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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歌手死有歌’…

죽어서도 살아있는 가수들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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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호 ⁄ 2008.02.11 18:47:19

방송 3사에서는 매주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가창력 최고’, ‘뛰어난 마스크’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신인가수(이하 신인)를 시청자에게 선보인다. 그러나 이들 중 ‘스타’로 발돋움하는 가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신인이 대중들에게 ‘노래’를 알리려면, 우선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굴’부터 알려야 한다. ‘얼굴’ 알리기에 실패한 신인가수들은 매년 가라앉아 묻히는 수많은 이름 없는, 잊혀진 가수들 속에 같이 묻히고 만다. 자신이 만든 곡을 한번만 들어달라며 레코드사를 전전하던 풍경은 이제 복고영화 속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지금은 가수가 소속된 소속사나 뮤지션이 귀찮은 일을 대신한다. 그래서 ‘스타’가 되려면 유명한 소속사·뮤지션을 만나야 한다는 설도 있다.

■ ‘만능 엔터테이너’ 요구하는 사회가 노래를 죽인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알린 가수들은 비로소 본업인 ‘노래’ 알리기에 뛰어든다(?). 아니, 실제론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기만 하면, ‘노래’ 알리는 일은 직접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검색’과 ‘스크랩’에 능숙한 네티즌들이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이후 ‘얼굴’도 ‘노래’로도 이미 충분히 유명인사가 된 가수들은 이젠 드라마와 영화 등 연기에 과감히 도전한다. 더러는 호평을, 더러는 혹평을 받을 수도 있으나, 그들에겐 사람들의 평가 따위는 상관없다. 양쪽 모두에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는 앞으로 계속 따라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능 엔터테이너’란 말에 ‘팔방미인’이란 고사성어를 비유하고 싶다. ‘팔방미인’은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일에 정통하지 못하고 온갖 일에 조금씩 손대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만능 엔터테이너’는 어쩌면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그릇된 상(像)일지도 모른다. ‘일당백’을 요구하는 사회에 부응하기 위해 ‘얼굴이면 얼굴,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등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가수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에만 몰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하고 나면, 그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부와 명예뿐이다. 나중에는 본인의 직업이 뭔지도 헷갈린다. 가수로서 대중을 감동시키는 ‘노래’ 하나 없다는 현실은 정말 치욕스런 일이다. ■ 죽어서도 ‘노래’로 대중과 공감하는 가수들 얼마 전 서울의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가수 김광석의 사망 12주기를 기리는 김광석의 노래비 제막식과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그는 지난 96년에 서른둘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으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대중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왜 김광석의 노래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는 대중가요나 민중가요이기 이전에 시대가 녹아 있고 삶이 녹아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또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넘은 가수 유재하가 남긴 앨범은 겨우 한 장뿐이었다.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이들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그가 남긴 노래에 그의 영혼과 추억을 담는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자신의 칼럼에서 “천재의 삶은 불행하다고 했던가. 그는 살아생전 천재에 걸맞은 영예를 조금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유일한 유작이 된 앨범을 발표했을 때 많은 방송 관계자들은 ‘가수의 노래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유재하가 죽은 후 그의 앨범을 들은 후배 음악 지망생들은 일제히 자신도 ‘유재하와 같은 음악’을 하기를 꿈꾸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음악 웹진 이즘의 필자 조이슬은 “유재하가 대중음악에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김형석은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단연 유재하를 꼽으며 자신을 대중음악으로 방향 잡게 한 인물이라고 말한 바 있고, ‘푸른 하늘’ 시절 ‘슬픈 안녕’으로 그에게 바치는 곡을 쓴 유영석, 역시 같은 이유로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를 써냈던 김광진도 모두 그들만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내지만 그 서정성은 온전히 유재하에게 기반을 둔 것이었다”며, 또한 “발라드와 친할 것 같지 않은 디제이 디오씨(DJ DOC)마저 ‘사랑하기 때문에’의 리메이크로 고인에 대한 애정을 품어왔으니 유재하의 음악이란 장르와 시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어떤 트렌드라도 돌파하여 대중과 접속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갈파했다. 조규찬, 유희열, 이승환 등 많은 음악계 인재들도 모두 ‘유재하 가요제’ 출신이다. 김광석, 유재하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망한 후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과 공감한다는 점이다. 대중이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의 외모도, 그들의 장기도 아닌 그들의 ‘음악’이었다. ■ 죽어서도 돈 버는 팝 가수들 ‘록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2003년에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1년간 집계한 '사망한 유명인사 소득순위' 통계 조사에 의하면,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무려 4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당당히 1위에 올라 3년 연속 이 부문 톱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엘비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착은 절대적이라며 “엘비스가 살았던 그레이스랜드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참배객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으며, 해마다 엘비스를 닮은 인물 선발대회가 성대하게 열린다”고 설명하면서, 오늘날의 록을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대중음악’으로 만든 인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금세기 대중문화사에서 엘비스만큼 찬란한 위용의 깃대를 꽂은 인물은 없다고 평가했다. 팝 칼럼니스트 조정아의 저서인 ‘팝 음악의 결정적 순간들’에 의하면, 마이클 잭슨은 ‘로큰롤의 황제(King of Rock’n Roll)’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흠모해 스스로를 ‘팝의 황제(King of Pop)'라 칭하기 시작했으며,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한 비밀스런 뒷거래 이벤트라는 오명과 함께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나, 엘비스가 세상에서 가장 애지중지했고 그의 생김새를 꼭 빼닮은 외동딸 리사 마리(Lisa Marie)와 결혼까지 강행하며 엘비스의 일원이 되기를 꿈꿨다고 한다. ‘Love Me Tender’, ‘Jailhouse Rock’ 등 그의 주옥 같은 노래는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세계에서 리메이크되어 왔으며, 그의 독특한 마스크와 패션도 ‘엘비스풍’ 코디로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비틀즈를 이끈 존 레논 1960년대 내내 대중음악과 청년문화를 주도하면서 시대를 대변한 비틀즈(Beatles)는 1970년에 해산됐다. 비틀즈의 리더인 존 레논(John Lennon)이 1980년 괴한의 흉탄에 피살되면서 그의 음악인생과 비틀즈의 역사는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그는 ‘Imagine’, ‘Love’, ‘Oh My Love’ 등의 아름다운 팝송을 남긴 가수로 남아 사후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존 레논에 관한 칼럼을 통해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서방의 순종파 가수들’과 달리 현실 개혁과 직접 투쟁으로 일생을 숨가쁘게 달려간 존 레논은 여전히 많은 가수들에게 ‘노래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서 있다. 섹스 피스톨즈의 쟈니 로튼, 퀸의 브라이언 메이, ELO의 제프 린, 유투 그리고 조지 마이클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스타들이 그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고인이 된 존 레논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2003년 11월 18일 뉴욕의 크리스티즈 경매에서 비틀스의 존 레논이 직접 쓴 ‘Nowhere man’의 가사가 기대 이상의 고가인 26만7,000달러에 낙찰되었다. 또한 그 해 초에는 1974년에 레논의 일대기를 담아낸 필름이 뉴욕에서 3만3,000달러에 팔린 바 있다. <이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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