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 영화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가 지난 1월 말부터 서울·경인 지역의 심야영화 관람료를 6,000원에서 7,000원으로 기습 인상했다. 오후 11시 이후 시간대를 지칭하는 심야시간대의 관객 수는 전체 관객의 5% 미만밖에 안 되지만, 이번 인상은 사전 공지 없이 이뤄져 논란이 됐다. 이번 ‘심야영화 관람료 인상’은 그 동안 영화 단체들이 극장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일이라 “일반시간대 요금을 올리기 위한 사전 움직임이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한편, 제작사와 상영관, 배급사측이 모두 요금인상을 바라고 있으며 5년 동안 요금이 제자리였다는 명분도 크게 작용해 인상 쪽으로 가닥이 잡혀갈 듯 보인다. 이에 대해 관객들은 “물가지수는 상승했지만, 소비자들의 수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갑자기 1,000원이나 올리는 건 가계에 부담이 된다”며, “오히려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는 사람만 증가하지 않을까”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최근 영화인회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7개 단체들이 성명서를 통해 지난해 내내 논란이 됐던 영화 관람료 인상 문제를 공론화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요금으로는 도저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영화인-굶어 죽기 일보 직전, 도와달라 한 영화 관계자는 “지난해 극장에 간판을 내걸은 한국 영화는 무려 110여 편이나 되며, 20여 편이 몇 년째 빛을 못 본 채 창고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겨우 10편뿐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여성 영화인 모임에서 영화인회 이사장 이춘연 씨가 영화인들 앞에서 비공식적으로 “극장요금을 1만원으로 올릴 생각이다”라고 한 발언이 이슈로 떠올라 네티즌들의 강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영화인들은 성명서에서 불법 복제와 불법 다운로드 등의 불법 유통 근절과 관람요금의 현실적인 책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극장 관람객 수는 30%나 감소한 상태이다. 또 현재의 한국 영화산업 구조는 80% 이상이 극장수입에만 의존하는 불균형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횡행하는 불법 다운로드를 통한 무분별한 영화 유포로 부가판권시장을 죽이고, 이러한 현상은 극장수입 확대를 위한 마케팅 비용의 증가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성명서에 따르면, 현재 극장매출이 다시 영화제작 자금으로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한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현재의 관람요금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인들은 “7,000원으로 책정된 극장요금은 7년 전에 정해진 가격”이라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1.4% 증가(연평균 2.3%)한데 비해 영화관람 요금은 같은 기간 동안 3.9% 밖에 인상(연평균 0.8%)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다양한 할인을 감안한 2006년 한국의 영화 관람료는 평균 6.5달러(약 6100원)로 일본 11.26달러, 영국 8.45달러, 미국 6.6달러 등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조사 대상 44개국 가운데 22위라고 밝혔다. 한 영화감독은 국내 영화 관람료는 외국의 요금과 비교하면 많이 싼 편이라며, “가장 영화 관람료가 비싼 노르웨이(2만2,000원)는 제쳐두고라도 스위스·덴마크·일본·스웨덴·핀란드·아일랜드·미국·대만 등 15개국이 평균 1만원 이상의 영화 관람료를 받고 있고, 캐나다·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도 9,000원대에서 영화 관람료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필리핀처럼 영화 관람료가 500원인 곳도 있지만, 국내 경제가 10위권 안팎으로 진입한 것이 오래 전임을 상기한다면 우리나라의 영화 관람료는 싼 편이라고 말하면서, 요즘 공연문화가 발달하여 일반 대중이 뮤지컬이나 오페라·퍼포먼스 등에 최소 십수만원의 관람료를 내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영화 관람료가 1만원이라도 결코 비싸지는 않다”고 그는 주장했다. ■관객 - 지금도 비싸, 올리면 안 보면 그뿐 ‘영화 관람료’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돈을 내고 보는 당사자인 관객은 영화업계가 어떤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당연히 비싸면 싫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심야영화 관람료 인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열 명 중 한 명 꼴로 극히 드물었다. 일부러 영화 관람료가 싼 조조시간대 영화를 이용한다는 대학생 최영훈 씨(가명, 23세)는 “혹시 심야영화 인상이 조조영화 요금의 인상으로도 확대되는 거 아닌가”하며 우려를 표했다. 또한, ‘영화계의 이익구조 개선을 위한 인상’이라고 주장하는 국내 영화계에 반감을 드러내며 “영화의 질적 수준 향상이 우선 아니냐”면서 그렇다면 재미없는 영화까지도 관객이 책임을 져야 하는 셈인데, “재밌는 영화는 제작비를 떠나 수익을 내지 않는가”라며 목청을 높였다. 10대 후반 고등학생인 윤혜경 양은 “내 용돈으론 지금의 관람료도 부담스럽다”며, “카드 할인도 많이 줄인 상태인데, 거기다 또 1,000원이나 인상하다니…. 불법 다운로드만 더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국내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일단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겨야 한다며, 비싸지면 그나마 오던 관객의 발길도 뚝 끊길 것 같다고 걱정했다. 프리랜서인 박미영 씨(가명, 34세)는 국내 영화가 외국 영화보다 뛰어나 즐겨 본다며, 국내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문화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관람료는 비싼 것 같다”며, 관람료 인상에 대해서는 “영화관의 제반 시설에 대한 변화가 전혀 없다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대 중반 직장인 윤소영 씨는 “주말에는 수요가 많아 올려 받는 일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심야관람은 수요가 적을 텐데 어째서 요금을 올리는지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20대 초반 대학생 이민영 씨는 “영화 제작비의 손실을 왜 관객들에게 물리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스타들의 과도한 몸값과 엄청난 홍보비가 문제라고 본다”면서 이런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영관-관객 잃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영화 관람료 인상의 칼을 쥐고 있는 상영관측의 한 관계자는 “아직 일반시간대 요금인상은 계획에 없다”며, “심야 할인 제도는 영화 극장료 할인 경쟁이 심할 때 시행된 것”이라면서 “원래의 금액으로 환원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국내 영화 관람료에 관한 부분은 극장의 자율적인 권한이다. 상영관측도 영화 관련 단체들의 입장은 충분히 공감하고 여러 번 검토한 사안이지만, 가장 크게 우려되는 일은 “요금인상은 곧바로 전체 극장 관객 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예민하게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솔직한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실제 관객과 접점에 직접 서는 입장’인 상영관측은 “요금인상을 우려하는 관객의 반발도 있어, 이에 대한 대처방안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했다. 게다가 그들은 “가뜩이나 관객이 줄어 힘든데 관람료까지 올리면 수익이 더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전에 10명이었던 관객이 그대로 10명으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우리는 관람료 수익 외에 부대사업 수익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7월 영화발전기금(3%) 징수가 시작되면서 정부가 “극장요금 인상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어, 이래저래 상영관측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이우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