 전반의 문제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장진 사단’에게 걸어보려 하는 것입니다. 장진만큼 재능 있는 이야기꾼 찾기도 사실 쉽지가 않다는 것,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괜히 명작이 아닙니다. ‘뒷심’이 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진과 봉준호, 스타일도 다르고 가는 길도 다르지만 한국영화계에서 자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야기꾼들입니다. 그래서 관심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기대를 걸어보려는 것입니다. ‘장진 사단’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골통의 철학’은 흥미로웠고, 그것을 이야기하려는 ‘수단(모의 강도)’도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뒷심까지 완벽했더라면 훨씬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박형준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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