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선거중립 조항도 손질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정치의 핵심입니다. 선거를 빼고 정치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면서 공무원인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포괄적으로 선거중립 의무를 부여하게 되면 사실상 정치활동을 가로막게 됩니다.” “대통령이 지켜야 할 것은 선거관리의 중립입니다. 자신의 권한을 동원해 공무원이나 행정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선진 민주주의를 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선거관리의 중립성을 해치지 않는 한 선거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표적인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도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만이 아니라 의회선거나 지방선거 때도 지지유세를 벌입니다. 프랑스의 대통령도 총선 때 자유롭게 정당지원 유세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 ‘제헌절에 즈음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선거법을 맞게 고쳐야 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이번 대선에서도 대통령이 지지연설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노 대통령 ‘그놈의 선거법’ 중립? 그런 노 대통령이 대선이 종반전으로 접어들고 있는데도 이를 실행하지 않고 ‘침묵은 금이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아니 여권은 노심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이 대선 게임의 결과를 간파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노 대통령과 모 후보와의 빅딜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대선을 코앞에 두고 노 대통령의 ‘마지막 한 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면 이 후보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다”는 내용이다. 이는 제 2의 노무현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측에서는 지금 노 대통령의 동선이 선거 중립이라고 말한다. 노 대통령측은 한 발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선에서 가장 중립을 지킨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라고 한다. 지난 70년대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80년대 들어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고취됨에 따라 체육관 대통령 뽑기는 사라지고 직선제가 부활됐다. ‘노태우 대통령 민자당 탈당’ ‘김영삼 대통령 신한국당 탈당’ ‘김대중 대통령 민주당 탈당’-이처럼 대선 때마다 대통령의 선거중립을 야권 대선후보들은 줄기차게 밀어붙여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을 무당적으로 내몰아 식물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 2월 노 대통령은 야당이 탈당을 원한 것이 아니라 여당이 탈당을 원하는 초유의 대통령이 됐다. ■노 대통령의 ‘한 방’에 고건·정운찬 추풍낙엽 그 후 노 대통령은 ‘그놈의 선거법’을 외치며 선거법 개정을 부르짖었다.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결정은 지난 6월 8일 원광대 특별강연에서 출발, ‘6·10 민주항쟁 기념사’로 이어졌다.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발언이 계속 이어지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선관위는 전체회의 결정문에서 “6월 8일 원광대 강연과 6·10 민주항쟁 기념사 및 6월 13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특정 정당 및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고,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여권의 대선전략에 대해 언급한 것은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선거법 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별도의 처벌조항이 따로 없으나, 254조의 사전선거운동 금지조항을 위반하면 최대 검찰 고발조치를 취할 수 있고, 유죄 확정시 2년 이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선관위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노 대통령은 즉각 반격에 나서면서 헌법소원을 냈으며, 지금 헌재에서 심사 중에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올 초부터 대선에 직간접으로 개입해왔으며, 대선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려 도중 하차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우선 유력 범여권 후보인 고건 전 총리가 지난 2월에 노 대통령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받고 하차한데 이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노 대통령의 반격으로 대권의 꿈을 접고 교수직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에다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도 노 대통령의 ‘보따리 장사’라는 폭탄을 맞고 흔들리며 경선에서 낙마했다. 노 대통령은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서도 ‘대운하 건설은 제 정신 나간 사람’이라면서 정부 부처를 통해 ‘대운하 비실현성’보고서를 만들도록 지시까지 했다. 지난 8월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이명박 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잦아졌으나, 범여권의 후보경선에서 흥행이 일지 않자 정치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로 흘렀다. ■정동영, 노 vs MB 빅딜설 제기 그 대신 노 대통령은 자기가 공약한 사업에 대해 임기까지 수행한다는 신념으로 전국을 찾아 실행해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대선 때마다 야권이 주장하는 선거중립내각 구성이라는 말은 올 대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노 대통령이란 존재를 뒤로 한 채 각 후보들은 대선 몰이에 나섰다. 특히 야권 후보보다 여권 후보가 오히려 노 대통령을 공격하는 등 노 대통령을 밟고 가기에 분주했다. 여권 후보는 청와대까지 찾아가 BBK 수사에 대해 항의하더니, 드디어 ‘검찰 탄핵소추’라는 레드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이처럼 신당과 정동영 후보가 참여정부의 검찰을 탄핵소추하겠다는 것은 노 대통령의 실정을 탄핵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검찰 직무감찰 및 수사팀 탄핵소추 요구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정 후보 측은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정 후보는 연설에서 “검찰 수사결과에 대해 청와대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라. 노 대통령이 검찰의 국민에 대한 배반을 좌시한다면 역사의 죄를 짓는 일”이라며 원색적 표현까지 써가면서 압박을 가하고 청와대와 이명박 후보간 ‘빅딜설’을 제기했다. <김원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