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우리를 훈훈하게 만든 여섯 남자가 있었다. 매번 “대체 저런 걸 왜 할까?”싶은 일들에 온몸을 던지는 여섯 남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말로 과소포장하고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온몸을 던지며 항상 무모한 도전만을 일삼았다. 그들은 지하철과 100미터 달리기를 겨루었고, 하수구와 물 빼기로 싸웠다. 때론 땅을 파고, 연탄을 나르고, 물벼락과 맞서 싸우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레슬링에 온 몸을 던졌다. 당연히 실패하기를 성공하기보다 더 많이 하고 캐릭터는 망가졌다. 꽃단장하고 예쁘게 나와도 봐줄까 말까한데, 숯칠을 하고 시꺼먼 연탄재를 뒤집어 쓰고 물에 쫄딱 젖은 채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무한도전!!!” 스스로를 낮춰 세계 유일의 3D(Dirty, Dangerous, Difficult) 프로그램, 연예계 막장인 프로그램이라 말하고 ‘웃음의 자해공갈단(웃음을 강요한다는 뜻)’이란 표현도 불사한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했었다.‘무모하다’, ‘억지 웃음을 짜내지 마라’, ‘도저히 못 봐주겠다’, ‘폐지시켜라’ 등등 토요일 저녁 황금 시청률대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자리 시청률에서 고전하던 그들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왜 하냐?’고 묻는 시시한 도전일지라도 그들에겐 목숨보다 더 중요한 듯 열정으로 도전하고, 성공하는 모습보단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잔잔히 다가왔다. 이 여섯 남자 중 절반이 2006년 방송연예대상에서 상을 받았으며 제작상, 인기상, 공로상 등을 휩쓸면서 ‘MBC 예능 프로그램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공의 축포를 터뜨렸다. (대상에 빛나는 유재석, 최우수 연기자상에 박명수, 코미디/시트콤 부문 남자 우수상에 하하가 수상하며 2007년을 화려하게 시작했다. ) 이제 2007년을 마감하는 지금 평균 이하의 여섯 명을 국민적 훈남으로 변화시킨 ‘무한도전’을 되짚어 보자.
■1등따윈 필요없어! 박명수의 재발견 2007년 우리를 신나고 자랑스럽게 해준 1등이 있다면, 세계 피겨 1위에 빛나는 김연아 선수, 그리고 역시 수영 신기록 달성과 함께 헤켈과의 승부에서도 일찍이 승리한 바 있는 박태환 선수 등이 있다. 세계를 무대로 당당히 1등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쥐고 국위선양을 하여 국민들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1등이 아님에도 1등과 진배없는 인기를 구가 하고 있는 여섯 남자가 있다. 그리고 1등을 과감히 멸시하는 1인자 보다 강한 2인자도 있다. 박명수에게 항상 MC의 위치를 놓칠까 위기감을 느끼는 1인자 유재석은 항상 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언제까지 니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가끔은 이런 말도 듣는다. “그만큼 해먹으면 됐지, 얼마나 더 해먹을라구 그러냐?” 사람들은 박명수가 그렇게 내뱉는 순간을 열광한다. 속시원하다는 게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세계 최고의 격투기 선수인 모셔다 놓고도 평균도 못 되는 체력의 여섯 남자는‘무한도전’을 한다. 이겨 보겠다고 덤벼들었다가 졸지에 연하의 ‘형님’이 생기게 되고 코믹하게 상황이 종료된다. 그리고 한국 최고의 섹시 심볼이자 톱 스타인 이효리를 모셔 놓고도 중요한 이효리의 앨범 홍보는 안하고 자신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 바쁘다. 박명수의 비난은 여지없이 여기에도 꽂혔다. “내가 널 죽일 꺼야!” 그렇게 말하고 정말 박명수는 이효리의 멱살을 잡으려고 달려들어 다른 멤버들이 급하게 말리기도 했다. 물론 농담이었고 재미를 위해 과장을 심하게 한 바 없잖아 많은 안티들이 급증했지만, 이효리는 방송 소감을 묻는 유재석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절 막대해 주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에요.” 1인자도 ‘무한도전’에만 오면 자연히 박명수에 의해 뒤로 밀리게 된다. ‘무한도전’에선 1인자는 유재석, 2인자는 박명수, 그 외 티격태격하는 자들만 있을 뿐, 그 외엔 모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 것이다. 처음부터 박명수가, 그리고 그의 호통 개그가 먹힌 것은 아니다. 한때 그의 호통 개그가 시청자들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어서 그도 잠시 방송에서 퇴출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재석이 그를 다시 불러들였고, 다시 나타난 박명수는 호통을 넘어선 비난 개그까지 구사하는 대신, 유재석의 겸손한 진행 옆에서 자신의 개그 스타일의 거친 부분을 깎고 다듬고 방송에 적합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인기도 얻고 인기와 함께 근사한 별명도 여러 개 생겼다. ‘호통 명수’에서 ‘거성 명수’로, ‘악마의 아들’에서 ‘하찮은 형’으로. 최고의 MC 유재석에게 〃너 때문에 내가 못 큰다〃면서 화를 내면서도 늘상 유재석의 눈 밖에 날까 전전긍긍하는 2인자. 자신도 책임지질 못할 개그를 구사하고서도 지적하는 동생들에게 뻔뻔하게 소리친다. “너나 나나 똑같이 (학교)나왔어. 배운게 똑같은데 누굴 가르쳐!!!”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동료에겐 이렇게 외친다. “너도 학력위조했지!”(신정아 스캔들에 빗댄말) 그야말로 거침없이 내뱉는다 싶지만 어디까지나 그가 정말 유재석과 멤버들을 신뢰하고 믿기 때문에, 그들 역시 그를 믿고 그의 다소 폭언(?)에 가까운 무리한 개그 를 웃음으로 만들어 넘겨주게 해준다. 덕분에 TV로 ‘무한도전’을 보는 시청자들도 지난날과는 달리 그의 ‘비난’과 ‘호통’을 하나의 유머로 받아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무한도전’의 인기에 힘입어 출연하는 여자 연예인도 늘었지만, 그래도 박명수의 입담은 줄지 않았다. 김태희, 최지우, 이영애 등등 기라성 같은 톱 스타들이 나와도 박명수는 한결같이 비난을 퍼붓는다. 최지우를 코앞에 두고도, 이영애를 코앞에 두고도 조금만 섭섭한 대접을 받으면 거침없이 내뱉는다. “아이구 씨~ 송혜교나 만나야겠다.” 박명수의 비난 개그 뒤에서는 무수하게 그를 받쳐주는 다섯 멤버의 겸손과 맘 고생이 있어 박명수가 뜬 게 확실하다. ■불가능은 없다. 정말 없다. 연예인이란 인기가 많아지면 자유로워지는 게 보통이다.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힘든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방종한 생활에 빠지기도 쉽다. 지금의 무한도전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인기를 얻고도 초심을 잃지 않고자 힘든 일로 자신들을 내몰았다. 이미 경쟁 프로그램과는 2배 가까운 격차의 시청률로 따돌리고 독주하고 있으며, 매회가 끝나면 인터넷은 ‘무한도전’에 대한 칭찬과 비판이 넘쳐 흐른다. 때때로 근거없는 표절 시비에 시달리고 안 좋은 쪽의 스캔들에도 시달린다. 모두가 인기에 대한 반증인 것이다. 25% 이상을 웃돌기 시작한 시청률만큼(주몽의 50% 시청률과 비교할 정도) 무한도전은 이제 무식하고, 무모하고, 무리한 도전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고 모두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무한도전’은 모두의 우려를 벗어 던졌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패션 쇼에 모델로 도전을 하고, 해외여행인 줄 알고 떠났던 외국에선 무인도에 도착하게 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야생 야자를 따고 바닷가에 나뭇가지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하며, 아무도 초대해 주지 않지만 자신들만의 강변북로 가요제를 특집으로 만들어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중간중간에는 가끔 굵직굵직한 게스트들이 무한도전을 찾아왔다. 편하게 방송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커져갈 무렵 느닷없이 댄스 스포츠 특집이 방송을 탔다.
아무도 모르게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약 80일이라는 짧은 준비기간으로 국내 최정상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2007 수퍼코리아컵 댄스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어떻게 봐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오랜만에 ‘무(모)한 도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물론 경력이 긴 정식 프로 댄스 스포츠 선수와 한 팀이 되어 추기 때문에 못해낼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각종 방송과 라디오, 뮤지컬 등 연예인의 바쁜 스케쥴에 프로 선수와 짝을 이뤄 대회에 나갈 만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전까지 춤을 췄던 사람이라곤 전직 가수인 하하와 자력으로 앨범을 낸 4집 가수 박명수 뿐, 나머지는 모두 ‘평균 이하’의 운동실력이었기에, 그들이 그 짧은 시간에 댄스 스포츠를 배워 대회에 나가는 것을 생각해 보기만해도 무모해 보였다. 거기에 파트너인 여자 프로 댄스 스포츠 선수와 함께 추기 때문에 분명 적당히 했다가는 상대 파트너에게 크나큰 폐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들이 예선을 통과해 본선진출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정말 불가능했다. 모두가 이번 도전이 절대 성공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도전했다. 처음부터 성공할 리 없는 도전에 도전하며 최선의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이 무한도전의 정신이고 뜻이었다. 댄스 스포츠 대회를 위해 정준하는 정열적인 탱고, 정형돈은 빠르고 신나는 퀵 스텝, 박명수는 우아한 스텝의 왈츠로 스탠다드 종목에 도전하고, 전직 가수인 하하는 차차차, 몸치 노홍철은 빠르고 정열적인 룸바, 유재석은 마지막으로 자이브로 라틴 종목에 도전했다. 각각 프로 여성 파트너를 정해 정해진 기간 동안 스케줄 탓에 새벽잠을 줄여가며 대회 전날까지 열심히 준비해 대회에 출전했다.
무려 3주간에 걸쳐 방송된 ‘댄스 스포츠 특집 - Shall we dance?’의 마지막 대회 출전분이 방송된 12월 8일은 무려 시청률 28.5%(TNS미디어코리아 집계 기준)로 무한도전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대체 무엇이 주말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TV 앞에 앉아 있게 만들고, ‘무도폐인(무한도전 폐인)’을 만들고, 어디 하나 크게 우러러볼 곳 없는 평균이하의 여섯 남자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게 하는 것일까? ■성공보단 최선을, 그리고 열정과 노력을 무한도전은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한다’.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될 때까지’ ‘끝까지’ 한다. ‘무한도전’은 이렇게 우리에게 쉽고 빠른 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식으로 말을 건네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쉽고 편해졌다고 해도 변치 않은 게 있다면 바로 최선의 노력이다. 그리고 노력을 하게 만드는 열정이다. 좋은 세상이 왔다 해도 장애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살아가는 방법이 쉬워졌다 해도 삶 자체가 쉬워지진 않은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현실 도피를 꿈꾸면서 현실의 중압감에 시달리며 회사를 다니고, 학교를 다니고, 가정을 지키고 있다. 이제까지 TV 프로그램들은 아름다운 세상, 잘 사는 사람들을 줄기차게 보여주며 우리도 힘 내서 살면 언젠가는 저들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고만 얘기했지, 어떻게 저들처럼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무한도전’은 바로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어디 다쳤다고 할까?’ 대회 출전이 코앞에 닥쳐 딱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순간, 그렇게 솔직하게 진심을 내뱉는 순간,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아, 연예인도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 보통 인간이구나.’하는 동질감을 느끼고 진심으로 그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에 닥친 문제를 곧 나의 장애물로 인식하는 순간 여섯 남자들 속에 자신을 대입시키게 되고, 그들의 성공을 바라면서 자신에게 닥친 고민과 장애물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감하고 동정하고 응원한다.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해낸다면 나도 어쩌면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한다 물론 말만 그렇게 했을 뿐,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은 ‘시청자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전하기 위해 대회장으로 당당히 들어섰다. 도망갈 수 있지만 도망가지 않고 당면한 문제와 맞서는 일,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얼마만큼 했을까? 댄스 스포츠 대회가 끝날 무렵 즈음하여 대회장에서 대기실로 돌아온 멤버들이 하나씩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쉬움의 눈물이자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인기의 상승과 더불어 안 좋은 일이 많았던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 사이엔 여느 방송과는 다른 끈끈한 정(혹은 유대감)이 쌓여 있기에 첫 타자인 정준하의 눈물이 흐르는 동시에 모두의 목이 메였다. 모두가 노력한 것보다 아쉬운 결과에 대한 서운함과 후회, 그리고 파트너 프로 선수를 향한 미안함이 쌓이고 쌓였던 그간의 모든 고충과 함께 흘러나온 것이다. 최선은 다했지만, 단 한 명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예상된 결과에도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한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에게 웃음과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전달해 준다. 성공이 다가 아니라는 메시지와 함께,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분명 언젠가 해낼 수 있다고 반복해서 피력하는 것이다. 우린 여전히 달릴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아마도) 그렇게 믿고, 2008년 새해도 열정과 끈기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무한도전’을 참고해서 웃고 즐기며 또 배우면서 살아갈 것이다. <김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