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토크 쇼를 표방하고 있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첫 출연부터 시종일관 교태스런 몸짓과 말투가 성 상품화 논란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KBS 시청자위원회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의 지적을 받고 출연 보류를 당하기도 한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자밀라가 지난 25일 ‘미수다’ 제작진의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모바일 섹시 화보 제작 발표회를 갖고 본격적인 연예활동을 암시했다. 이에 대하여 제작진은 자밀라가 찍은 화보의 성격과 수위에 따라 자밀라의 출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애매한 답변만 내놓고 있다. 이어, 지난 22일 케이블 채널 ‘tvN E-news’의 ‘신상정보 유출사건’ 코너에서 ‘미수다’ 출연자 A양, 섹시바 출신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방송을 내보내 네티즌들 사이에서 A양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미수다’의 기획의도는 애초에는 이랬다. ‘국내에 거주하며 우리나라를 몸소 체험한 외국인 여성 16명이 출연해 그들의 눈을 통해 본 한국의 문화, 한국인들의 현주소 등을 재치있는 앙케트와 토크를 통해 풀어본다’는 것. ‘미수다’의 초창기였던 2006년 말만 해도 애초의 기획의도를 잘 살려 외국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떤 부분은 공감하고, 어떤 부분은 반성하고, 외국인들은 우리말로 표현을 잘 못할 뿐 우리와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다는 유익한 정보를 제공했다.
한 시청자는 “외국인이 말을 걸 때마다 사실 피하곤 했다. 영어도 잘 안되는데 망신당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수다’의 도미니크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니깐, 제발 무리해서 영어하지 말고 한국어로 말해 달라. 그래야 한국어가 는다고 말해 놀랐다. 이 방송을 보고부터는 외국인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미수다’는 연예계로 직행하는 계단? 이랬던 ‘미수다’가 외국인들의 연예계 진출과 성공의 등용문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외국인은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CF와 드라마 등 활동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가며 연예계로 본격적인 진출을 꾀하고 있다. 또 토크를 시작할 때마다 “사오리는요”라며 귀여운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은 일본인 ‘사오리’는 현재 가수 데뷔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한 논평에서 ‘미수다’가 ‘외모’ 위주로 외국인 여성 패널을 섭외하는데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특히 논란의 핵심 인물이었던 자밀라에 대해 “한국어 수준이 현격히 떨어지는 자밀라가 출연해 ‘외모’와 ‘섹시함’을 내세워 사회자인 남희석과 남성 패널들을 현혹시키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외모보다는 토크의 기본적인 능력과 자질을 중심으로 섭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며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공영방송 KBS, ‘딴따라 방송’으로 전락하려나 지난 1월 14일 방송된 ‘미수다’는 15.5%(TNS미디어코리아 집계)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해 경쟁 프로그램인 ‘지피지기’와 ‘야심만만’을 큰 차로 따돌려 월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 최강자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미수다’가 K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 있다는 증거다. 제작진측은 ‘자밀라의 출연 여부’에 관한 논란에서도 “당분간 출연은 보류지만, 자밀라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미수다’ 내용 진행상 오히려 흐름을 끊는 언행을 자주 일삼는 자밀라를 제작진은 시청률 유지와 팬 관리를 위한 안전장치로 아껴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사고 있다. 지난날 공영방송인 KBS는 타방송사에서 ‘채널 고정’과 ‘시청률 올리기’를 위해 아무리 선정적인 내용과 고(高)퀄리티, 어마어마한 제작비로 무장했어도 꿋꿋이 그들만의 개성으로 소신을 지켜왔다. 비록 적은 제작비와 다소 무거워 보이는 소재로 제작한 소위 ‘때깔 안 나는’ 프로그램 일색이었지만, KBS는 타방송과의 차별성을 무기로 진정한 서민방송으로서 국민들에게 정직한 감동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왔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선정적인 타방송의 프로그램에 지칠 때마다 KBS로 돌아와 KBS만이 주는 정서로 메마른 목을 적시곤 했다. 그러나 KBS는 얼마 전에 ‘섹시바 종업원’ 출신의 검증받지 않은 외국인까지 간판 프로그램에 버젓이 출연시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등 저급한 방송행태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잦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이어, 속옷 패션으로 무대에서 엉덩이를 흔드는 등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의 배출도 KBS가 선두여서 공영방송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KBS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명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프렌치 키스’ 등으로 90년대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했던 귀여운 여인의 대명사인 미국 배우 맥라이언이 한국에서 샴푸 광고 촬영을 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그는 미국의 한 토크 쇼에서 한국 광고에 출연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내가 단어 몇 마디 했더니 거액을 챙겨주더라. 정말 황당한 나라다”라고 말해 국내 팬들에게 비난을 산 적이 있다. 미국보다 못 사는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남을 쉬이 깔보는 그녀의 개인적인 성격 탓’이라고 흘려들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을 좀 더 넓게 생각해 보면,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상은 사회의 단편적인 부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수다’의 미녀들을 단순히 흥밋거리 외국인으로만 여기는 시각은 위험하다. 그들은 한국의 문화를 각자의 나라에 전파하는 ‘문화 사절단’으로 볼 수 있다. ‘미수다’ 제작진은 ‘미수다’를 높은 시청률 올려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기에 앞서, 우리 문화를 세계에 바르게 알린다는 고고한 사명감을 갖고 애초의 의도대로 미녀들이 그들의 시각을 통해 전해주는 한국의 문화를 시청자로 하여금 돌아보게 하고, 그들의 나라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자세를 갖도록 해야 한다. 또한, 순수하게 한국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섭외해 그들이 느끼는 한국 문화의 장단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 문화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돈벌이’를 목적으로 출연한 외국인들은 ‘미수다’를 단순한 성공의 발판으로만 삼을 우려가 있다. 그들이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자국으로 돌아가면 한국 문화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전파할 우려가 강하다. 여과 없이 미녀들을 섭외한다면 ‘미녀들의 수다’는 그야말로 미녀들이 출연해 ‘수다’만 늘어놓고 마는 잡담 장소로 전락할 것이다. KBS 또한 공영방송의 사명감을 갖고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방송으로서 좀 더 공정하고 알찬 프로그램 제작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우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