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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직 없는 공공도서관장 자리

정부·지자체, 도서관장에 사서직 임용 명시한 ‘도서관법’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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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8호 박성훈⁄ 2008.05.26 13:43:22

주요 선진국에서는 국립 중앙도서관장에 문헌정보학 전공자나 국가를 대표하는 학자가 임용되고 있다. 도서관 업무의 전문성을 더해 이용자들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위해 공공도서관장은 사서직이 맡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도서관법 제30조 ‘공립 공공도서관의 관장 및 도서관 운영위원회’에 관한 제1항은 ‘공립 공공도서관의 관장은 사서직으로 임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주요 도서관부터 지방의 소규모 공공도서관에 이르기까지 관장에 사서직과 문헌정보학 전공자 등 전문가가 기용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 도서관 사서 임명 제대로 안돼 국립 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장은 개관 이래 단 한 차례도 문헌정보학 전공자가 선임된 적이 없다. 국립 중앙도서관은 문화관광부 1급 관료가 관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권경상 복합레저관광도시추진단장이 도서관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무역학과 관광학을 전공해 도서관 전문가로 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전임자인 김태근 전 관장은 육사를 나와 공보관 체육국장을 지낸 인사이다. 국립 중앙박물관이 교육부에 속해 있던 1990년대 이전에는 교육부 관료가 관장을 맡았다. 사서직은 9급에서 시작해 4급까지밖에 진급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가 관장에 오르기 어려운 구조이다. 설사 4급까지 오르더라도 관례상 국립 중앙도서관장 자리는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차관급에 해당하는 국회도서관의 관장직은 사서업무와 전연 무관한 정치인들이 기용되기도 한다. 국회는 관행상 사무총장에 여당 추천자를 선임하고, 국회도서관장에는 제1야당에서 희망하는 인사를 앉혔다. 현재 청와대 춘추관장을 맡고 있는 배용수 전 국회도서관장은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을 맡았던 인사이다. 문용주 16대 국회도서관장은 전라북도 교육감을 역임한 인사로 한나라당 전북지사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 정호영 전 관장은 이전에 국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맡은 바 있다. ■지방 도서관도 비슷한 처지 주요 국립 도서관의 상황이 이렇듯, 지방 공공도서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국 지자체에 소속된 300여 개 공공도서관 가운데 사서직을 관장에 임명한 곳은 17%에 불과하다. 이도 그나마 13개 공공도서관 중 12곳의 관장이 사서직을 맡고 있는 대전과 부산의 일부를 제외하면 10%로 낮아진다. 충청남도의 자치단체 소속 공공도서관 24개의 관장 중 22곳은 행정직이 맡고 있고, 나머지 두 곳은 위탁을 하거나 계약직이 관장을 맡고 있다. 사서직이 관장을 맡은 도서관은 도내에 한 군데도 없다. 경기지역 시·군에 따르면, 동두천을 제외한 경기지역 30개의 시·군의 공공도서관 67곳 중에 사서직 공무원이 관장을 맡고 있는 도서관은 12곳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55곳의 공공도서관은 대부분 행정직 공무원이나 농업직이 관장이다. 수원시의 경우 아예 조례를 ‘공공도서관장을 행정 또는 사서직으로 규정한다’고 제정하고 있고, 성남과 안양 등 대다수의 지자체들도 도서관법과 다르게 자체 조례를 제정해 행정직이 사서직과 함께 관장 자리를 두고 합법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따라서 수원의 8개 공공도서관 중 6군데는 지방행정직이 관장을 맡고 있다. 성남 2곳과 고양 5곳의 지방도서관에는 사서직이 관장을 맡고 있지 않았다. 하남시와 양주시에는 농업직 공무원이 도서관장으로 임용된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은 2007년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도서관 관장의 보직을 승진이 적체된 지방행정직의 인사관리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승진하지 못한 공무원들의 낙하산 인사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탈법적 인사운영실태가 도마 위에 올라 정부가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같이 지자체들은 감사원과 국회에서 번번이 지적을 받아 왔지만, 별다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개방형 직위가 전체 고위직의 20%까지로 한정돼 있고 이마저 꽉 찬 상태라 도서관장직에 행정직을 배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사서직 공무원 중 관장에 오를 만한 고위직이 없다는 점도 내세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평생교육기관으로서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있다며 인식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성 떨어져 도서관 발전 저해 학계에서는 이처럼 도서관의 수장 자리에 비전공자를 앉히는 것은 도서관 문화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공자들의 사기마저 떨어뜨린다고 비판한다. 김정신 상명대 도서관장은 “몇십 년씩 다른 일을 하던 행정직이 관장을 맡을 경우 제공되는 정보의 질에 차이가 난다. 당연히 사서직이 도서관장을 맡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은철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법에서 공공도서관장을 사서직으로 임명하게 돼 있으나 실제로는 관장에 사서직이 아닌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 기관이 잘 운영되려면 기관의 대표자가 해당 기관에 대해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가 관건”이라며 “전문직이 아닌 사람이 관장을 맡는 경우 업무에 대한 이해와 열정이 부족해 도서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위직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 현실에 전공자들은 회의감마저 느끼고 있다. 모 대학 문헌정보학과의 한 학생은 “규모가 큰 도서관의 도서관장도 사서가 아닐뿐더러, 다른 대학도서관이나 기타 도서관의 관장직에 사서직이 근무하고 있지 않은데,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기관의 본질에 맞게 전문성을 갖춘 사서들이 관장까지 맡을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서직 인력 부족도 문제 도서관의 수장에 사서직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임명되다 보니, 일선 현장에 전문직 인력이 제대로 배치될 리 만무하다. 40여 개 대학에서 매년 2000여명의 사서 자격자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실제 공공도서관에서는 한 사람의 사서가 3인분 이상의 작업량을 감당해야 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잡무에 쫓겨 시민과 도서관을 연결하는 사서 고유의 역할을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다. ]이 때문에 공공도서관들은 저마다 사서직 직원을 법정 정원까지 채워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행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제6조와 시행령 제4조에는 도서관 건물 면적이 330㎡ 이하일 경우 사서직원 3인, 면적이 330㎡ 이상일 때는 초과하는 330㎡마다 1인을 더 두고, 장서 6000권 이상일 경우에도 초과하는 6000권마다 1인을 더 두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을 관리하고 있는 전국 시·도교육청은 저마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사서 확충에 나서지 않거나 계획만 세워 두고 다른 사업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울산 지역의 4개 공공도서관의 법정 사서 수는 136명이지만, 확보된 사서 직원은 47명에 불과하다. 1명이 3명의 일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중부도서관은 건축 연면적 5045㎡에 보유장서 18만2368권으로, 법정 사서 정원 43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명밖에 확보하지 못해 원활한 도서관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남부도서관도 건축면적 4479㎡와 보유장서 16만1781권을 감안한 법정 사서 수는 42명에 이르지만, 현재 30% 수준인 13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은철 교수는 “배출인력이 전문인력으로 배치되지 못해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도서관을 설립하는 숫자가 많이 늘어남에 따라 사서 인력을 보충해야 하는데, 충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늘어나는 인력 수요에도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문제 삼았다. 한 지역 공공도서관의 사서 직원은 “도서관 수가 적은 지역의 도서관일수록 사서들의 노동강도는 더 가중된다”며 “올바른 독서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선 지역 내 도서관 수를 늘리거나 사서직 직원을 대폭 증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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