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 TV의 대하 드라마 ‘이산’(이병훈·김근홍 연출)의 주연 탤런트 이서진이 조·단역 임금 현실화 및 스태프 포상휴가를 드라마 연장조건으로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이 같은 조건은 지난 2006년에 ‘주몽’의 송일국도 똑같이 언급한 바 있다. 당시 MBC 측도 송일국의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했으나, 2년여가 지난 지금 또 이 같은 일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는 그때와 비교해 아직까지도 조 · 단역과 스태프들의 처우에 별다른 개선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이번 기회에 ‘조·단역과 스태프들의 처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새로 취임한 탤런트 유인촌은 27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 극단 ‘유시어터’와 관련해 통합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에게 질타를 받았다. 우상호 의원은 “유인촌 내정자가 대표로 있는 극단 유시어터 전체 직원 69명 중 1명만 정식 직원이고 나머지 직원들은 4대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며, “유시어터의 경우 월급은 한 사람만 받고 나머지는 4대보험도 적용받지 못했다. 140억 원대 자산가 치고는 직원들에게 너무 못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한, 유인촌은 140억 원의 재산에 대해 “내가 배우생활 35년을 했는데, 그 정도 벌 수 있는 것 아니냐. 배용준을 한번 봐라”라고 해명하다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톱 스타 연예인 출연료’ 문제에 대하여 연예계에 새로운 국면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탤런트 송윤아·김혜수처럼 자신의 출연료를 스스로 깎거나, 슈퍼 모델 출신 탤런트 한지혜처럼 출연료와 관련한 인터뷰를 갖고 시청자에게 좋은 이미지 굳히기를 시도하는 스타들도 잇달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처럼 연예인들이 알아서 출연료를 낮추는 일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또 한시적인 현상일 뿐, 가려운 부스럼을 한두 개 떼어낸 정도에 불과하다. 2007년 4월 18일 ‘2007 영화산업 단체협약 조인식’이 성사되어, 한국의 영화현장 스태프들은 4대보험 가입, 최저임금, 주 40시간제, 모성보호 등 법적 기준을 보장받게 되었다. 또 노사 양측은 영화제작업의 특성을 감안하여, 월 2회 급여지급에도 동의했다. 직급에 따른 스태프 임금안도 타결되어, 촬영·조명부의 최저임금안은 시간당 퍼스트가 1만1,000원, 세컨드 7,000원, 서드 5,000원, 포드 3,720원, 수습 3,480원이다. 기술 스태프에 비해 오랜 기간 한 작품에 매달려야 하는 연출·제작부의 경우는 시간당 퍼스트 8,600원, 세컨드 6,300원, 서드 4,200원, 수습 3,480원, 그리고 스크립터는 세컨드와 서드 사이에 적용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2006년 6월 27일 전국영화산업노조와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사이에 단체교섭이 시작된 이래 무려 10개 월여 만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예술인, 원래 배고픈 직업? 하지만, 현실적으로 위의 조건들은 지켜지기 힘들다. 조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 씨에 의하면,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하루 15시간은 일하는 것 같다. 한 번 촬영에 들어가면 하루 20~30시간을 일할 때도 있다”고 고단함을 토로하면서, 임금에 대해서는 “영화제작사에서 법적으로 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에 의하면, 경력 6년이 넘는 퍼스트에 속하는 나는 시간당 1만1,000원의 임금을 받고, 하루 10시간을 계산해 한 달을 꼬박 일해도 300만 원이다. 하지만, 영화 업무가 지속성이 없어 영화를 쉴 때는 벌이가 없으니, 결코 많다고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현재 영화 일이 없기 때문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CF와 뮤직 비디오 등의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일은 한 회 출연당 ‘천만·억’ 소리를 내는 출연료를 받는 스타급 배우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배우들에게 해당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대 연기(연극·뮤지컬 등)와 조·단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배우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
4년제 명문 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K 씨는 현재 오페라와 뮤지컬에서 앙상블로 연기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앙상블이기 때문에 지난 6개월 동안 수중에 들어온 돈은 200만 원이 전부. 월로 계산하면 약 33만 원의 월급을 받은 셈이다. 지금은 이마저도 일이 없어서 쉬고 있는 중이다. 현재 그는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노래를 가르치며 자기 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K 씨에 의하면, 오히려 지금이 수입은 더 풍요롭다. “극단에 들어가면 극단 측에서 최저임금을 보장해 주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극단에 들어가면 오히려 안 좋은 경우가 더 많다”며, “최저임금이라고 해 봤자 월 70만 원 받을까 말까이며, 노예계약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내 시간이 없고 원하는 오디션도 볼 자유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보조 출연자와 단역배우 등을 소개해 주는 한 매니지먼트의 사장은 “개그맨 정만호도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노력이 결실을 맺어 성공했고, 현재 가수 준비에 한창”이라며, “보조 출연자와 단역배우들은 다들 정만호처럼 나름대로 연기자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대변했다. 최근 영화 ‘더 게임’으로 60세가 넘은 나이에 첫 주연을 맡은 배우 ‘변희봉’도 연기인생 40여 년의 대부분을 주인공을 보조하는 ‘주변인’으로 보냈다. 그 또한 범인·도굴꾼·사이비 교주 등 악역을 도맡아 하면서 마음의 상처도 많이 입었다.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몇 차례나 연기자의 일을 포기하려 했던 그이지만, 그는 끝까지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백발이 무성한 연기자도 스타로 뜰 수 있다는 성공 사례의 주인공이 되었다. ■빈곤의 악순환,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조·단역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루 일해서 버는 돈은 기본·야간·철야 시간대를 다 합쳐 봤자 10~20만 원 사이다. 연기생활 30년이 훌쩍 넘은 50대 단역배우 B씨는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방송국에서 책정한 출연료는 1등급에서 18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1~5등급은 아역배우, 6~18등급은 성인배우에 해당하는데, 높은 수의 등급일수록 출연료가 높다), 하나의 작품을 놓고 볼 때, 주인공은 몇 억씩 주고,단역은 몇 십만원을 주는 등 출연료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이는 고질적인 문제”라면서, “그래도 그나마 할 일이 있다는 건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는 배우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지난해 9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가 톱 스타 연기자의 드라마 한 회(60분 기준) 출연료 상한선을 1,500만 원으로 제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제작비의 절반 이상이 스타들의 거액 출연료로 나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줄어든 제작비 안에서 제작을 해야 하는 제작사측은 조·단역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처우 쪽에는 저절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보조 출연자와 단역 배우들을 제공해 주는 에이전시(매니지먼트)들의 경쟁과도 관련이 있다. 에이전시들은 제작사 측으로부터 일을 따 내기 위해, ‘다른 업체보다 더 싸게’ 배우들을 제공한다. 연기 일에 꿈을 바치고 있는 무명배우들은 출연료가 싸더라도 이 또한 ‘기회’로 여겨, 푼돈을 받고 연기에 임한다. B씨는 “사실 그런 대우 받고 하지 말아야 하는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배우들은 푼돈이라도 감지덕지로 생각하고 나간다”면서, 단역배우의 애환을 털어놨다. 또한, 25개 드라마 제작사로 구성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제작환경 악화 요인으로 천정부지로 솟을 줄만 아는 스타들의 출연료 문제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3사의 ‘착취문제’도 제기했다. 드라마 제작사들은 지난 2월 13일 지상파 방송 3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그간 지상파 방송사가 제작사들로부터 드라마를 납품 받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에 따른 일이다. 사단법인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신현택 회장은 신고 하루 전인 지난 2월 12일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드라마의 저작권 귀속은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창작에 대한 기여도와 투자비율, 계약조건 등을 고려해 정해야 한다는 것이 각종 연구보고서의 결과이면서 저작권법의 일반원칙임에도 불구하고 MBC·SBS·KBS의 지상파 3사는 원칙을 무시하고 드라마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괄적으로 양도받는 계약 관행을 고집해 왔다”고 신고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제작비가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작권까지 방송사가 가져가 제작사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제작사들이 드라마를 기획·창작하고도 1회 방송 후 소멸되는 ‘운명적’ 또는 ‘태생적’ 저작권만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제작사들에 주어지는 ‘아시아 지역 판매권한’은 3년 만기의 40% 분배율을 갖는 제한된 것인데다 3년이 지나면 지상파 방송사에 권리로 되돌아가며, 20%의 고정된 판매대행 수수료는 지상파 방송 계열사를 위한 것이 된다”고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제작사 측은 지상파 방송사의 ‘방영권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는 소위 방송사 측이 잘 나가는 드라마를 판단하는 기준인 스타급 주연을 캐스팅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하고, ‘하늘의 별 따기’ 격인 스타 캐스팅을 위해 고액의 개런티를 제작비에서 지출해야 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절반 이상 줄어든 제작비에서 조·단역 배우와 스태프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더욱 줄어든다. 일부 제작사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돌입하기도 해,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위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잘못된 단추 제대로 끼우려면… 가까운 나라 일본의 사례를 들어보자. 일본의 경우, 연예인의 개런티는 합리적인 근거와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산정된다. 연예인의 인기를 비롯해, 연예인에 대한 프로덕션협회와 방송사 기준의 출연료 등급, 제작주체, 프로그램 예산규모, 시간대 등 세밀한 기준에 의해 배우의 드라마 출연료가 결정된다. 지난해 TBS가 후지TV를 견제하기 위해 제작한 드라마 ‘화려한 일족’에서 주인공 기무라 타쿠야에게 회당 600만 엔(약 5,600만 원)의 특A급 출연료를 지급해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일본 최고 스타인 그의 출연료는 회당 350만 엔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00만 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일본의 톱스타가 받는 출연료는 최고 350만 엔으로 보고 있다. 이는 국내의 두세 배 이상인 일본의 물가와 시장 규모를 고려해 볼 때, 국내 일반 주연급 배우의 드라마 한 회당 출연료가 5,000만 원선을 달리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쥐꼬리’ 만한 수준이다. 드라마제작사협회의 한 관계자에 의하면, 국내 배우들의 출연료에는 합당한 근거가 없다. 그는 “흥행 성적이나 비중에 관계없이 한 번 오른 스타의 몸값은 내려갈 줄 모른다”며, “스타의 출연료에 대한 합리적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16일 한국방송학회가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주최한 ‘지상파 방송의 제작 역량 강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한 유승관 동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을 확립하고 급격한 제작비 상승을 막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처럼 신뢰성 있고 종합적인 조사에 근거한 출연료 산정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주연급 연예인이 고액 출연료를 요구할 때는 객관적 기준에 의한 출연료 산정과 더불어 시청률의 증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방송사와 제작사 측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미국의 시스템을 본받아야 한다. 미국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t High Return) 방식은 송출을 담당하는 방송사보다 컨텐츠를 제작하는 제작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으로, 방송사는 1차 방영권을 사는데 그치며, 드라마에 대한 저작권은 제작사 몫이다. DVD·비디오 등 2차 판권과 해외 수출 등은 모두 제작사가 소유한다. 따라서, 한 편의 드라마가 성공하면, 제작사는 돈방석에 앉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제작사는 방송사로부터 편성을 받기 위해 참신한 소재와 이야기로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편성 경쟁을 뚫고 성공해도,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이들에게 다음은 없다. 방송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제작사들은 이렇듯 험난한 전장에서 싸워야 하지만, 이러한 선진 시스템으로 인해 미국의 시청자들은 수준 높은 드라마를 볼 수 있다.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스타의 출연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반드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스타 캐스팅’에만 의존하는 국내 드라마 시스템(?)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무엇보다 연기세계의 주역이 되지 못한 사람들(조·단역 배우, 보조 출연자, 현장 스태프 등)이 가장 바라는 점은 ‘안정적인 생활보장’이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영화와 음악 등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스펙터클’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생활은 법적으로도 보장받는다. 스펙터클에게는 준비기간 동안 1년에 3개월 이상 일할 경우 9개월은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오는 식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