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경기도 광명시의 어느 교회 앞에서 8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광목 천을 이용한 자살이었다. 한밤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 노인은 이튿날 새벽에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를 가던 한 성도에 의해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됐는데, 인근 지역 아파트에 살던 평범한 주민인 그 노인은 부인을 잃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떨어져 살아 늘 혼자였다고 한다. 또한 지병으로 당뇨를 심하게 앓았으나, 경제적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힘든 형편이었다는 전언이다. 게다가 아들의 살림도 넉넉지 않아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한다. 노인의 시신을 발견한 성도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도 “사회가 각박해져 소외된 노인들을 끌어안을 따뜻함이 사라졌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사건을 전해 들은 인근 주민들도 노인의 급작스럽고 쓸쓸한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은 평생을 아들과 함께 살아오다, 유일한 혈육이던 아들을 4년 전에 백혈병으로 먼저 하늘로 보내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는 그 후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혼자 남겨졌다는 극도의 외로움과 함께 자식을 잃고 난 후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노인 자살, 10년 새 3배 증가 노인의 자살이 수면 위로 떠올라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경제적 능력이 상실된 노인이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소외당해 자살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또한, 만성 질병을 앓는 노인들 중에서도 치료비 압박과 신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택하는 사례가 많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60세 이상 노인의 자살은 2001년 이후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80세 이상 고령층 노인의 자살률이 타 연령층에 비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12일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는 평균 26.1명이다. 그러나 60∼64세 노인의 경우 48.0명, 65∼69세는 62.6명, 70∼74세는 74.7명, 75∼79세는 89명, 이처럼 연령층이 올라갈 때마다 10명에서 20명 가량씩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80∼85세에 이르러서는 평균 127.1명에 육박해 국민 전체 평균 자살자 수보다 5배 정도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6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연령대별로 1995년 이후 10년 만에 2∼4배 이상 급증했다는 점이다. 60~84세 노인 자살자의 수는 1995년 인구 10만 명당 평균 23.8명이었으나, 2005년에는 80.5명으로 급증했다. 10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는 해가 갈수록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건강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고령층의 자살 문제가 일반적인 자살 문제와 차별적으로 다뤄져야 할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의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과 만성적인 질병으로 인한 고통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열거해 진단하고 있다. ■노인들 ‘외로움’ 때문에 자살 그러나 노인들의 자살에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하는 요소는 ‘외로움’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한 복지기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혼자 사는 노인들이 자살충동을 느끼는 비율(18.5%)은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들(10%)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이상인 보건복지부 노인지원팀장은 “노인들 10명 중 6명 정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1인 독거노인 또는 2인 노인 부부의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류지형 과장은 “급격한 고령화와 핵가족화로 가족애와 사회적 관심이 적어진 현실이 노인자살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핵가족화에 따라 자녀의 부모 부양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현재의 노인세대는 노후준비를 제대로 해 놓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부연했다. ■가구 축소화 및 1인가정 증가 노인들의 자살 증가는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 심화와 가족형태의 다변화 등으로 인해 규모가 축소된 형태의 가구가 증가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사회에서는 대가족 형태가 일반적이라 노인을 봉양할 가족이 당연히 있었지만, 현대 사회의 가족형태에서는 노인을 섬길 수 있는 가족 내 인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족의 형태와 규모가 점차적으로 축소화함에 따라 2세대가 함께 사는 가구 수가 줄어드는데 반해, 1세대 가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통계청이 2006년 7월에 발표한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자식이 없는 부부 등 1세대 가구는 2000년에 전체의 14.2%에서 2005년에는 16.2%로 높아졌다. 그에 반해,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정 형태인 2세대 가구의 비중은 48.2%에서 42.2%로 떨어졌다. 그러나 2세대 가정의 수가 줄어드는 와중에서도 조손가정의 수는 0.3%에서 0.4%로 오히려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에서 가족 구성원이 혼자인 1인가구는 2005년에 317만 가구로, 2000년에 조사한 수치에 비해 두 배(42.5%) 가량 증가했고 전체 가구형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5%에서 20%로 증가해 전체 가정 중에서 한 명으로만 이루어진 가구수가 크게 늘었다. 당분간 이와 같은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11월 2005~2030년 장래 가구 추계에서 2030년에는 1인가구와 2인가구가 각각 23.7%와 28.1%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1·2인 가구가 전체가구의 절반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미 1인가족은 여러 가족형태 중에서 큰 비중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1인가구 중 노인 비율 30% 이들 1인가구 중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점은 문제가 되고 있다. 전체 1인가구 중 60세 이상 노인의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30.8%로 가장 많은 실정이다. 이들이 바로 독거노인들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그로 인한 도시집중·핵가족화, 그 외 의료비 부담의 과중과 간호보호의 어려움, 전통적 가족개념의 약화 등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 93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독거노인뿐 아니라, 노인세대 대다수는 소득보장제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노후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오늘의 노인세대는 자신의 노후계획보다는 자녀의 교육과 결혼에 우선적으로 투자를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자녀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데 대해 윗세대와 상당한 가치관의 차이를 갖고 있다. 현재의 노인세대는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자녀 어느 쪽에서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고령위원회’출범, 노인에 사회적 관심 필요 정부는 최근 들어 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만성 질병으로 발생하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전면적인 자세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1인가구를 위한 주택과 의료 서비스 등이 절실히 요구되는 만큼, 이에 대한 새로운 정책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의 중요 사항을 심의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4월 18일 새로 출범시켰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가족이 급격히 축소화되는 현상을 막고, 노인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중앙과 지자체가 새로운 정책들을 개발하여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정책을 보면, 올해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하여 치매·중풍 등의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요양 및 간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보행기나 이동식 변기처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생활을 돕는 우수제품(16개 장기요양용품)을 선정하여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대상자들이 가격의 15%를 지불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동안 수도권지역에 편중됐던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지방에도 확대 설치하기 위해 기존 지방 국립대 병원의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10개의 병상을 추가할 수 있도록 시설과 장비를 지원한다. 또한, 자녀가 있는 경우, 출퇴근하며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입영연기 허용, 거주지 인접부대로 근무지 조정 등 출산 친화적인 군 복무제도 등이 올해 초부터 시행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출산에서 양육까지 보육 서비스를 한번에 제공하는 ‘영유아 플라자’를 각 구마다 설치해 시간제 보육시설, 어린이 도서관, 육아정보센터 등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던 육아시설들을 한 곳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전라북도에서는 ‘1경로당 1일거리’ 사업을 통해 사회봉사에 자발적인 의지가 있는 노인들에게 상자 조립, 밤 까기, 도시락 배달, 짚공예, 청소년 선도 등의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복지부는 최근의 출산율 증가세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2006년 이후의 출산율 증가원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종합적인 후속 대책을 7월경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 외에도, 정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의 소득보장이나 건강보험 문제 등에 대해 지속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노인 문제는 과거 아닌 미래의 문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배려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현실에 대해 자녀가 전담하던 부모 부양을 국가 부양으로 옮겨 가는 전환기에 노인들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 점이 자살률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이유다. 일자리 창출로 경제자립도를 높이고, 소외감·고독감을 해소할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근본적인 사회 안전망 확충 대책도 모색해야 한다. 부모를 봉양하여 노후를 책임지는 일은 과거에 자식들이 맡았던 전통적인 기능이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가정에서 그러한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 오늘의 독거노인들은 소외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며, 안전 문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웃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그런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이 시급하다. 이여봉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은 청소년과 청년층 등 다음 세대에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며 “이제는 사회가 책임지고 사회적 차원의 효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노인문제는 바로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